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소문 업계 촉각 세우기도…
경찰이 파악해보니 사고 상황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가벼운 접촉사고였던 것. 경미한 사고인 만큼 부상자는 없었다. 김 씨의 차량도, 사고를 당한 차량도 모두 심하게 파손되진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그쯤에서 현장 사진을 찍고 간단한 운전자 신상 파악 후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 김 씨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피곤한지 눈이 심하게 충혈된 김 씨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혀가 살짝 꼬부라진 채 횡설수설을 하기 시작했다. 음주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경찰이 김 씨에게 다가가자 김 씨가 “음주측정을 하지 않았느냐”며 우물우물댔다. 음주측정기를 꺼내지도 않았던 경찰은 김 씨의 말과 행동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김 씨를 지구대로 연행했다. 사실 경찰이 김 씨를 연행까지 하게 된 것은 음주 정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 씨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경찰이 김 씨의 바지춤에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골반에 걸쳐진 힙합바지를 입고 있던 김 씨는 바지가 자꾸 내려갈 기미를 보이자 바지춤을 계속해서 추켜올렸다. 그때 김 씨의 바지에서 ‘대마초’로 보이는 물건이 경찰에 포착됐다. 눈이 충혈된 채 횡설수설을 하는 것이 단지 음주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경찰은 직감했다. 최근 강남 일대에서는 일반인들이 마약을 흡입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터였다. 여러 정황상 김 씨 역시 마약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상당했다.
지구대로 연행된 김 씨는 경찰의 추궁에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역시나 마약 복용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김 씨가 흡입한 마약은 대마초였다. 김 씨의 차량에선 피우고 남은 대마 1봉지와 대마용 파이프 1개가 추가로 발견됐다. 김 씨는 대마초를 피운 것과 더불어 음주까지 했는데, 사고 당시 김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에 해당하는 0.128%였다.
황당했던 건 김 씨의 당당한 태도였다. 김 씨는 경찰에게 자신이 대기업 직원이며 밤에는 취미로 힙합음악을 한다고 소개했다. 대마초는 이태원에서 구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지난 4월 용산 이태원동에서 한 외국인으로부터 ‘90만 원’어치의 대마를 구입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낮에는 말끔한 대기업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대마초를 피우고 교통사고까지 낸 사건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지사. 이런 와중에 한때 증권가 일각에서는 김 씨의 마약 복용 사실과 함께 해당 대기업이 어디이며, 김 씨가 대기업 임원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김 씨는 대기업 A 사 소속으로, 임원이 아니라 실장급이라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A 사 측은 내부 직원의 이러한 ‘위험한 일탈’을 파악하고 있었을까. 그런데 A 사 측은 “김 씨는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A 사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렇지 않아도 사건 이후 해당 직원이 있는지 내부에서 파악해봤으나 그런 사건을 벌인 직원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의 이름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른다.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결국 A 사 소속이라는 김 씨의 진술은 A 사의 부인으로 사실 관계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김 씨는 ‘마약류에 관한 법률 위반 및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김 씨가 마약 복용 사실을 시인한 만큼 조만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의 경우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고 이전에 전과도 없었던 상황이라 불구속 입건했다”며 “조사 결과 김 씨가 이전에 외국생활을 하고 온 것으로 파악됐다. 아마 그때부터 마약을 접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마약 사범’ 대중화 까닭 모바일·인터넷으로도 구매 이처럼 마약의 유혹은 암암리에 퍼지며 점점 대중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2일에는 한 30대 남성이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마약에 취한 채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당시 체포된 송 아무개 씨(35)는 난동을 부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주사기를 흘리기도 했다. 우연찮게 바지춤에서 대마초를 보인 김 아무개 씨와 비슷한 사례인 셈이다. 최근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검거된 마약사범은 3370명으로 작년 같은 시기(2751명)에 비해 약 22.5%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모바일 기기, 인터넷 구매 등의 대중화가 마약류의 유통을 촉진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구체적인 수치 외에도 신종 마약을 투여하거나 이에 중독된 환자들의 상담 사례도 증가했다. 마약류를 판매·구입하다 경찰에 적발된 경우 역시 전 해에 비해 무려 4배 이상 급등한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중국과 북한에서 마약들이 국내로 반입되고 있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