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9gag.com 이와타 사토루 사장과 닌텐도 캐릭터들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닌텐도 사의 4번째 CEO를 역임한 인물로, 고등학교 때부터 게임 산업에 몸담은 ‘커리어 게임맨’이었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도쿄 공업대학(TIT: Tokyo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수학했으며, 커리어 초반은 닌텐도의 외주 연구소인 HAL 연구소( 株式会社ハル研究所)에서 시작했다.
지난 1982년 닌텐도의 정규사원으로 HAL에 채용된 이와타 사토루는 소프트웨어 생산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벌룬파이트”, “별의 커비”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이어 1993년 HAL 연구소 소장에 취임한 그는 닌텐도와 협력사업을 계속 진행했으며, 2000년 경 아예 닌텐도로 옮기면서 산업기획본부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2003년 이와타 사토루는 3대 CEO였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퇴임하면서 4대 닌텐도 CEO로 선임됐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닌텐도는 화투 제작업체에서 출발해 비디오 게임사로 발전한 업체다. 작은 공장에서 시작한 닌텐도는 중소기업이 대개 그렇듯 야마우치 집안 가계가 대대로 사장을 물려받는 구조였다. 이런 전통에서 이와타 사토루는 처음으로 야마우치 가계와 관계도 없고, 외부출신 인사 최초의 CEO였다. (일본에서는 지금의 본업과 크게 관계없는 게임업체들이 꽤 많다. 예를 들면 삼국지로 유명한 코에이[光英]도 원래 염색 가공업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업을 물려받은 코에이의 젊은 사장이 취미삼아 배운 BASIC으로 ‘삼국지’를 만들고, 미술 전공한 아내가 일러스트를 도우면서 얼떨결에 게임업체가 됐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사장에 취임한 2003년은 닌텐도가 최악의 시절을 보내던 때였다. 1996년 닌텐도64, 2001년 닌텐도 게임큐브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특히 2003년은 닌텐도의 전 플랫폼 기종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시리즈에 밀리며 연이은 실패를 겪자 제2의 세가가 되는 것 아니냐는 퇴출 위기감까지 나오던 때였다. 명문 게임회사 세가도 세가새턴, 드림캐스트의 연이은 실패로 인해 결국 다른 기업에 인수되며 시장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 사장 취임 이후 퇴출 위기까지 갔던 닌텐도는 Wii(위)와 닌텐도 DS 시리즈로 업계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며 긴 암흑기에서 벗어났다. 지난 2013년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닌텐도가 ‘닌텐도 아메리카 지사’를 내면서 이곳의 사장도 겸했다. 그랬던 이와타 사장도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의 급부상으로 매출 부진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작년 이와타 사장은 담관암이 발견돼 병가를 내고 투병생활을 해왔다. 이와타 사장은 쓸개관에 종양 제거수술을 하던 중 사망했다고 확인됐다.
게임전문 커뮤니티 루리웹에서는 “몸이 안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충격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지금까지 많은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하다”, “게임계의 별이 하나 떨어졌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와타 사장의 명복을 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