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얼굴 보고 ‘간 큰 베팅’ 했나
▲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기명씨(왼쪽사진)와 이광재 전 의원이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유전의혹의 핵심 전대월씨(오른쪽)와의 관련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 ||
먼저 이기명씨의 경우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인 전대월씨가 “지난해 6월 허문석씨에게 유전사업을 설명하는 자리에 이씨가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씨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기명씨가 운영하는 또 다른 ‘광화문 사무실’이 드러나 관심을 모은다.
이광재 의원의 경우도 전씨와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수세에 몰리고 있다. 또한 이 의원과 관련한 몇 가지 소문이 검찰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의원의 경우 아직까지 구체적인 혐의내용이 포착되지 않아 검찰의 칼끝을 끝까지 지켜보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기명 이광재, 두 대통령 측근의 주장과 이번 사건의 관련성을 따져보았다.
철도청(현 철도공사)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 사건의 핵심은 철도청 간부들이 전공도 아닌 분야에 앞뒤 재지 않고 ‘과감하게’ 베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에 모아진다.
지금까지 그 ‘배경’으로 의심받고 있는 정치권 인사는 이광재 의원과 이기명씨 두 사람 정도다. 특히 이기명씨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이광재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등 권력 핵심과 친분이 남다르기 때문에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먼저 전대월씨는 이번 사건에서 사업 기획자와 투자자를 연결시켜 준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전후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데 전씨가 검찰에 구속된 뒤 진술한 내용이 ‘양 이’씨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그는 검찰에서 “지난해 6월 이광재 의원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이 의원이 그 자리에서 허문석씨에게 전화를 했고, 40여 분 후 허씨가 오라는 곳으로 갔더니 이 회장이 허씨와 있었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씨는 또한 “허씨를 만난 곳은 이기명씨의 광화문 사무실이었으며 이 회장은 유전사업 대화 중간에 나갔다”며 “이 의원이 허씨를 소개한 데다가 이 회장도 있으니 이 사업은 정말 잘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씨가 허씨를 처음 만난 곳이 이기명씨의 광화문 사무실이라면 이씨가 당시부터 유전개발 사업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씨는 이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면서 사무실 위치와 구조 등에 대한 대질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와 만난 법조계 한 기자는 이에 대해 “이씨는 전씨의 ‘광화문 회동’ 주장에 대해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전씨가 꾸며낸 작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실 위치나 구조에 대해 전씨와 대질할 용의도 있다’며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씨는 자기 사무실에 허문석씨 말고는 누구도 들인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는 소문이 날까봐 모르는 사람은 절대 사무실에 들이지 않았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조만간 검찰은 이기명씨를 소환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이씨 사무실에서 만났다”는 전씨의 진술만으로 대통령 측근을 ‘섣불리’ 소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검찰이 전씨로부터 이씨의 개입과 관련된 확실한 진술이나 정황 증거를 이미 확보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씨도 전씨와의 대질까지 요구하는 등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양측의 ‘기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기명씨가 ‘말바꾸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이씨가 불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씨는 지난 4월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대월씨를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한 바 있다. 그런데 이씨는 ‘전혀 만난 적이 없다’고 했던 사람을, 그것도 이광재 의원과 함께 의원 사무실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고 스스로 번복해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이밖에도 이기명씨는 허문석씨와 함께 박양수 광업진흥공사 사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만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이에 대해 “박씨는 열린우리당 조직위원장을 할 때 친하게 지냈는데 광진공 사장이 됐기에 사무실 구경을 갔다”면서 “그때 허씨가 인사나 하겠다고 해 함께 갔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북한 건자재 사업이나 인도네시아 철광석 사업을 얘기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부분도 검찰 조사에서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양측이 만났던 9월과 11월 사이는 공교롭게도 허씨가 추진하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와 북한 건자재 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진실 규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광재 의원은 전씨의 진술에 대해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씨는 이 의원으로부터 허문석씨를 소개받을 때 이 의원이 직접 허씨에게 전화를 걸어 ‘연결시켜’ 주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 의원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업가(허씨)를 소개만 했고, 그 소개도 만남을 주선한 게 아니라 전화번호를 주면서 만나보라고 했을 뿐”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허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줬다”는 전씨의 진술에 대해 “전화번호만 알려주었든 직접 전화를 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 검찰로서는 이 의원에 대한 구체적 혐의점을 전혀 포착하지 못하고 있어, 그를 소환하더라도 뾰족한 결과물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광재 의원과 관련한 여러 가지 소문이 계속 나돌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이 의원과 관련된 예기치 않은 ‘폭탄’이 터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 측근 ‘두 이’씨에 대한 검찰의 칼날이 서서히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혐의점을 밝혀낼 ‘고리’를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이 이번 사건을 청와대까지 관련된 큰 밑그림을 그린 상태에서 수사 포인트를 잡아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권력 실세들이 개입된 흔적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사건 관련자들이 권력 실세 개입에 대한 직접적인 진술을 하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 하더라도 청와대까지 연결시켜 수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검찰이 뚝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점에서 두 이씨는 용케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