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
대법원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로 변호사 업계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은 변호사 사무실이 들어선 서초동 법조 거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의 업계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한 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평가다. 기존 형사사건 변론에 대한 변호사의 보수는 착수금과 성공보수 두 가지로 나뉘었다. 성공보수는 무죄, 집행유예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을 때 받게 되는 돈이다. 그 금액은 변호사별로 천차만별이다. 고위 전관 출신의 변호사들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비 전관 변호사들은 사건의 난이도와 여러 변수를 고려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사이의 성공보수를 약정한다. 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성공보수를 아예 금지시킨 이번 판결을 두고 한 변호사는 “죽으라는 거다”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변호사들을 더 두렵게 하는 건 수년 사이에 변해버린 업계 분위기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쏟아져 나와 수임료 경쟁까지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착수금을 올리겠다고 나서는 변호사는 망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한 중견 로펌 소속 변호사는 “아직까지 성공보수를 약속한 약정서를 새로 쓰자는 의뢰인은 없다. 하지만 변론하던 사건이 종결된 뒤에 의뢰인이 ‘성공보수 약정 무효판결 났으니 돈 못 주겠다’고 버티면 변호사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변호사 업계에서도 골치 아픈 문제였다. 의뢰인과 약정을 체결해도 이를 실제로 받는 비율은 절반에 못 미쳤다. 형사사건으로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 대부분은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않아 범죄를 저지르고 변호사를 찾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가까스로 집행유예나 무죄 판결을 받게 되더라도 떼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요즘은 성공보수를 받는 확률이 절반 정도다. 과거에는 30%도 안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성공보수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의뢰인이 착수금을 분납한다는 의미로 기능하기도 했다”며 “이번 판결로 변호사들이 착수금을 올리게 되면 오히려 변호사를 찾는 문턱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간 최대 수혜자였던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의 고액 성공보수 약정은 근절될까. 한 원로 변호사는 “고액의 성공보수는 일반 변호사 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며 “성공보수 약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거물급 전관 변호사가 적은 돈을 받고 사건을 수임하겠나. 어떤 명목으로든 고액의 수임료를 받을 사람은 받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그간 문제가 됐던 변호사들은 전체 변호사의 2~3% 정도였을 것이다. 대법원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울’ 판결을 내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변호사협회 건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또 대형 로펌보다는 중·소형 로펌이나 개인변호사들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일찍부터 ‘타임 차지(time charge·시간제 보수)’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상대적으로 ‘무풍지대’에 있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중·소형 로펌의 비 전관 변호사들은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을’이다. 이번 판결은 고액 성공보수 근절이라는 효과도 없을뿐더러 변호사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만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변협이 이번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판결을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때문에 일선 변호사들은 당장 수임료 체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성공보수 없이 수입이 반 토막 나는 상황에서 기존의 착수금을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견 로펌의 한 변호사는 “일한 시간 당 돈을 받는 타임차지, 접견·서류제출·상담 등 행위 당 보수를 받는 형식, 착수금을 올려 분납하는 방식, 세 가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 가지 방식 모두 녹록잖다. 이 변호사는 이어 “타임차지는 의뢰인의 불신 때문에 어려울 것 같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방식은 다른 변호사들 눈치 보기 때문에 당장 실행이 어려울 것 같다.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 변협이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기다리고만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일제히 쓴소리를 쏟아내는 이유가 ‘성공보수 없인 제대로 된 변론도 없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앞서의 원로 변호사는 “사실 가장 모범 사례는 성공보수 없이도 의뢰인을 위해 열심히 변론하는 변호사다”면서도 “하지만 노력의 대가가 없다면 열심히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변호사라고 뭐가 다르겠냐”고 말했다.
한상훈 대한변협 대변인은 “전원합의체 판결에 회부된 사실조차 비밀리에 진행할 만큼 이번 판결은 이례적인 부분이 많다. 과도한 성공보수 근절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법률서비스 질 저하와 착수금 인상으로 법률 소비자들에게 피해만 남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