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건 중 1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25일 국무총리 소속 ‘부패척결 추진단’ 공식 출범식이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려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격려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지역 수사기관으로 이송할 거면, 정부합동 부정·부패신고센터는 왜 만들었나. 지역 내부에서 해결될 문제면, 애초부터 신고도 하지 않았다.”
강원도 강릉시의회 소속인 기세남 새정치민주연합 시의원의 말이다. 기 의원은 지난해 10월 강릉 정동항 개발사업과 관련, 강릉시의 특정 사업자 A 사에 대한 특혜의혹을 두고 국무총리실 정부합동 부정·부패신고센터에 진정을 냈다. 정동항 문제는 지난 2009년, 강릉시가 정동항을 ‘어촌관광구역’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민간 사업자를 모집한 이후부터 답보 상태다.
기 의원과 인근 지역주민들은 ‘강릉시가 기존 법을 어기면서까지 특정업체 A 사에 불법 건축허가를 내주고, 사업시행 특혜를 내줬다’며 기나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기 의원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지난 2013년에 감사원 진정을 통해 사업자의 사문서 위조 혐의 등 일부 문제가 드러나 강릉시에 시정조치 통보가 내려왔다고. 하지만 이후 시의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실제 법정에선 사업자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기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동항 개발사업 문제는 지역 내 강력한 카르텔로 인해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고민 끝에 지난해 10월 막 운영을 시작한 국무총리실 부패척결단의 정부합동 부정·부패신고센터에 진정을 냈다”라며 “하지만 정작 연락이 온 곳은 춘천지검 강릉지청이었다. 부패척결 추진단의 신고센터에서 진정 내용을 다시 지역 수사기관으로 이송한 것이다. ‘도로아미타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국무총리실 소속의 ‘부패척결 추진단’은 지난해 7월 25일 ‘불퇴전의 각오로 구조적 부정부패와 적폐 뿌리를 뽑는다’는 포부를 내세우며 공식출범했다. 추진단은 국무1차장이 단장을 맡고 법무부, 검찰청, 국민권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등 관계부처 인사들을 파견 받아 총 4개 팀으로 짜여졌다. 추진단은 그해 10월부터 익명 신고를 보장하는 ‘정부합동 부정·부패신고센터’를 개설해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부정·부패와 적폐 척결을 거듭 강조한 박근혜 정부의 실천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일요신문>의 취재결과 출범 1년을 맞은 부정부패 척결단은 사실상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불퇴전’은커녕 ‘일단후퇴’에 가까웠다. 본지는 정보 공개청구 신청을 통해 신고센터 개설 이후 올해 2분기 까지 신고 건에 대한 처리조치 현황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국무총리실이 제공한 해당 자료를 살펴본 결과, 정부합동 부정·부패 신고센터는 지난해 10월 10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총 332건의 신고를 접수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직접 조사 및 처리’ 건수는 전체의 8.7%에 해당하는 29건에 불과했다. 사실상 신고 건수 10건 중 1건도 처리하지 못한 셈이었다.
신고 건수 중 가장 많은 53.3%에 해당하는 177건은 자체적으로 ‘종결’됐다. 타 기관으로의 ‘이송’이 전체의 24.4%(81건)로 뒤를 이었다. 신고 건 대부분이 사실상 종결되거나 이송된 것. 애초 조직의 출범 의지와 무관하게 현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해당 자료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또 한 가지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막 추진단이 신고센터를 개설해 활동하기 시작한 지난해 4분기의 경우, 접수 신고건 89건 중 28.1%에 해당하는 25건을 직접 조사해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지난 1분기엔 109건의 신고를 접수해 고작 2.8%에 해당하는 3건만 직접 조사해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28.1%에 달하던 처리율이 한 분기 사이, 정확히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심지어 가장 최근인 지난 2분기 처리율은 고작 0.7%로 전체 134건 중 딱 1건만 처리됐다. 올해 2분기의 경우, 아직 진행 중인 신고 건수가 30.6%로 높다는 것을 감안해도 처리율은 바닥 수준이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외부의 눈이 집중됐던 추진단 출범 초기 비교적 높은 처리율을 보이며 ‘반짝’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불과 1년 만에 스멀스멀 ‘기’가 빠져버린 셈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했던 정부의 부패척결 의지에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사실 국무총리실의 부패척결 추진단이 출범할 당시에도 많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무엇보다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에 비슷한 역할을 해온 감사원, 국민권익위 등 타조직과 어떤 차별이 있겠냐는 비판이 많았던 것. 앞선 자료의 ‘직접 조사 및 처리’ 역시 특별한 조치라기보단 부패척결 추진단 자체 1차 조사 후 관련 공직자에 대한 징계 요청과 수사 의뢰 수준에 불과했다. 기존의 감사 기관과 사실상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의 부패척결 의지가 표명된 직후, 정부의 각 기관은 서로 경쟁하듯 비슷한 신고센터를 개설해 효과를 분산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료를 제공한 국무총리실 관계자 역시 신고 건에 대한 처리율이 급감한 이유에 대해 “부정수급신고센터와 같이 유사한 성격의 신고센터가 각 기관에서 활성화됨에 따라 분산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일을 처리하기 위한) 인원이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부패척결 추진단에서 신고를 접수하는 창구 직원은 두 명이고 실제 조사에 나서는 인원도 30명 남짓에 불과하다. 실제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만, ‘또 하나의 사정기관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무턱대고 인원을 늘릴 수도 없다”라며 “또 조직 자체가 개인의 비리보단 구조적 비리를 향하기 때문에 일반 행정기관 민원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이송률도 높은 것이다. 어려운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기세남 시의원은 “부패척결 추진단에 신고가 접수된 건들 기존의 기관이나 지역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비리 문제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그러한 문제에 대해 구조적으로 접근하고자 나온 것이 추진단이고 신고센터인데, 대부분 종결되거나 다시 이송된다면 현재로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부도 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