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걷히면 여의도가 코앞
▲ 최근 역할론이 대두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옥인동에서 서빙고동으로 조용히 이사했다. | ||
그런데 이 전 총재의 이사 이력이 그의 정치 역정과도 묘하게 오버랩 되기도 한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상도동 동교동이라는 대표적 ‘둥지’가 있었지만 이 전 총재는 지난 96년 정계 입문 뒤 무려 6번이나 이사를 하는 ‘고난’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 이것이 그의 ‘잘 풀리지’ 않는 정치 고난사를 웅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의 이사에 얽힌 뒷이야기를 되짚어봤다.
지난 9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 전 총재 고난의 길은 시작되었다. 이는 그의 ‘이삿길’을 되짚어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그는 지난 88년부터 93년까지 대법관으로 재직했다. 이 전 총재는 이 시기에 종로구 구기동 풍림빌라를 새로 구입해 살고 있었다. 그 전에는 성북동에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비탈진 곳에 있어 오르기도 불편했고 겨울에는 수도가 자주 얼어 부인 한인옥씨가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빌라는 88평으로 2~3층을 같이 이용하는 구조였는데 시가 10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구기동 빌라는 이 전 총재에게 있어 다시 가질 수 없는 ‘명당’으로 통한다. 그는 이곳에서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냈고 급기야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명당이었던 구기동 빌라를 떠나면서 또 한 번의 대선에서 패배하는 등 가시밭길을 걷게된다.
이 전 총재 부부는 구기동 빌라를 구입했을 때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한인옥씨는 “결혼 생활 중 구기동 집을 장만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 그때는 너무 좋아 장롱과 유리를 닦는 데 재미를 붙이고 살았다. 시장이 멀어 버스를 타고 김칫거리를 들고 다니면서도 너무 즐거웠다”고 회상한 바 있다. 이 전 총재는 지난 93년 감사원장을 맡았을 때도 서울 삼청동 감사원장 공관 입주를 마다하고 구기동 빌라에서 살았을 정도로 이 집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구기동 자택을 7억원에 팔아버렸다. 5억원을 신한국당에 특별당비로 기부하고 나머지는 전세금으로 충당했다. 이 전 총재는 2002년 종로구 옥인동 자택을 구입하기 전까지 전셋집을 전전해야만 했다. 이 전 총재의 명당 자리였던 구기동 빌라는 그 뒤 탤런트 김영애씨가 지난 2003년 3월 매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구기동 집을 팔고 신당동으로 이사했다. 그는 당시 후배 변호사 소유였던 신당동의 한 빌라에서 약 5개월 정도 살았다. 그 뒤 그는 98년 4월 종로구 가회동 경남빌라로 또 이사를 한 뒤 이듬해 6월까지 그곳에서 1년여를 지냈다. 그러다가 99년 6월 서울 송파갑 재선거 출마를 위해 송파구로 이사, 송파구 장미아파트와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등에 거주하다가 2000년 초 다시 가회동 경남빌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전 총재는 이 과정에서 ‘위장전입’ 의혹을 받기도 했다. 먼저 그는 99년 4월 재선거를 위해 가회동 빌라에서 하순봉 의원의 친척집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로 이사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소만 옮기고 거처는 가회동 빌라 그대로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99년 6월 국회의원이 된 이후 이 전 총재는 자신의 주소를 ‘송파구 신천동 7-28 현대타워아파트 ○○○호’라고 신고했는데 이곳 역시 위장전입 의혹을 받았다. 그 뒤 99년 11월 이후 이 후보는 잠실 아시아선수촌에 있는 딸의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했는데 이곳에서도 이름만 걸어놓고 실제로는 가회동 빌라에서 살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급기야 2002년 봄, 이 전 총재의 위장전입 의혹과 호화빌라에 사는 것 등이 겹쳐 ‘빌라게이트’로 발전하게 된다. 이 전 총재는 사돈 최아무개씨 소유의 빌라를 무상으로 이용해 물의를 빚었다. 또한 이곳에는 장남 정연씨 부부와 딸 이연희씨 부부가 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 이 전 총재 가족들이 모두 호화빌라에 살고 있다는 비난이 들끓기도 했다.
▲ 98년 거주하던 가회동 경남빌라.(맨위) 2002년부터 거주해온 옥인동 집(가운데).지난 4월28일 이회창 전 총재가 이사한 용산 서빙고동 S아파트. 우태윤 기자 | ||
이 전 총재는 ‘빌라게이트’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자 “분수에 넘치게 호화빌라를 몇 채씩 가지고 있는 것 같이해서 국민들께 여러 걱정 끼친 점은 송구스럽다”고 사과하며 종로구 옥인동으로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된다.
2002년 4월 옥인동 이사를 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쏟아지는 여론을 피해 한시라도 빨리 이사를 해야 했지만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해 당시 사무처 직원들이 큰 고생을 했다. <일요신문>은 당시 유명 지관을 대동하고 유력 대권주자의 자택에 대한 풍수를 알아본 바 있었다. 당시 가장 명당 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곳은 바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명륜동 자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관의 ‘예시’가 맞아떨어진 것.
당시 이 전 총재의 옥인동 집은 점수가 매우 낮았다. 특히 대문을 열면 바로 집 정면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구조였다. 집이 대문과 등을 지고 뒤로 돌아앉은 꼴이었다. 당시 지관은 “창문과 정문이 집의 뒤편에 배치돼 있어 대문으로 들어오는 복이 들어갈 데가 없다. 또한 집 뒤편 인왕산과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로 부딪치는 지세라 구설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이 전 총재측은 “여론에 쫓겨 너무 서둘러 집을 구했기 때문에 풍수 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전 총재는 만 3년을 넘게 산 뒤 이번에는 용산 서빙고동 S아파트로 옮기게 되는 것이다. 지난 4월28일 이삿날, 택배사 직원들만이 조용하게 이삿짐을 나를 뿐 요란한 ‘행차’는 전혀 없었고 이삿짐도 단출했다. 옥인동에 이사 올 때 이웃에 떡을 돌리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 전 총재측은 자신의 최측근들에게도 새로운 주소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 측근은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이 전 총재의 집 주소를 문의해오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당분간 일체 새 집에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냥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게 총재의 뜻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측은 “옥인동 자택은 방범상 문제도 있고, 냉난방시설에도 문제가 많아 불편해서 이사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이 전 총재는 옥인동 자택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매매가 이뤄지지 않자 일단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S아파트에 전세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는 옥인동 자택를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3억6천만원을 대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S아파트에는 차남 수연씨 부부와 한나라당 진영 나경원 의원 등 측근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의 역할론이 불거지고 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회창 전 총재가 차기 대선 전까지 한나라당의 중간 관리자로서 당을 훌륭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다음 대선에 이르는 동안 여러 세력간 긴장관계가 발생하고 합종연횡이나 전략적 제휴 등이 부각될 것”이라며 “그 와중에 이 전 총재가 거중 조정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가 대권-당권 분리 체제를 관리하는 적임자이며 이것이 이 전 총재가 명예롭게 정계를 은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다. 공 의원은 이 전 총재가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선을 그었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이 전 총재는 자신의 구기동 빌라 ‘명당’을 떠난 뒤 6년 11개월 정치활동 기간 동안 수많은 생채기만을 짊어진 채 정치판을 떠났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를 가는 서빙고동이 과연 구기동 명당의 신화를 재현해줄 것인지, 앞으로 그의 행보를 주목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