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패 당한 엘리엇 장외전 반격 노린다
삼성물산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 건을 찬성 69.53%로 가결했다. 사진제공=삼성물산
합병 주총 이틀 전인 15일 삼성증권 윤용암 사장은 “지금까지 (엘리엇의) 모습을 볼 때 이제 시작”이라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삼성을) 괴롭힐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인 미국 뉴욕 시간 15일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도 한 투자자 행사에 참여해 삼성물산 투자와 관련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삼성물산 지분 7.12%는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산”이라며 “우리의 투자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관리이며, 행동주의 투자과정에서 벌이는 각종 소송도 이 같은 위험을 조정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삼성 관련 투자에서도 손실위험에 노출된다면 소송 등을 통해서 그 위험을 줄이겠다는 뜻이 된다. 아울러 그는 “한국에는 20년 이상, 삼성에도 수년간 투자해왔다”고 밝히면서 “이번 합병 반대의 이유가 합병비율을 높이거나 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고 주주들에게 좀 더 우호적인 회사 경영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해석하면 합병 주총에서는 패했지만 삼성 측 경영에 제 목소리를 계속 내겠다는 뜻이다.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우선 합병주총 과정에서의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물산은 이번 주총 준비과정에서 전 직원에게 주주명부를 제공, 이른바 위임장 받기 캠페인을 벌였다. 주주명부에는 주소와 이메일, 특히 개인 재산사항인 보유주식수가 포함된다. 삼성 측은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주주들과 접촉해 합병의 당위성을 설명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전직 정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법무법인 지향 이은우 변호사가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며 “주주명부에 대한 접근은 접근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주어져야 하며, 주주명부 내의 정보는 주주총회 등의 안내에만 활용돼야지, 주주들의 의사판단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활용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FT는 삼성물산 직원들의 방문을 받은 주주가 불쾌감을 드러낸 발언도 소개했다. 만약 삼성물산이 직원들에게 불법적으로 주주명부를 제공했고, 직원들이 이를 이용해 주주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했다면 이렇게 받은 위임장은 그 효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주주총회 관련 의결권 위임을 권유하는 자는 대리인을 선임한다. 이 대리인만이 의결권 행사방향에 대한 권유를 할 수 있다. 삼성물산이 이번 주총 관련 합병 찬성 등의 대리인으로 선임한 이들은 고광훈 씨 등 8명이다. 합병반대 권유를 한 엘리엇과 소액주주 단체인 네비스탁도 우편 등은 홈페이지와 보도자료 등을 통해서만 위임장 제출을 독려했다.
이번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삼성SDI와 삼성화재 등 삼성물산 주주사들에 대해서도 엘리엇 등이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삼성화재의 삼성물산 지분은 지난해 6월 삼성생명으로부터 매입했다. 당시 매입가격은 주당 7만 1601원으로 합병가액(5만 5767원)을 크게 웃돈다. 합병 찬성 표를 던져 회사 자산의 가치훼손을 방임했다는 공격을 받을 여지가 있다.
특히 삼성전자 지분 1.3%를 보유한 삼성화재는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을 넘는 반면 삼성 측 지분율은 15%에 불과하다. 임시주총을 통해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만한 조치를 이뤄낼 여지가 크다. 자사주를 12.4% 보유하고 있지만, 백기사 역할을 할 곳이 마땅치 않다. 시가로만 1조 7000억 원이 넘는 데다, 제3자가 이를 인수하려면 금융감독당국의 보험사 대주주 적격심사를 받아야 한다.
삼성물산 주주총회 행사장 입구에는 합병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삼성SDI에 대해서는 ‘순환출자 해소’라는 아킬레스건을 공략하는 방법도 택할 수 있다. 이번 합병으로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 7.4%는 합병법인 지분 2%로 바뀐다. 기존 삼성SDI의 제일모직 지분까지 합하면 지분율은 4.73%에 달하게 된다. 삼성SDI에 이 지분을 매각, 주주에게 배당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 성공한다면 합병법인에 대한 삼성 내부 지분율은 39%에서 35%대로 떨어진다.
합병이 완료되면 엘리엇은 합병법인 지분 2% 이상을 받게 된다. 엘리엇에 동조한 외국인과 일부 소액주주들까지 포함하면 지분율은 그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상법상 3% 이상 주주는 회계장부 등 회사 중요 서류를 열람, 등사할 수 있다. 또 회사에 법이나 정관위반 사실이 의심될 때 이를 조사하기 위한 검사인의 선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등기임원의 잘못이 확인되면 주주총회에서 해임안이 부결돼도 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권한도 갖는다.
