관련자들 ‘폭탄돌리기’ 음모론만 눈덩이
▲ 청와대사진기자단 | ||
‘DJ의 숨겨진 딸’ 파문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측의 공식 반응이다. 극히 간단명료한 한 문장이지만 DJ 측에서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당초 친딸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엄청난 파문을 예고했던 이 보도는 그러나 DJ측의 이 같은 ‘수사학적 표현’에 의해 순식간에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한번의 충격 효과 이후, 어느덧 친딸이라고 나선 김아무개씨(36)의 진위 여부는 관심의 대상에서 다소 멀어지는 느낌이다. 반면 ‘음모론’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난데없는 ‘DJ 죽이기’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가 하면, 5년 전 죽은 김씨의 모친에 대한 자살 사건도 미스터리로 다시 꿈틀댄다. 35년간이나 음지에 묻혀있던 이 사건의 실체는 태생적으로 갖가지 음모론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일요신문>은 이번 파문을 접하면서 이 같은 파생적 음모론의 실체를 쫓는 데 더 주력했다. 진승현 게이트의 진실, 그늘에 가려졌던 김씨 모녀의 삶과 죽음, 정보기관의 ‘DJ X파일’의 실체, 그리고 국정원 특수사업의 정체. 이 실체가 밝혀지면 DJ의 숨겨진 과거가 대두되더라도 이번 파문의 충격은 국민들에게 각각의 모습으로 알맞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누가 왜 지금 DJ를 쏘았나
숨겨진 딸이라 주장하는 김씨의 이야기가 사실일 경우 파문의 발단은 DJ가 김씨의 어머니를 만났다는 지난 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30년 넘게 묻혀 있던 일이 지금에 와서 이렇게 파문으로 비화된 까닭은 무엇일까.
‘DJ 딸 문제’의 1차적인 유출지로는 당사자인 김씨와 김씨 가족, ‘특수사업’을 벌였다는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과 정성홍 전 경제과장, 그리고 ‘특수사업비’를 댄 셈이 된 진승현씨 주변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세상에 불거진 데에는 또 다른 곡절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DJ정권 시절 권력핵심 주변 인사들의 갈등설, DJ를 의도적으로 공격해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세력의 작전설 등이 흘러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가 일각에서는 특정 정파를 겨냥한 정치적 음모설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진실이 가려진 상황에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이번 ‘딸 파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진승현 게이트’ 연루자들의 과거 및 최근 행적이다. 우선 이들의 사법처리 과정에 권력이 개입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시각이다. 한 검찰 소식통은 진승현 게이트로 김은성 전 차장과 정성홍 전 과장이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DJ정권 핵심 인사가 검사장급 특정 검찰 간부에게 ‘선처’를 부탁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전 차장과 정 전 과장이 주장한 ‘특수사업’ 때문에 들어온 청탁이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재판이 진행되면서 감형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2년을 선고받은 김은성 전 차장은 2심에서 형기가 1년 줄어든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정성홍 과장 또한 2심에서 징역 1년6월로 감형됐다. 김 전 차장은 만기 출소를 두 달여 앞두고 2002년 10월 가석방돼 특혜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사실 진승현 게이트 당시 검찰 출두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언론플레이’를 펼치면서까지 자신들의 ‘결백’을 적극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김 전 차장과 정 전 과장의 모습은 달라졌다. 묵묵히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 법원 판결을 받아들였다. ‘특수사업’을 벌인 게 사실이라면 이들이 권력 핵심부의 ‘배려’를 기대하며 인내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정권이 교체되고 진승현 게이트 관련자들은 ‘충성’의 대가 없이 명예만 잃어버린 격이 됐다. 그래서일까. 김 전 차장 등은 최근 들어 주변 인사들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김 전 차장을 사석에서 만났다는 한 전직 정치인은 “김 전 차장이 오명을 뒤집어쓴 것에 대해 상당히 억울해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김 전 차장이 ‘딸 파문’의 진원지일까. 김 전 차장과 친분이 두터운 한 법조인은 “기자들이 계속 집앞을 지키고 있어 별수 없이 김 전 차장이 인터뷰를 해줬다는데 괜한 오해받을까 근심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자꾸 특수사업이 거론될수록 김 전 차장이 주목받을 텐데 이는 김 전 차장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 SBS <뉴스추적>의 ‘DJ 딸’ 보도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SBS-TV 촬영 | ||
DJ측도 이와 비슷한 시각을 내놓았다. SBS <뉴스추적> 방송 이후 DJ측 최경환 비서관은 이미 “(SBS가) 진승현씨측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마치 뭔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이른바 ‘진승현 선처 호소문’도 이 같은 추론을 거들고 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이 호소문엔 DJ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 모녀에 관한 이야기부터 이 여성이 DJ측에 돈을 요구한 것, 그 과정에서 국정원측이 진씨를 통해 이른바 ‘특수사업’ 명목으로 돈을 조달했다는 내용 등이 기술돼 있다. 특히 진씨가 ‘자신의 돈이 국가를 위해 쓰일 수 있다면 최선를 다해 돕겠다’고 한 부분 등은 진씨측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일만 한 대목이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선 진씨측이 언론에 DJ 딸 부분을 흘려 ‘진승현은 정치적 희생양’이란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진씨측 변호인은 문제의 호소문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라 밝히고 있다. 진씨측 이상률 변호사는 “우리가 만든 문건이 아니다”라며 “그렇게 공개적인 방법으로 구명 운동을 하는 것은 진승현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라 밝혔다.
