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행 회피 수단” 지역민들 부글부글
국민연금공단 전체의 전북 이전이 예정된 가운데 연금공단 내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바꾸고 본부를 서울에 설치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요신문DB
애초 국민연금공단은 국토균형발전을 목적으로 다른 공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경남 진주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북으로 이전하려던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경남 진주로 이전하는 대한주택공사와 통합되면서 물거품이 됐다. 그 대안으로 기금운용본부를 포함한 국민연금공단 전체가 전북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3년에는 국민연금법까지 개정되기도 했다.
현행 국민연금법에는 제27조에 ‘공단의 주된 사무소와 국민연금법 제31조에 따른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의 소재지는 전라북도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전북혁신지구로 이전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을 따라 내년 6월께 이전할 예정이다. 기금본부 건립공사는 현재 3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 만큼 전북도민들은 기금본부의 전북이전을 ‘따 놓은 당상’쯤으로 여겼다.
전북도와 지역정치권은 기금운용본부가 지역으로 옮겨오면 무엇보다 국가 균형발전에 이바지할뿐더러 혁신도시 건설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을 이전 타당성의 주요 논거로 내세운다. 올해 상반기에 전북 전주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 본부와 산하의 국민연금연구원과 함께 기금운용본부도 같이 옮기면 동반이전에 따른 공공기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북도는 기금운용본부가 전북으로 이전하면 지방세수 증대는 물론 경제적 파급 효과 등 엄청난 부수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기금운용본부가 업무상 거래하는 금융사만 206곳에 달하는데, 만약 기금본부가 전북으로 오면 이들도 대부분 전북에 ‘지점’을 설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상주인원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전주와 인근 도시의 경기가 활성화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통해 전북이 국제적인 금융허브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집권 여당의 기금본부 공사화와 서울사무소 설치 움직임을 보면서 ‘껍데기 기금본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감 또한 커지고 있다. 이처럼 기금운용본부가 내년 전북이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또다시 ‘공사(公社)화’ 논란에 휩싸이자 묵혀놓았던 전북도민들의 공분도 날로 커지고 있다. 전북에 대한 지나친 홀대가 아니냐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 같은 불길한 상황은 이전부터 예견됐다. 국회에서는 이미 지난 2012년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전환하고 기금운용위원회도 공사 내부에 속하게 하는 안을 발의했다. 정부도 새누리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2015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별도 독립조직 즉, 공사화 등을 검토해오고 있다. 기금본부가 전주로 이전할 경우 효율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공사 설립 논의가 진행되면 공사 소재지를 놓고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난 7월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경북 영천)이 대표 발의한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과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안’은 이전 법안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 법안 22조에는 ‘국민연금기금투자공사의 주된 사무소를 서울에 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공사화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소재지가 전주가 아닌 서울로 바뀌게 된다. 이로써 전북이전이 백지화되거나 ‘껍데기 기금운용본부’ 이전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전까지 기금본부 전북이전에 대해서 비교적 느긋했던 전북도와 지역정치권도 이 법안 등장에 화들짝 놀라는 모양새다. 그간 이들이 믿는 구석은 ‘대못론’이었다. 관련법에 전북이전이 명문화돼 있는 만큼 일련의 흐름이 대세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이 때문에 기금본부 이전에 대해 유달리 자신감이 팽배한 전북도와 지역정치권 내부 기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국회 의석 다수를 점한 집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느냐’는 지적이다.
김동근 전북대 교수(한국기업법학회 이사)는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올해 기준으로 500조 원을 돌파하고 2022년에는 10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등은 전북지역이 서울과 부산에 이어 제3의 금융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전북도와 지역정치권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기금본부 전북이전의 법적 근거와 명분이 아무리 명확하고 크다고 해도 전북도와 지역 정치권이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 정부의 현명한 선택과 전북도와 지역정치권의 적극적 대응이 논란 해소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