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카·펌프질에 멍드는 ‘사랑을 그대 품안에’
▲ ‘열애=결혼’ 공식을 만든 이재룡-유호정, 최수종-하희라, 손지창-오연수 커플(위부터 시계방향). | ||
드라마나 영화에 연인 관계로 출연해 비록 연기지만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이들이 정말로 사랑에 빠져 버리는 사례는 이들 외에도 종종 있어왔다. 외국에선 이런 사례가 더 흔한데 할리우드 발 열애설 기사의 대부분이 같은 작품에 출연해 연인으로 발전한 케이스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진솔하게 연기하다보니 정말 사랑에 빠진 것일까.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이 가장 적합한 설명일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리 간단치 않고 연예계에서 열애설이 갖는 의미 역시 순수함 그 이상의 복합성을 내포하고 있다.
1960년대 한국 국민들은 은막의 톱스타였던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 소식에 열광했다.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두 배우가 실제로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 ‘사건’은 한국 사회가 연예인의 사생활에까지 관심사를 확대한 계기가 됐 다.
‘극중 연인의 실제 열애설’은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특히 이렇게 만난 스타 커플들이 연이어 결혼에 골인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김지미-나훈아, 나한일-유혜영, 유동근-전인화, 최수종-하희라, 손지창-오연수, 유호정-이재룡, 박철-옥소리, 차인표-신애라 등이 그 주인공으로 대부분 지금도 연예계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왕성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나같이 화제를 뿌리며 결혼한 데 반해 연애 과정은 비밀리에 이뤄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난 절친한 동료 배우로만 여겼을 뿐 그들이 열애 중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기까지엔 시간이 필요했다. 손지창 오연수 부부의 경우 열애설이 터지는 것을 우려해 가능한 한 외출을 꺼리며 양쪽 집을 오가는 방법으로 데이트를 즐겼을 정도다.
열애 사실 자체가 외부로 알려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결혼에 성공한 커플로는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유명하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한 편으로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차인표는 이 드라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신애라와 실제로 사랑에 빠졌다. 그 사실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화제가 됐는데 군에 입대한 차인표를 면회 간 신애라의 모습이 <일요신문>에 포착되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차인표가 군대에서 휴가 나온 시기에 맞춰 결혼식을 올렸다.
극중 연인이 실제 연인으로, 다시 결혼까지 그 인연을 이어간 커플은 그 이후에도 계속 등장했다. 김호진-김지호, 유준상-홍은희, 김지영-남성진, 연정훈-한가인, 김보연-전노민 커플 등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결혼에 골인한 이들 가운데 몇몇은 아쉬운 이혼 소식을 들려주기도 했는데 최근 폭행과 유산으로 얼룩진 이찬-이민영 커플 역시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 함께 출연하며 연인이 된 바 있다.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 들어서 더욱 활발해졌다. 90년대와 달라진 사회 풍토는 연예계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90년대만 해도 극중 연인으로 만나 열애에 빠진 이들은 하나같이 결혼이라는 성과물을 만들어 냈다.
▲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 출연한 후 결혼에 골인한 신애라-차인표(위), <올인>의 이병헌-송혜교 키스신. | ||
이처럼 당시 숱한 열애설이 쏟아져 나온 이유는 세간의 관심이 연예계에 집중되면서 이에 걸맞은 뉴스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혼이 가시화될 정도가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열애의 기운만 엿보이면 금세 열애설이 터져 나왔다.
이처럼 정체불명의 열애설이 양산되자 일각에서는 몇몇 열애설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연말에 방영된 드라마 <화려한 시절>을 통해 공식 커플이 된 류승범-공효진 커플이다. 당시 SBS 주말연속극 <화려한 시절>은 다소 빈약한 스쿼드로 출발했다. 주요 출연진이 지성 박선영 류승범 공효진 등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지성은 신인에 가까웠고 류승범 역시 스크린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어도 브라운관은 처음이었다. 따라서 드라마를 띄우기 위해 류승범-공효진 열애설을 의도적으로 퍼트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았다. 드라마가 종영한 뒤 열애설도 서서히 잊혀져갈 무렵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두 사람은 함께 동시 입장하며 열애 중임을 떳떳하게 드러냈다. 이로써 조작된 열애설 의혹을 한방에 날려 버린 두 사람은 이후 함께 영화 <품행제로>에도 출연했으나 2003년 결별했다.
반면 결혼은 아니지만 열애 사실 자체를 당당히 밝힌 연예계 공식 커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처음으로 노출신을 선보인 배두나는 상대역 신하균과 실제 연인이 돼 충무로 공인 커플로 지내오다 아쉽게 결별하고 말았다. 드라마 <흐르는 강물처럼>에 부부로 출연하며 연인이 된 김주혁-김지수 커플은 충무로로 활동 영역을 옮겨 지금도 공식 커플로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 화제를 뿌리며 결혼에 골인한 ‘극중 연인 실제 열애’ 커플들. 위부터 김호진-김지호, 유준상-홍은희, 연정훈-한가인. | ||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청춘만화> 등에서 호흡을 맞춘 권상우-김하늘의 열애설도 화제가 됐다. 역시 메가톤급으로 분류될 만한 대형 스캔들이었지만 당사자들이 강하게 부인해 그리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또한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김래원-정려원, <궁>의 주지훈-윤은혜 등도 마찬가지로 열애설에 휘말렸지만 해프닝에 그치고 말았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연인>에 함께 출연해 열애설에 휘말린 이서진과 김정은. 양측 모두 열애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김정은의 매니저는 “둘 다 방배동에 살아 집이 가까워 몇 차례 만나 차 마시고 식사한 것은 사실”이라며 “드라마를 함께 작업하며 5개월여를 같이 지낸 동료로서 친해진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서진 측 역시 같은 입장이다. 아직 이서진은 연예계 데뷔 이후 열애 사실을 공개한 바 없다. 하지만 심은하 이효리에 이어 김정은까지 여성 톱스타들과 연이어 ‘설’에 휘말린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됐다.
이런 열애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대한민국 최초의 연예 전문기자로 알려진 정홍택 상명대 석좌교수는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즘 열애설의 90%는 사실”이라며 “이제는 열애설이 흠이 되기보단 일종의 마케팅 도구가 됐다”고 얘기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지난해 <일요신문>에서 연예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였을 당시에도 이런 열애설이 70~80%의 신빙성을 갖는다고 응답한 바 있다(<일요신문> 751호 참조).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