이 변호사는 “지금 형집행정지 중(6월까지)인데 진승현이 동정 여론을 조성하려 하는 것으로 비치면 여론이 가만 두겠는가”라며 “진승현은 언론에 안 나오는 것이 유리하다. 자꾸 노출되면 여론만 나빠진다. 오히려 국민들 뇌리에서 잊혀지는 것이 가석방되기에도 유리하지 않겠나. 이런 이유로 (진승현이) 인터뷰도 하지 않는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진씨측 이상률 변호사는 “DJ 딸이라고 주장하는 김씨 가족들이 결국 진원지일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이 변호사는 “방송 보니까 그 여인 이모라는 사람이 그렇게 떠들고 엄마라는 사람도 아파트 일대 돌아다니면서 (DJ와의 관계에 대해) 소문냈다고 하지 않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김씨가 파문의 출발지일까. 30여 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김씨가 폐쇄적인 생활을 하며 ‘수동적’으로 움직여온 점으로 보아서는, 그녀 자신이 먼저 ‘DJ 딸’임을 알리고 다녔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과거 김씨가 DJ쪽 인사와 접촉했던 것도 모두 사망한 어머니에게 등을 떠밀려서 나선 것이었다.
기자는 김씨가 사는 서울 여의도 모 아파트 주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몇몇 주민들로부터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해에도 기자들이 김 여인 집 앞에 몰려온 적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도 누군가가 ‘DJ의 딸’ 문제를 외부에 흘렸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파문에 불을 당기려 했던 것일까.
2.국정원 특수사업의 실체
이번 파문으로 DJ 사생활 못지않게 국정원 ‘특수사업’의 존재 여부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소수 권력층을 위한 국정원의 특수목적 사업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볼 때 진승현 게이트를 수사했던 검찰 내부에서도 특수사업의 존재를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전 차장과 정 전 과장이 진씨로부터 받았다는 3억5천만원 가운데 특수사업 명목의 2억원을 제외하고 1억5천만원에 대해서만 뇌물죄로 기소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이 특수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할지라고 그 실체를 인정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검찰이 이른바 특수사업 주장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문제의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추적을 하지 않은 점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그 정도면 용처를 밝혀내는 게 보통인데 검찰이 일부러 전선을 확대시키지 않은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김 전 차장 등이 주장한 국정원의 ‘특수사업’이란 단지 최고권력자의 사생활 보호를 뜻하는 것일까. 또한 이 같은 특수사업에 돈을 댄 기업인이 단지 진승현씨 혼자뿐이었을까.
한때 DJ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신범 전 의원은 진승현씨 말고도 이른바 특수사업 목적에 이용됐을 벤처기업인이 다섯 명 정도 더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숨겨진 DJ 딸 문제 외에도 다른 용도의 특수사업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DJ 딸이라 주장하는 김 여인의 재산에 대해 <뉴스추적>은 15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예금 2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진씨측에서 흘러간 돈과 김홍일 의원, 조풍언씨 등의 원조를 감안하더라도 또다른 형태의 도움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 지난 9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전대통령과 영부인 이희호 여사. | ||
2000년 6월6일 밤. 당시 당직을 서던 영등포경찰서 형사○팀은 ‘모처’로부터 신고 전화를 받았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50대의 한 여인이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자살했다는 것인데, 집에는 그녀의 딸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혀 세간에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처리되었던 이 사건에 등장하는 모녀가 바로 DJ의 숨겨진 여인과 딸. 그런데 이 사건에 썩 명쾌하지 못한 몇 가지 의문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당시 사건 신고를 한 이가 딸이 아니라는 증언이 나온 것. 당시 당직팀의 한 관계자는 SBS <뉴스추적>의 취재에 응하면서 “우리한테 먼저 신고가 온 게 아니고 고위직 모 인사한테 먼저 전화가 왔다. 내가 듣기로는 막강한 쪽이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영등포경찰서를 찾았다. 당시 방송에 등장했던 관계자는 자리에 없었다. 대신 팀장급인 A씨가 기자에게 해명했다. 방송 내용이 잘못 전달됐다는 것이다. 정식 인터뷰도 아니었고 사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말을 그냥 찍어 가서 방송을 내보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A씨 자신도 역시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자살이 맞느냐’라는 질문에는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무슨 소리냐. 분명한 자살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딸이 그 날 유일한 목격자이며, 딸의 진술로 볼 때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외부 침입의 흔적도 없었고, 사체에는 목을 맨 흔적이 또렷했다. 우발적 자살이었기 때문에 유언장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잘 모른다던 처음의 태도와는 다소 달랐다.