현행법은 감사 선임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 삼성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는 뜻이다. 엘리엇 등이 마음만 먹으면 사외이사인 감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삼성은 이미 합병법인에 거버넌스위원회를 만들기로 약속했다. 엘리엇 등 합병에 반대했던 외국인 주주 대표가 사외이사로 거버넌스위원회에 참가하게 되면 삼성으로서는 아주 불편해질 수 있다.
폴 싱어 회장도 15일 행사에서 엘리엇의 투자철학과 투자결정 과정을 소개하면서 “회사와 산업을 이해하고, 왜 경영성과가 부진한지 가능한 해결책은 뭔지 고민한 후 상황을 바꾸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고 말했다. 추후 삼성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뜻을 엿볼 수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번 합병주총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곳은 국민연금, 다음이 KCC다. 삼성물산이 KCC로 자사주 5.6%를 넘기지 않았다면 주총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엘리엇이 법원에 낸 KCC의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기각됐지만, 제일모직 대주주인 KCC에게 삼성물산 자사주를 넘기는 게 삼성물산의 다른 주주들의 권리를 훼손시켰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은 유보됐다. 엘리엇으로서 이 소송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주총의 정당성을 공격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관련 자사주에 대한 국내 법규가 상세하지 않아 법원의 판단이 중요하다. 본안 소송을 벌여 대법원까지 갈 경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합병결과 자체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폴 싱어 회장은 “한국 시장은 최상위 투자대상국 가운데 하나”라며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한 삼성물산 합병 저지를 통해 기업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다른 나라들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병 반대활동은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실제 이번 합병과 관련해 주요 외신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삼성의 원안대로 합병이 관철되면서 외국인들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증시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과 뜻이 다르다면 주주로서는 주식을 팔고 떠나든지, 아니면 경영진을 압박해 원하는 방향으로 경영방침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면서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삼성물산 주총에서 합병안건이 통과된 지난 17일 UBS 창구로 대규모 매도물량이 쏟아졌다. 주로 외국인 물량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외국인 지분율이 30%를 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외국인이 단숨에 지분을 매각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주식은 보유한 채 배당강화 등 주주이익 극대화로 주가를 끌어올린 후 차익을 실현하려는 선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도 이 같은 외국인 주주들의 움직임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열희 언론인
삼성 합병법인 숙제는 이재용의 삼성SDS 지분 활용법 주목 이재용 부회장 합병이 완료되면 이 부회장의 제일모직 지분 23.23%는 합병법인 지분 16.4%로 바뀐다. 제일모직의 삼성내부 지분율 52.24%가 합병법인 지분율 39.93%로 낮아진다. 이 가운데 삼성화재, 삼성전기, 삼성SDI 등의 합병법인 지분 8.71%는 순환출자에 해당된다. 당장 매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환출자 규제가 강화되면 강제 매각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 방침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도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향이다. 그런데 이들 지분을 삼성그룹 내에서는 매입하기 어렵다. 합병법인이 그룹 지배구조 상단에 위치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지배하는 만큼 그 어떤 계열사가 매입해도 순환출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엘리엇 파문을 겪은 만큼 외부에 매각하기도 쉽지 않다. 이 부회장이 매입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16.4%의 지분율을 2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시가총액으로는 2조 5000억~3조 원에 달한다.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 11.25%의 시총이 약 2조 5000억 원이다. 맞교환하면 꼭 떨어진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과 제일모직 이서현 사장의 합병법인 지분(각각 5.47%)의 교통정리 가능성도 점쳐진다. 호텔과 유통부분, 패션부분을 떼어내는 대가로 이 지분을 이 부회장 또는 합병법인에 넘길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강화작업도 계속될 전망이다. 합병법인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4.1% 지배력을 확보했지만, 삼성생명을 통한 7.6% 지배력은 아직 다소 불안하다. 금산분리가 강화되거나 보험업법 개정(삼성생명의 총자산에서 삼성전자 비중이 너무 높아 이를 낮춰야 한다는 내용)이 이뤄지면 자칫 강제매각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어서다. 규제 강화가 아니더라도 이번 엘리엇 파동을 겪으면서 삼성전자 외국인 주주들이 경영간섭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엘리엇 파동을 겪으면서 전 재계가 지배력 강화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면서 “삼성은 다른 그룹 대비 지배구조가 더 복잡하고, 최대주주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 다양한 방법의 지배력 강화 노력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