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병풍’으로, 때론 ‘홍위병’으로…
미국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동행 의원들이 7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더블트리 바이 힐튼호텔에서 열린 한국전참전용사 만찬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7월30일 이른 아침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김무성 대표와 함께 방미 중인 장윤석 의원 전화연결 인터뷰가 잡혔다. 장 의원은 김 대표 방미 수행단장을 맡고 있다. 장 의원은 미국에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에 출연해 김 대표의 큰절 논란에 대해 일일이 해명했다.
“우리 관습 중에는 정말로 존경하는 어른들에 대해서 그 존경의 뜻의 표할 때 큰절을 하지 않습니까. 저도 지역구 경로당에 가 어르신들 뵈면 먼저 큰절부터 합니다.”
김 대표가 시켰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장 의원 인터뷰는 지금 당의 현주소를 나타낸다는 반응이다. 정국을 뒤흔들었던 국회법 거부권 파동으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뒤 당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줄서기’ 모습의 연장선상이라는 얘기다.
김 대표의 방미 수행단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 의원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 김학용 비서실장 등 11명이 뽑혔는데 경쟁률이 상당히 치열했다는 전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거물급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점, 외교가 어떻게 이뤄지고 김 대표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볼 수 있다는 여러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열흘간 김 대표를 알현(?)할 수 있다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방미 수행단에 넣어달라고 했다는 한 의원은 “김 대표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몇몇 루트를 통해 말을 넣어봤다”며 “김 대표와는 가깝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못하는 사이여서….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뭐”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몇 차례 김 대표의 중국행에도 끼지 못해 이번에도 상당히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애초 수행단에 포함돼 있었지만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강석호 의원. 김 대표가 2기 당직자를 인선하는 과정에서 “수도권 의원은 금메달, 영남권은 동메달” 발언을 하자 잔뜩 뿔이 났었던 강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같이 미국에 안 가겠다고 하니 형님(김무성 대표)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해서 그냥 가기로 했다”고 웃었다는 후문이다. 지금 당에서는 김 대표를 거스를 자가 없는 것이다.
여름 휴가 중이지만 청와대에서 두문불출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이 내준 ‘노동개혁’이란 숙제를 풀고자, 또 박 대통령 호위무사인 국가정보원을 지키겠다는 여러 의원들이 다각도로 활약 중이다. 하루의 이슈를 전달하는 당 회의에서 요즘 노동개혁과 국정원 해킹 파동 외에 다른 언급을 들어볼 수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하는 당 한 관계자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지도부마다 우선과제가 달랐고, 현안이 너무 많이 터져 챙겨야 할 일들이 숱하게 많았다”라며 “그런데 지금 지도부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고 우리도 할 일이 없다”고 했다.
현재 노동개혁 선봉에는 이인제 당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장이 섰다. 그는 당 최고위원이다. 그런 그의 임명 과정은 당과 청와대가 얼마나 수직적인 관계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68일 만의 고위 당정청 회의가 진행된 7월 22일 총리 공관에서는 당에 노동개혁 특위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이인제 최고위원이 적격이라는 세평도 등장했다. 다음날 이 최고위원은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장을 덥석 맡았는데,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들은 바 없다”며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그래도 6선 최고위원이신데 누가 뭘 하라 마라 하면 기분 좋으시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7월 28일 오전 일찍 청와대로 갔다. 특위 공동간사로 내정됐던 이완영 의원과 박종근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함께 청와대로 가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최원영 고용복지수석 등을 비공개로 만나 노동개혁을 어떻게 풀 것인가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특위가 구성되고 1차 회의도 하기 직전의 일이다. 여권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당 특위는 당 산하 기구인데 이를 구성하자는 말도 청와대 인근에서 나왔고, 특위 위원들 간 상견례를 겸한 1차 회의 직전에도 청와대에서 회동을 하고. 당 꼴이 말이 아니다. 지금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당이 청와대에 끌려 다닌다고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임계점을 향하고 있는 모습인데 자꾸 이렇게 수직적으로 가선 곧 터진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의 돌발 출몰은 이러한 당의 불만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원래 정무수석 자리가 당청 교각 역할에다 청와대의 대야 협상창구여서 “현 정무수석이 잘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스파이 활동하듯 슬쩍 나타나선 사라지는 잠행의 이유가 뭔지에 대해선 다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7월 30일 오후에도 현 정무수석은 국회에 한 시간도 채 머무르지 않고 돌연 떠났다. 동선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당이 자꾸 청와대에 끌려간다는 이 판국에 정무수석까지 지하로 다닐 필요가 없다. 그러면 꼭 구린 일을 시키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지 않느냐”며 “전에는(이정현 박준우 조윤선) 너무 안 해서 난리더니 이제는 너무 설쳐서 난리”라고 했다.
국정원 해킹 정국에 대해서도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영남권에서 특히 거세게 나온다.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국정원은 슬로건 그대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당이 너무 새정치민주연합에 끌려 다닌다”라며 “이것이 혹 의원들의 공명심에서 파생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새누리당에선 당 수뇌부는 물론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 검찰 출신의 권성동 박민식 김회선 의원 등이 해킹 정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해외토픽에 나올 정도로 국정원이 희화화되는 상황까지 오자 이들이 사심(私心)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영남권 중진 의원은 “국정원 방문도 허용하고, 국정원 관계자가 민간인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숨진 직원(임 아무개 과장)의 유서도 공개하고 승용차도 보여주고….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우리는 안보에서까지 민주적으로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보위 한 관계자는 “기자들이 묻지 않았는데 굳이 브리핑하지 않아도 될 내용까지 발설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꺼내 든 ‘의원 정수 확대, 세비 절반 삭감’을 두고 새누리당에선 더욱 치열하게 줄서기가 횡행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식으로 논란이 가열되면 김 대표가 말하는 오픈프라이머리도 실현불가능하게 되고 그렇다면 기존의 룰대로 지도부가 좌지우지하는 공천으로 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줄서기의 계절’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