‘유일한 목격자’라고 하는 딸 김씨의 증언이 필요했다. 하지만 김씨는 4월19일 방송이 나간 이후로 외부와의 만남을 피하고 있다. 계속된 전화 통화 시도도 허사였다. 그나마 방송 전날 오후, 극적으로 김씨와 단독 인터뷰에 성공한 <우먼센스>의 한 기자가 김씨의 자세한 심경을 전해주었다. 이 인터뷰에서 김씨는 모친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엄마가 원래 우울증이 좀 있긴 했는데, 충동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내 일자리 문제로 나뿐만 아니라 조(풍언) 아저씨하고도 심하게 다퉜다. 조 아저씨가 날 미 대사관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해서 준비했는데, 엄마가 ‘널 거기 비서로 보낸다고 하는데, 거기 가서 창녀 노릇 할 수 있겠니’라는 것 아닌가. 너무 서러워서 엄마와도 대판 싸우고 조 아저씨에게도 전화 걸어서 따졌다. 여하튼 그 무렵 그 문제로 심각하게 다퉜는데 엄마가 분에 못 이겨 밤에 소동을 피우다가 우발적으로 자살을 했다.”
이 기자는 김씨의 모친이 목을 맸다는 화장실 안도 살펴봤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목을 맬 만한 어떤 것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기자는 영등포경찰서의 A씨에게 ‘그 아파트의 화장실이 목을 매기가 적합지 않은 구조였다더라’고 하자 “끈을 화장실 문고리에 걸어서 자기 목을 걸고 몸을 축 늘어뜨리면 꽉 조여지기 때문에 그 매듭을 스스로 풀 수가 없다.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씨 모친이 문고리에 목을 맨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지, 난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당시의 수사 기록을 보고자 했으나, 형사과의 한 간부는 “수사 기록은 당사자나 그 가족이 아니고서는 제3자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열람을 거부했다.
김씨가 방송 이후 계속 인터뷰를 거부하는 탓에 기자는 대신 김씨의 이모를 찾았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 연구실에서 기자를 만난 이모는 여동생(김씨의 모친)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아마 DJ가 노벨상을 타기 직전이어서 그쪽 사람들이 입을 막으려고 (동생에게) 좀 심하게 했던 것 같다. 평소에는 별로 연락도 않던 동생이 그 무렵에는 새벽 3~4시 쯤에도 느닷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가 하면, 자살하기 전날 밤에는 (내게) 크게 신경질을 냈다. 당시 동생은 ‘협상중’이라고 했다. (김씨를 DJ의) ‘호적에만 올려주면 된다. 그러면 난 죽어도 된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그게 잘 안 된 모양이다. 결국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두 모녀끼리 서로 크게 다투고 조카가 ‘도대체 왜 날 낳아서 이렇게 고생시키느냐’고 대들자 목을 맨 것 같다.”
김씨의 모친이 죽음 직전 그 어딘가와 ‘협상중’에 있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김씨와 이모의 증언에 따르면 모친은 줄기차게 딸 김씨를 DJ의 호적에 올려놓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이모는 “동생이 (DJ측에) 이런 말까지도 했다더라. 양녀 형식으로라도 받아달라고. 아들만 있는 집이니까, 불쌍하고 예쁜 여자 애가 한 명 있어 양녀로 삼기로 했다고 하면 될 게 아니냐고. 그런데 동생 말로는 이희호 여사가 이 제안을 펄쩍뛰며 거절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그녀는 DJ를 딱 세 번 만났다고 한다. 86년과 92년, 그리고 95년이라는 것. 공교롭게도 86년과 92년은 대선 직전이었고, 95년은 DJ가 정계에 복귀해서 총선을 준비할 무렵이었다. 김씨의 모친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중요한 길목마다 DJ측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엄마가 김 전 대통령 만나게 안해주면 한나라당 가서 다 불겠다고 협박하니까 할 수 없이 만나게 해 주었다”며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했다.
김씨의 모친이 DJ의 노벨상 수상 결정이 발표되기 전인 2000년 5~6월 당시에 중대 결심을 한 것 같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때 동교동계의 핵심이었다가 지금은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채 해외에 머물고 있는 전직 의원 B씨를 통해서였다.
