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그녀가 남자라면 믿을래?
항상 숏컷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제이미 리 커티스. 섹시한 몸매는 여성적, 얼굴은 다소 남성적이다. 때문에 ‘여성의 모습을 한 남자’라는 악성 루머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지금은 주로 인터섹슈얼리티(intersexuality)라고 부르는 허마프로다이트는 간단히 말하면 ‘자웅동체’다. 그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마프로디토스.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는데, 살마키스라는 님프가 그에게 반한다. 하지만 아직 어린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그녀를 거절했고, 이에 살마키스는 그의 몸에 들어가 한 몸이 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남녀의 성을 함께 지니게 되었는데, 파리 루브르 미술관의 조각상을 보면 상체엔 여성의 가슴이, 하체엔 남성의 성기가 있다.
제이미 리 커티스가 허마프로다이트라는 얘기는 1980년대부터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중성적인 매력이 넘쳤고 항상 숏컷 헤어스타일을 고수했기에 나온 얘기가 아닌가 싶다. 이야기는 점점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갔고 사람들은 커티스가 ‘AIS’, 즉 ‘안드로겐 저항성 증후군’(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안드로겐은 남성적인 모습을 띠게 만드는 호르몬인데, 커티스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이 호르몬에 저항이 있었고, 그 결과 여성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제이미 리 커티스는 XY 성염색체를 지녔지만 여성의 모습을 지닌 남자라는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근거를 들기 시작했다.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제이미 리 커티스’라는 이름. 그녀의 아버지는 <바이킹>(1958) <뜨거운 것이 좋아>(1959) <스파르타쿠스>(1960) 등으로 유명했던 배우 토니 커티스. 어머니는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1960) 샤워실 신에서 살해당하는 여인으로 영화사에 길이 기억될 재닛 리였다. 그들은 1956년에 태어난 첫 딸에겐 켈리(Kelly)라는 이름을 붙였고 1958년에 낳은 둘째 딸에겐 ‘제이미 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이미(Jaime)는 주로 남자에게 붙이는 이름이고, 리(Lee)는 남녀 공용의 중성적인 이름. 그들 부부가 딸에게 이런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건, 신체적 특징상 남녀 구분이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루머의 내용이다. 인터섹슈얼리티의 경우 생식기 부분의 형태가 모호하면 ‘성확정 수술’을 해주기 마련이지만, 1950년대 당시엔 그런 수술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트루 라이즈>의 한 장면.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재닛 리가 <빌리지 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신 중에 태명처럼 미리 이름을 붙였는데 남녀 성별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제이미 리’라는 중성적인 이름을 붙였다고 해명한 바 있다. 제이미 리 커티스의 결혼 생활도 그녀가 허마프로다이트라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커티스는 1984년에 배우인 크리스토퍼 게스트와 결혼해 올해로 31년째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 사이엔 낳은 아이는 없고 입양한 아이만 둘 있었던 것. 사람들은 커티스가 아이를 낳을 수 없기에 입양할 수밖에 없었다고 쑥덕거렸다.
커티스가 성소수자들을 위한 LGBT 운동의 지지자이며, 블로거에서 앤절리나 졸리의 유방 절제수술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에이즈 퇴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도 근거로 제시되었다. 성적 마이너리티로서 이런 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엔 더스틴 랜스 블랙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8>에 출연했는데, 이 연극은 캘리포니아의 동성 결혼 금지 법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커티스를 의심(?)했다.
사실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문이다. 그럼에도 20년 넘게 통용되었다. 놀라운 건 의과 대학에서 교수들이 수업 중에 허마프로다이트를 설명하면서 제이미 리 커티스의 예를 든다는 사실. 그 어떤 의학 교재나 서적에도 그녀가 허마프로다이트라는 얘기는 없었지만, 의과대학 내에선 은밀한 진실처럼 여겨졌고, 커티스가 태어난 할리우드의 세다스 시나이 병원 기록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근거도 없는 이야기였다. 1996년엔 브라운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인 윌리엄 비먼 교수가 <볼티모어 썬>이라는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커티스를 언급했다. 미국엔 XX 성염색체를 가진 남성과 XY 성염색체를 가진 여자가 1000만 명 이상 살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사람이 제이미 리 커티스라고 썼던 것. 하지만 비먼 교수 역시 어떤 근거도 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옮긴 것이었다. 괴짜로 유명한 하워드 스턴은 자신의 TV 쇼에서 “허마프로다이트로 태어난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커티스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떻게 감히 그런 질문을 하죠? 나에겐 두 아이가 있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돈 것일까? 사실 무성영화 시절 마를렌느 디트리히나 그레타 가르보, 메이 웨스트처럼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배우들이 이런 소문에 휩싸이긴 했지만 커티스처럼 20년 넘게 지속되진 않았던 걸 보면, 뭔가 특이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완벽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 커다란 흠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못된 시기심 같은 것일지도. 아무튼 지금도 제이미 리 커티스에 대한 도시 전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종종 유머의 대상으로 ‘악용’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