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찬 차려와도 밥상은 엎어진다’
혁신위의 2차 혁신안에 대해 당내 이곳저곳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5월 27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풀리지 않는 매듭은 자르는 게 맞다.”
김상곤 위원장이 2차 혁신안을 발표하며 낸 일성이다. 김 위원장은 새정치연합이 갖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계파의 기득권이고 새로운 지도체제 확립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김 위원장은 “계파의 권력 배분과 힘겨루기 장으로 변질된 지도체제를 일신하기 위해 현행 최고위원제를 폐지한다”면서 새로운 지도체제를 내놨다. 김 위원장은 사무총장제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사무총장에 집중된 권력은 노골적인 권력다툼의 대상이 되었고 국민은 혐오감으로 이를 지켜봤다”며 “총무본부장, 조직본부장, 전략홍보본부장, 디지털본부장, 민생생활본부장의 5본부장 체제로 개편한다”고 알렸다.
이 같은 혁신안은 오는 20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규를 제·개정하면서 적용된다. 따라서 혁신안이 통과되는 20일이 최재성 사무총장의 임기의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혁신위원회 소속인 우원식 의원은 혁신안에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혁신안 발표 당일 국회에서 만난 우 의원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현재의 최고위원회는 최고위원 개개인이 확실한 대표성이 없어 책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새롭게 바뀐 지도체제는 지역의 대표, 부문의 대표, 계층의 대표로 바뀌면서 자기 관할이 확실해져 공공성 강화로 연결돼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게 된다. 명칭을 붙이자면 민주적 집단지도체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혁신위는 혁신안에 대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이 많았지만 당내 이곳저곳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많았다. 혁신안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혁신위의 새로운 시스템이 새로울 것도 없고 어떤 안을 내놓아도 사람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효과를 거두긴 어렵다는 평이었다. 장경태 새정치연합 서울특별시당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을 두고 당원의 마음도 국민의 열망도 품지 못하는 ‘떠돌이 혁신안’이라고 비판했다. 장 대변인은 “‘계파별 나눠먹기’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지역별 나눠먹기’다. 이미 당내 지역별 갈등과 괴리, 소외감이 극도로 (당의) 피로도를 높이는데, 권역별 대표로 구성한다면 ‘정당 내 호족’을 인정하는 꼴이다”라며 “사무총장, 부총장을 없애면 여러 개의 본부가 동등한 위상을 갖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컨트롤타워 없는 당이 얼마나 오합지졸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정치연합 한 당원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이 당원은 “사무총장, 부총장제와 5본부장체제는 역할, 권한, 책임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해경 해체해서 안전처로 이관한 박근혜 대통령과 뭐가 다르냐”며 “최재성 사무총장 인선 이후 최 사무총장을 사퇴시키거나 권한을 줄이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사무총장직 자체를 없애서 최재성 찍어내기를 한 것 아니냐”라고 평가절하 했다. 혁신위 측은 사무총장직 폐지는 최 의원 개인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우 의원은 “사무총장직 폐지는 최 의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미리 당 대표와 상의나 통보도 없이 발표했다”면서 “혁신위 내에서 혁신방안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최재성 사무총장
혁신위에 비판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새정치연합 내부적으로는 혁신안에 대해 누구도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의 혁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 즉시 혁신위의 활동이 끝나고 해체 수순을 밟으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6일 혁신위원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차 혁신안 실행을 위한) 7월 중앙위원회가 소집되지 않거나 혁신위안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바로 짐을 쌀 것”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도 당의 분위기가 혁신위가 어떤 안을 내놓아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 당직자는 “계파갈등이 심각해 혁신위 안이 통과돼도 당이 깨질 수 있지만 혁신위 안이 통과가 안 되거나 좌초되면 그 즉시 당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혁신위 안을 거부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이 당직자의 말처럼 2차 혁신안 발표 다음날인 지난 9일 최 사무총장도 사무총장 폐지안에 대해서 적극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사무총장은 “모든 혁신, 어떤 혁신도 희생은 필요하다”며 “혁신위의 사무총장 폐지안에 대해서 사무총장으로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다”라는 내용으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혁신위 안과 별개로 일련의 사태를 두고 국회 안팎에서는 최 사무총장을 두고 운이 너무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혁신안을 본 한 국회 관계자는 “사무총장이 되기 전에는 구설수에 올랐고, 되고 나서도 힘든 일이 많더니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사무총장직 자체가 없어지게 생겼다”며 “최 사무총장이 삼재가 든 것 아니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기자는 지난 9일 최 사무총장을 국회에서 만나 “요즘 너무 운이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에이 아니다”라고 손사래 치며 “우원식 의원하고도 잘 소통하고 있고, 혁신위가 내가 미워서 그런 안을 낸 게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혁신위의 혁신안으로 해결하기에는 당내 문제가 너무 크다는 시선도 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시각이다. 당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차려진 혁신위가 무엇을 바꿀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는 까닭이다. 혁신위에 청년 몫으로 입성한 이동학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장도 당내에 상호간의 신뢰가 사라진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내에 들어와 보니 갈등이 심하고 신뢰가 전혀 없다”며 “어떤 안이 나오고, 어떤 행동을 해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부터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소장은 “당내 문제가 커 고쳐야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새정치연합이 국민의 뜻을 받들 수 있는 혁신적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라면서 “밴드 붙이고 끝낼 상황이 아니라 큰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이란 수술법이 부정적 전망 속에서도 쪼개질 새정치연합을 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