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로 쌓은 ‘하얀거탑’
▲ 김명민에게 연기지도를 하고 있는 <하얀거탑> 안판석 PD. | ||
가장 흔한 드라마 PD나 영화감독 유형은 촬영 현장에서 소위 ‘줄담배’를 태우는 이들이다. 술에 기대자니 다음날 촬영 스케줄이 걱정돼 담배를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 한 촬영 스태프는 “우리 PD는 시청률이 주춤하면 괴로워서 세 대, 상승하면 기뻐서 다섯 대를 줄담배로 태운다”며 “하루 꽁초만 모아도 한 양동이는 가득 채울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최근 성공적으로 방영을 마친 MBC TV 드라마 <하얀거탑>의 안판석 PD는 애연가로 유명하다. <하얀거탑> 첫 방송을 앞두고 경기도 이천 세트장에서 진행된 촬영현장 공개 당시에도 안 PD는 줄곧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은 물론이고 기자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담배를 내려놓지 않았다. “평소에도 담배를 많이 태우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 PD는 그냥 “그랬었나”라며 멋쩍은 특유의 미소로 응대할 뿐이었다.
안 PD의 ‘담배 사랑’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그는 잠시도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는 탓에 일반 재떨이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단다. 촬영 기간 동안 안 PD가 재떨이 대용으로 쓴 것은 다름 아닌 막대사탕 150개 들이 벌크 캔이었다. 자연스레 안 PD가 가는 곳엔 늘 막대사탕 벌크 캔이 따라붙었다. 그런데 촬영이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재떨이로 사용하던 막대사탕 벌크 캔을 분실하는 사고(?)가 발발했다. 하는 수 없이 페인트통을 긴급 공수해 막대사탕 벌크 캔 대신 재떨이로 사용했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안 PD는 물론이고 출연진과 스태프 모두 이미 막대사탕 벌크 캔 재떨이에 깊은 정이 들어버린 것. 결국 스태프 한 명이 자진해서 막대사탕 150개가 담겨 있는 벌크 캔을 구입해왔다. 출연진과 스태프는 150개의 막대사탕을 골고루 나눠 먹었고 다시 안 PD 곁에 새로운 막대사탕 벌크 캔 재떨이가 놓이게 됐다.
▲ (왼쪽부터) <소금인형>의 박경렬 PD. <사랑에 미치다>의 손정현 PD. | ||
배우와 스태프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PD들도 적지 않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를 제작 중인 A PD는 이른바 독불장군으로 유명하다. 배우가 다른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하는 것은 아예 금지되는데 ‘딴 거에도 나갈 거라면 우리 드라마에서 떠나라’는 식이다. 그에게 타협이나 이해 따위는 없다.
A PD와 함께 작업했던 드라마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능력으로 정평이 난 데다 워낙에 독불장군 스타일이라 나이에 상관 없이 배우와 스태프 모두 말 한마디에 설설 긴다”며 “배우 등에게 다른 드라마 섭외가 들어오면 보통 스케줄을 조율해 겹치기 출연도 하는데 A PD는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 얘기한다. 주연급은 몰라도 조연급은 동시에 여러 편에 겹치기 출연하는 게 다반사인데 A PD의 작품에 출연하느라 다른 드라마 5개의 섭외를 모두 놓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는 또 “현장에서는 자주 변수가 생긴다지만 A PD는 툭하면 장면 순서를 바꾸거나 내용을 엎어 다른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찾아온 배우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면서 “독불장군 PD의 군림이 좋은 드라마라는 성과물을 완성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팀이 잘 융화되지 않고 불만이 쌓이는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A PD가 연출하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 사이에선 ‘드라마가 잘 되는 것은 좋으나 제발 연장 얘기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