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개인회생 신청 뒤에선 차명재산 관리
자택 같은 사택 검찰은 박성철 신원 회장이 경매로 넘어간 자신의 집을 회사 명의와 자금으로 구입해 계속 살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사진은 박 회장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거주지.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평소 깨끗한 기업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 나타나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기회생,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것인데 이날 박 회장은 11시간 가까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이튿날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는 박 회장에 대해 채무자회생법상 사기파산·회생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조세포탈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정거래조세조사부 관계자는 “일단 사기회생, 국세청이 고발 조치한 탈세 부분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젠 박 회장이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금 흐름을 밝히는 데 주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 회장 측도 소환 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숙하는 의미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도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법원은 박 회장을 직접 심문하지 않고 기록만 검토해 구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사실 박 회장의 검찰 소환은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올해 초부터 신원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당시 신원 측은 “정기적인 세무조사일 뿐”이라며 태연한 모습을 보였으나 박 회장이 증여세 탈루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고 그의 부인 및 지인에게 약 19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하면서 상황이 다급하게 흘러갔다. 급기야 지난 1일 검찰은 신원그룹 본사와 계열사, 박 회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그로부터 일주일 뒤 박 회장을 소환했다.
일단 검찰은 박 회장의 사기회생과 조세포탈 혐의에 대한 입증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은 2003년 신원그룹이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회복을 위해 가족과 지인 등의 명의로 신원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증여세와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받고 있는 광고대행사 티앤엠커뮤니케이션즈(티앤엠)도 등장한다.
티앤엠은 신원이 워크아웃 상태였던 2001년 설립된 회사로 명목상으론 신원의 광고대행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부인 송 씨가 최대주주이며 세 아들 역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티앤엠은 창립 이래 지금까지 별다른 영업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며 지분구조나 매출 등에 관한 정보도 거의 공개되지 않아 업계에서 ‘의문의 회사’로 불렸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 신원그룹 건물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처럼 박 회장은 조용히 신원을 장악하며 경영을 이어나가면서도 2007년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이때는 채무자들의 반발로 파산신청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2010년 이번에는 일반회생절차를 요청했다. 이전과 달리 대부분의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 박 회장이 제출한 회생계획안이 가결됐고 250억 원 이상의 채무를 탕감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 당시 박 회장이 재산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허위로 파산과 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급여 말고는 재산이 없다”는 박 회장의 주장과 달리 가족, 지인 등의 명의로 수백억 원의 재산을 숨기고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 더욱이 재산이 없다는 박 회장은 신원이 워크아웃 상태였을 때도, 개인회생을 신청했을 때도 단 한 번도 대저택에서 떠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단독주택은 대지면적 645㎡(195.11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뤄져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박 회장은 1980년부터 이곳에서 살아왔으며 1998년 주택을 포함해 개인재산을 담보로 채권은행으로부터 긴급 지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듬해 신원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등 회사사정이 더 악화되면서 2006년 강제 경매가 결정됐다.
그런데 경매 낙찰자가 다름 아닌 신원이었다. 12억 5000만 원의 회사 자금이 경매 낙찰에 쓰인 것인데 이후 그곳의 거주자는 박 회장으로 변화가 없었다. 이에 대해 검찰도 회사 명의로 낙찰을 받은 집에 살고 있는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는데 신원 측에서는 “사택개념으로 제공된 것이라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검찰과 시각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다른 직원들에게도 사택이 제공된 사례가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신원 관계자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될 때도 회사 영업부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회장님의 개인적인 세무 부분에서 문제가 됐을 뿐 이번 검찰 조사는 신원과 무관하다”며 “일각에서 편법 경영, 비자금, 정·관계 로비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왜곡된 부분이 많아 검찰 조사가 진행된다면 자세히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