기자가 B씨와 국제전화로 통화한 20일 오전 당시 그는 국내의 뉴스를 접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DJ의 숨겨진 딸? 그게 왜 새삼 지금에 와서 거론되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그 모친은 이미 죽었고”라고 대뜸 되물었다.
그런데 그는 ‘모친의 자살’에 대해 질문하자 “자살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나. 당시 경찰 발표를 어떻게 믿나. 도저히 살 수 없을 만큼 그 여자를 몰아붙였을 거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그때 다 폭로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는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확언할 수 없고, 다만 사실상 (정권에서) 죽인 거나 진배 없다는 뜻이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김씨는 “엄마가 죽은 후에는 조씨 아저씨도 그렇고 다들 갑자기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4. 역대 정권이 침묵한 까닭
“동생이 당시 조카를 낳기 전인지, 낳고 난 직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느날 집안에 중정 요원들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각서를 쓰라고 했다더라. ‘네 애가 누구 애냐? DJ 애 맞지?’ 하고. 동생은 끝까지 아니라고 버텼다고 한다. 나중에 동생이 그러더라. ‘내가 그렇게까지 해서 그 사람을 보호해 줬는데 그런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김씨의 이모가 전하는 이 말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당시 중정은 ‘DJ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69년 3월생이니까 중정 요원이 들이닥친 이 당시는 71년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과 DJ가 숙명의 대결을 앞둔 시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DJ는 역대 정권마다 최대의 정적이었다. 5공과 6공 정권, 그리고 YS 정권 말기에 모두 대통령에 출마했다. 그런데도 당시 안기부는 DJ의 좌익 사상만 거론할 뿐, 사생활은 문제삼지 않았다.
역대 정권들이 과연 정적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던 걸까. 이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한 가지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나 YS도 사생활 문제만큼은 약점을 갖고 있는 ‘동병상련’의 처지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역대 정권들이 DJ의 사생활에 대해 의심은 갖고 있었지만 막상 확증은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외에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딸 문제를 은밀히 DJ를 압박하는 카드로 써먹었을 경우도 거론되고 있다.
김씨와 김씨 이모의 증언에 따르면 두 번째 추정의 가능성에 더 무게가 쏠린다. 김씨 이모는 “중정에서 한번 그렇게 난리 친 이후로는 특별히 찾아와서 괴롭혔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고 전했다. 김씨 또한 “국정원에서도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거기 출입하는 어느 기자한테 들었다. 하지만 평소 어떤 간섭이나 감시를 느낄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 이모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수시로 독일을 왔다갔다 했으나, 단 한 번도 출국에 어려움을 겪거나 감시의 눈길은 못 느꼈다고 전했다. 국정원에서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인식이 든 것도 DJ정권이 들어선 이후였다고 한다. 김씨 역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낯선 사람의 미행이나 감시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대 정권 정보기관이 관리해 왔다는 ‘DJ X파일’에는 ‘딸 문제’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정권 교체가 이뤄지던 시기인 지난 97년 연말,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는 안기부측에 “문서 파기 제보가 있으니 중지해줄 것”을 요구했던 적이 있다. 당시 안기부에 엄청나게 쌓여 있던 DJ에 대한 각종 정보 자료들을 이전 정권에서 모두 파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이에 대해서 한 전직 국정원 인사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인물 파일 가운데 DJ에 대한 정보량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트럭 한 대분쯤은 족히 되고도 남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의 증언은 <월간조선> 98년 3월호 ‘안기부의 김대중 파일’ 기사와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당시 보도를 보면 안기부의 김대중 파일이 가장 한껏 활용되었던 때는 97년 12월 대선 무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DJ에게 밀려 있던 한나라당측에서 ‘DJ X파일’을 입수해 활용했는데, 그 내용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말바꾸기를 한 부분과 사상 문제, 공천 장사 등 돈 문제, 그리고 건강 문제 등 네 가지였다고 한다.
아들의 병역 문제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있던 당시 ‘이회창 캠프’측에서 안기부 파일 중 DJ의 사생활 관련 부분을 알았더라면 이를 활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확신에 찬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박통’의 ‘아랫도리 정보 금지령’ 이후 중정이나 안기부에서 섹스 스캔들은 아예 파일에 올리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추정도 제기되고 있다. 중정 간부 출신인 한 인사는 “박통 시절엔 사생활 부분은 위에 보고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정보기관은 조금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모두 수집한다. 섹스 스캔들은 도덕성에 결정적 흠집을 낼 수 있는 좋은 호재인데, 그것을 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당시 ‘안기부의 김대중 파일’ 기사 는 6공의 한 고위 안기부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한 저명인사가 술집 여성과 섹스를 한 장소와 시간은 물론 그 사진까지 파일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는 내용을 전한 바 있다. 당시 안기부의 정보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감명국, 천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