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타파’ 펀치 되로 주고 말로 받기
대법원은 성공보수 무효 판결을 공개 변론없이 서둘러 선고했다. 사진은 대법원 건물. 일요신문DB
대법원의 불편한 기류에는 퇴임 대법관 예우 등에 대한 뾰족한 대책 없이 하 회장이 요구하는 것처럼 사건을 일체 수임하지 못하게 할 경우 대법관들의 퇴임 이후 생활이 막막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마치 대법관 출신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하 회장식 발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전관예우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들을 먼저 찾고 고위법관 출신들이 그 제도에 동참하도록 해야지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신이 마치 전관예우 타파를 위한 전도사 인양 행동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뒤 대법원은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변호사가 수사나 재판의 결과를 금전적인 대가와 결부시키는 것은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 판결로 법조계에 만연해 있는 ‘전관예우’나 ‘연고주의’가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밝혔다. 언론을 비롯해 대법원 안팎에서도 ‘사법부발 법조개혁 신호탄’, ‘여론의 지지를 받을 만한 판결’ 이라는 등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변호사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대한변협은 이 판결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협은 연일 판결을 비판하는 성명을 쏟아냈고, 앞으로 관련 대책을 계속해서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변호사업계는 대법원이 민법 103조를 근거로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라고 판단한 데 대해 거의 분노하는 분위기다. 가사사건 전문인 한 중견 변호사는 “민법 103조는 파렴치범이나 잡범들에게 적용하는 법률”이라며 “그런 법률을 근거로 성공보수를 받는 변호사들을 전부 파렴치범으로 만든 것은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민법 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변호사업계의 이 같은 분위기는 검찰이 가세하면서 더욱 고조됐다. 검찰 관계자는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라고 해놓으니 법원 출신들은 피해가 없고 검찰 출신과 변호사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며 “왜 민사사건에 대한 성공보수는 무효라고 판단 안했는지 모르겠다. 검찰과 변호사들을 파렴치범으로 몰아 전부 적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이 판결은 대법원이 작정을 하고 내놓은 측면이 있다. 올해 상고심이 접수된 사건을 서둘러 선고한 것도 그렇지만, 통상 한 달에 한 번 전원합의체 선고를 해온 대법원이 7월에는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전원합의체 선고 기일을 잡았기 때문이다. 다른 대법원 관계자는 “당초 16일 선고 당시 성공보수 사건을 포함해 총 5건을 선고할 예정이었으나 이 사건이 갑자기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마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에 묻힐 것을 우려해 7월 16일에 선고하지 않고 23일에 선고 기일을 따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7월 16일 전원합의체 선고 이후 대법원 내에선 대법관 중 일부가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약정 사건이 빠진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바 있다. 대법원이 7월 23일에 전원합의체 선고기일을 다시 잡아 이 사건을 선고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판사 출신의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전관예우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며 “그동안 전관예우라는 법조계 핵심 이슈를 변호사업계에 빼앗겼던 대법원이 이 판결 선고로 이슈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변호사업계 등이 당장엔 반발을 하고 있지만 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나갈 만한 마땅한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변호사업계가 제기한 재판소원을 헌재가 받아들일 가능성도 현재로선 커 보이지 않는다. 헌재는 지난 7월 30일, 위헌 결정이 난 법령을 적용하지 않는 이상 법원 재판은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 결정을 재확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헌재가 재판소원을 받아들일 경우 향후 관련 사건들이 끊임없이 밀려 들것으로 보이는데 헌재가 과연 그 같은 사건 쓰나미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조계의 고질병인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데 그보다 더한 명분이 어디에 있을 수 있느냐”며 “결국 그동안 상고법원 설치안 때문에 변호사 업계에 끌려 다니던 대법원이 이번에 ‘이슈 선점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제대로 한번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상고법원 추진에서도 보여지듯이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의 입지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데 변호사업계가 전관예우 문제로 올해 초부터 대법원 흔들기를 계속 했던 게 사실”이라며 “대법원이 서둘러 선고할 필요가 없는 이 사건을 제대로 된 공개변론 한번 없이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강조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