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운 데 놔두고 엉뚱한 곳만 벅벅”
5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 당 안팎에선 혁신위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졌음에도, 혁신안에 내년 총선을 이기기 위한 필승전략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실제 문재인 대표는 앞서 혁신위가 발표한 사무총장제 폐지를 비롯해 ▲재보궐 원인 제공시 무공천 ▲부정부패 연루 당직자 당직 박탈 ▲당무감사원 설립 및 당원소환제 도입 등이 포함된 혁신안을 지난 13일 당무위원회와 20일 중앙위원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혁신위 내용과 행보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혁신위’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외부적 요인으로 여권발 ‘핫이슈’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가려졌다는 분석이다. 혁신위 출범 이후, 혁신위가 1, 2, 3차 혁신안을 발표했던 시기들을 살펴보면 당시 여권발 뉴스가 상당한 파급력을 지녔다.
혁신위가 지난 5월 27일 공식 출범했을 당시는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준비 기간이었던 데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초기였다. 1차 혁신안을 발표했던 6월 23일 이틀 후인 25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모든 뉴스를 빨아들였다.
이후 최고위원회-사무총장 폐지 등을 담은 2차 혁신안을 발표한 7월 8일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친박계와의 권력투쟁에 밀려 결국 사퇴한 날이다. 7월 10일 3차 혁신안 발표 역시 ‘유승민 사태’ 후폭풍으로 혁신안 내용이 주요 뉴스에서 밀렸다. ▲국회의원의 기득권 타파(1차) ▲계파 대립 극복(2차) ▲당원제도 혁신(3차) 등 정당제도에 필요한 굵직한 내용들을 담은 혁신안이었지만 메르스와 ‘유승민 사태’로 인해 야권 지지층에게조차 충분히 소개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내부적 요인을 따져보면 마냥 ‘메르스-유승민 사태’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는 내년 총선도 어렵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혁신위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졌음에도 ‘이기기 위한 필승전략’이 혁신안에 담겨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망감을 나타내는 당 관계자들은 혁신의 가장 핵심인 ‘공천개혁’ 문제가 빠진 점을 꼽고 있다. 3차까지 내놓은 혁신안 중 공천과 관련한 내용은 현역의원을 평가하는 평가위원회 구성과 공천 경선에서 투표권이 주어지는 권리당원의 기준 강화 정도다. 현역의원들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평가위원회의 경우, 평가위원을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하되 위원장을 당 대표가 임명하도록 했다. 이에 비주류들은 결국 문 대표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문 대표는 임명권을 혁신위로 넘긴 상태다.
하지만 외부인사 평가위원을 어떤 기준으로 누가, 언제 구성할지에 대해서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공천에 영향력이 있는 권리당원에 대한 기준을 연 3회 당비 납부에서 6회로 바꿨지만 언제부터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막연한 상태다.
이에 대해 비주류 측 당 관계자는 “혁신위는 지금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가장 핵심적인 공천개혁안을 내놓고 치열하게 당을 설득해야 하는데, 총선 이후에나 논의할 최고위 폐지를 말하고 있다”며 “가려운 데를 먼저 긁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비주류 측 사이에서는 공천 혁신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에 대해 혁신위와 친노 측이 서로 짜고 권리당원을 사전에 입당시켜 공천에 유리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그만큼 주류-비주류, 친노-비노 간의 불신이 뿌리 깊다는 반증이다.
혁신위 측에서는 가장 핵심이 되는 공천 혁신 문제가 폭발력이 큰 만큼 정당정치에 기본이 되는 혁신안들부터 중앙위 의결을 거치게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관심이 증폭되는 공천 문제를 먼저 내놓을 경우, 당원제도 개혁이나 계파갈등을 빚는 직제 개편이 더 어려워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당 관계자는 “의원들이나 지지자들이 가장 관심이 있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공천 문제가 초반 혁신안에 빠져서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혁신위의 전략적인 선택”이라며 “공천 혁신은 뭘 내놓아도 파급력과 논란이 예고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안부터 통과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혁신안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이제 진짜 혁신의 시작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주목할 만한 혁신위원들의 ‘조용한’ 행보도 혁신위가 뜨지 못하는 이유로도 꼽힌다. 하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전략적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내부논의는 치열하게 하더라도 김 위원장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진 만큼 혁신위원들이 일일이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혁신위원 중에 알 만한 사람은 조국 교수 정도인데, 평소 하던 발언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라며 “당이 김 위원장에 전권을 줬고 혁신위에서 여러 말이 나오면 안 되니까 혁신위원들이 혁신안 내용에 대한 설명 정도 선에서 언급하는 거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제 혁신위의 남은 과제는 공천개혁과 당 정체성 확립 문제다. 이에 대한 혁신안은 8월 중순 이후부터 발표될 예정이다. “사약을 앞에 두고 상소문을 쓰는 심정으로” 혁신위를 맡은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혁신이 곧 국민의 명령’임을 강조하며 ‘고강도 혁신안’을 예고했다. 지금까지의 혁신위가 본게임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는지는 이제 진짜 ‘살 길’을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김종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