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이 열악한 전주시가 700억원이라는 거액을 뿌리치고 재정투자를 통해 시민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서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주시가 종합경기장 개발방식을 급선회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승수 시장이 14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종합경기장 개발방식을 발표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일요신문] “당장 700억원이라는 거액이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또 욕심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기업에 전주 시민의 땅 2만평가량을 내줄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14일 개발 방식을 놓고 오랫동안 논란을 빚어온 종합경기장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한다고 밝히면서 한 말이다. 이는 전주시가 당초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개발하려던 계획과는 다른 것이다.
재정이 열악한 전주시가 700억원이라는 거액을 뿌리치고 재정투자를 통해 시민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서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주시가 종합경기장 개발방식을 급선회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전주시가 거액 700억원을 포기한 배경은
전주시는 14일 논란을 빚어온 종합경기장 개발방식을 급선회 했다. 열악한 재정 상황을 고려한 종전의 ‘기부 대 양여’ 개발방식을 거부하고 자체 재원을 투자해서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와 같은 도심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애초 전주시가 구상했던 ‘종합경기장 이전·개발사업’은 총 1천600여억원을 투입해 종합경기장(12만여㎡)을 허물고 그 자리에 쇼핑몰·영화관 등을 갖춘 컨벤션센터와 200실 규모의 호텔 등을 짓는 것을 말한다.
시는 열악한 재정 상황을 고려해 ‘기부 대 양여’ 방식을 선택, 2012년 롯데쇼핑을 민간사업자로 선정하고 롯데쇼핑에 종합경기장 부지의 절반을 주기로 했다.
대신 롯데쇼핑은 도심 외곽에 육상경기장과 야구장 등을 따로 건립해준다는 계획이었다. 그 건립 비용은 700억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김승수 시장이 이러한 종합경기장 개발방식을 거부하고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전주시-롯데쇼핑의 투자협약은 사실상 파기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시가 이처럼 종합경기장 이전 재원을 외부 도움 없이 자체 투입해서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은 전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상권 붕괴를 재생을 통한 미래가치를 지향하려는 3가지 목적에서다.
전주의 심장부에 시민광장과 생태도시숲, 문화공원 등이 들어섬으로써 도시와 경제가 제대로 숨을 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 시장은 종합경기장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한 데 대해 롯데쇼핑의 대형쇼핑몰 건립에 따른 소상공인들의 몰락을 막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북 전주시가 종합경기장을 재정투자로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개발은 총 1천500억원을 투입, 4년간 종합경기장 일부를 허물어 컨벤션과 호텔(민간투자)을 짓고 나머지 부지에는 연간 4천만명 이상이 찾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처럼 도심 속 시민공원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가칭 휴먼파크 조감도. <전주시 제공>
◇ 지역상권 보호 ‘우선’
전주시가 전주종합경기장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것은 1차적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에 방점이 찍혔다.
종합경기장에 대형 쇼핑몰이 입점하면 지역 소상공인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전주시의 판단이다.
전주시는 지난해 11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대형쇼핑몰 출점이 지역상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태조사’ 자료를 그 근거로 들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등 3개 지역 복합쇼핑몰 반경 5∼10㎞ 내 314개 소매점 매출은 46.5%(점포당 월평균 1천348만원), 방문 고객수는 40.2%가 각각 쇼핑몰이 들어서기 전보다 감소했다.
점포당 매출로 따지면 월평균 1천300여만원으로 연간 1억6천만원이 줄어드는 셈이 된다.
특히 전주시는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상공인들이 많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전주시의 소상공인 종사자와 사업체 비율은 각각 37.0%(21만5천427명 중 7만9천670명)와 85.9%(5만713개 중 4만3천561개)로 같은 기간 전국의 31.6%와 84.6%보다 높다.
더욱이 쇼핑·문화생활·식사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복합쇼핑몰의 경우 소비자들의 평균 체류시간이 4시간으로 대형마트 평균 체류시간의 2∼3배에 달한다. 그만큼 돈 쓸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전주시가 당장 700억원에 달하는 대체경기장(육상경기장·야구장) 건립비용을 주겠다는 롯데쇼핑 측의 제의를 거절한 이유 중의 하나다.
전주시는 복합쇼핑몰의 지역경제 기여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A아울렛의 경우 개점 당시 왕복 4차선 진입도로 개설에만 국‧도‧군비 266억원이 투입됐지만 2012년 아울렛 측은 매출의 1~2% 수준인 13억8000만원만 지방세로 냈다는 것.
입점당시 35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내세웠지만 실제 지역 주민 고용창출은 절반 수준인 1250명이었으며 B아울렛의 경우 종사자 1400여 명 중비정규직 비율이 97.6%에 달하는 것이다.
◇ 도심공원…미래적 가치로 충분
전주시는 도심공원이 미래 가치로 충분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종합경기장을 문화와 예술, 생태 등이 담긴 공간으로 재생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화력발전소를, 독일 뒤스부르크의 엠셔파크환경공원은 공업단지를 각각 재생해 세계 곳곳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종합경기장이 근대문화유산은 아니지만 그 안에 시민들이 열광하고 환호하고 눈물짓던 기억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시는 덧붙였다.
나아가 시는 심장부에 있는 종합경기장 부지를 시민들이 모여 대동하고,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치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최근 공개한 ‘대도시 도심의 녹지와 건강’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 구획당 가로수가 11그루 더 많아지면 연간 개인 소득이 2만 달러가 증가하거나 평균 소득이 2만 달러가 더 많은 부자 동네로 이사했을 때와 같은 정도로 심장대사 위험이 줄어들거나 1.4살 더 젊어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준 것으로 밝혀졌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 전주시 구상 시민공원 모델은...‘뉴욕 센트럴파크’
전주시가 구상하고 있는 시민공원의 모델은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다.
연간 4천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센트럴파크는 1876년 정식 개장 이전에는 모기가 들끓는 습지와 쓰레기처리장에 불과했다. 또 쓰레기처리장 주변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조경공사를 거쳐 현재 모습과 같은 도심공원으로 거듭났다. 이후 누구라도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한 가운데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향상시킴은 물론 지역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시에 따르면 최근 뉴욕시가 센트럴파크의 지역경제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이벤트 행사 등 경제활동으로 3억9천500만달러(4천470억원), 공원주변 부동산 지가 상승 등 프리미엄 속성의 부가가치로 177억달러(20조원), 문화자원·방문 지출 증가·세금수입 등 6억5천600만달러(7천424억원) 등 총 187억5천100만달러(21조2천223억8천180만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됐다.
도심공원 조성사업은 국내에서도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주민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더욱 질 높은 생활환경이 요구되면서다. 나아가 문화와 예술을 접목한 도시재생을 통해 지역발전의 활로를 찾은 사례가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기지, 춘천 옛 캠프페이지 등이 센트럴파크를 모델로 도심공원 조성에 나서고 있다.
김승수 시장은 “세계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그 도시 중심에 좋은 공원과 광장 등이 있는데 종합경기장을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숲속공원과 광장으로 조성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