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따다 주고픈 엄마마음 ‘아이는 울고 싶다’
▲ 연기학원에서 지도를 받고 있는 어린이 모습. 아역배우 열풍이 불면서 엄마들의 ‘치맛바람’도 거세지고 있다. | ||
MBC <고맙습니다>의 서신애는 장혁 신구 공효진 등 쟁쟁한 스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연기자로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아역배우 스타로 급부상했다. 서신애뿐 아니라 유승호 정다빈 등 스타급 아역배우의 선전이 계속되면서 ‘내 아이도 아역배우를 시키겠다’는 고슴도치 어머니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아역배우를 선발하는 오디션마다 10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역배우 양성학원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아역배우 양성학원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떤 교육을 받고 있을까. 교육 현장을 보기 위해 지난 16일 여의도에 위치한 한 아역배우 전문 학원을 찾았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수업을 들은 수강생은 1500여 명에 이르고 이 학원 전속 아역배우도 15명이나 된다. 최근 불기 시작한 아역배우 붐을 타고 지망생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주로 5세부터 10세까지 아이들이 수강생인데 수업 내용은 모델이나 연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연기, 워킹, 재즈 등이다.
그런데 실제 수업은 생각보다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다보니 제대로 수업을 듣는 학생은 절반 가량에 불과하다. 처음으로 학원 수업을 듣는다는 한 아이는 1시간 내내 어머니를 찾아 교실을 배회했고, 또 다른 아이는 교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장난치기에 바빴다.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 강사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이렇게 교실 안에서 수업이 이뤄지는 동안 복도에선 어머니들이 모여 있었는데 각종 오디션 등에 대한 정보 교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오디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마침 학원에서는 과자 CF와 영화 홍보 CF의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오디션에 참가한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로 자기소개와 장기를 선보였지만 금세 “다시 해?” “이게 맞아?”라며 어머니의 눈치를 봤다. 이를 지켜보던 한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에 제대로 하라며 다그쳤고 급기야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아역배우의 어머니는 오디션에 떨어진 아이의 마음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여섯 살 아이에게는 다소 가혹할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을 미리 배우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라고 대답했다.
▲ MBC <고맙습니다>의 아역배우 서신애(가운데). | ||
그렇다면 어머니들이 왜 이토록 자녀에게 아역배우가 되는 것을 강요하는 걸까. 아역배우 전문 학원에서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김현미 팀장은 그 이유를 ‘미래 스타의 꿈’과 ‘성격 개조’라고 설명한다. 특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요즘에는 ‘내 아이도 스타가 될 수 있다’라는 꿈을 갖고 아카데미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스타로 거듭난 아역배우의 대부분이 스타의 꿈이 아닌 소심한 성격을 바꾸기 위해 아카데미를 찾은 이들이라는 것.
“외동아들이나 딸을 가진 어머니들이 행여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해 아카데미에 보내는 경우도 많다”는 김 팀장은 “스타를 목표로 아카데미를 찾는 아이보다 이렇게 자신감을 키우려고 온 아이가 스타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귀띔했다.
‘빨리 돈을 벌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이 열풍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 아역배우의 수입은 0에 가깝다. 5년째 아동복 모델 1위를 기록하는 한 아역배우의 한 달 수입이 100만 원 남짓. CF 한 건당 40만~50만 원 정도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관리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중학생 이상이 돼야 월 200만~300만 원을 벌 수 있게 된다. 물론 스타급으로 분류되는 아역 배우가 되면 CF 한 건당 2000만~3000만 원의 개런티를 받을 수 있지만 이는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게다가 최근 팬텀, 싸이더스, SM, JYP 등 대형 매니지먼트사들이 아역배우 유치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아역배우 세계에서도 본인의 재능보다는 소속사의 힘이 더 중시되는 분위기로 급변하는 추세다.
▲ 김성은(왼쪽), 유승호 | ||
그럼에도 어머니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아역배우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어린 시절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시작했는데 자꾸 욕심이 커진다”고 털어놨다. 이런 어머니의 욕심에 아이도 처음엔 강하게 반발하지만 결국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게 하나의 관례처럼 여겨지고 있다.
물론 욕심만큼이나 아역배우 어머니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각종 오디션에 참가하는 일부터 아이를 관리하는 일, 교육하는 일, 촬영장에서 지루한 시간 싸움을 하는 일까지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어머니는 “보통 촬영은 기다림의 연속인데 1~2시간 기다리면 아이가 짜증을 많이 내서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망생에서 아역스타로 거듭난 서신애의 어머니 김수진 씨(36)는 “신애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다른 엄마들이 나보다 더 고생한다.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우리 아이 아역배우 만들기’가 어머니의 욕심으로 너무 지나친 수준에 다다르면 일종의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머니들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거나 자기 과시욕을 위해 아이들을 대중들에게 노출시키려 한다면 이는 일종의 히스테리라는 것. 실제 정신과를 찾는 아역배우 지망생 가운데 심한 스트레스와 성격 발달 장애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어른도 하기 어려운 일을 어린 나이에 하는 건 아이들의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아이들은 성장에 대해 익명성을 보장 받아야 하며 엄마들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