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내리고 ‘정’ 띄우기 각본대로?
▲ 염동연 의원 | ||
이미 당내 일각에서 정 장관의 당 복귀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고, 정 장관이 지난 4·2 전당대회 선거운동 과정에서 염 의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나돌고 있다는 점 등에서 이날 이들의 만남의 배경이 뭔지, 무슨 밀담이 오갔는지, 이것이 향후 여권의 권력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세간의 눈이 쏠려 있다.
이날 회동의 참석자들은 한결 같이 실용파의 지도급 인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자연스럽게 당내 개혁그룹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과 실용 지도부의 ‘무능한’ 당 운영 등에 대한 집중적인 성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 경로를 통해 취재한 결과 염 의원은 개혁당 출신 그룹이 자신을 겨냥해 비리 연루설을 흘리는 것에 대한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일례로 최근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내놓은 개혁당 출신의 이철우 전 의원이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한 지도급 인사가 비리에 연루돼 있다”며 노골적으로 자신을 겨냥한 것은 ‘음모’라며 흥분했다고 한다. 염 의원은 상임중앙위원 사퇴 성명서에서도 “정치적 미숙아들에게 당과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동지들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분열주의적 개혁론자들이 당을 망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염 의원의 칼끝은 실용 지도부에게도 향해 있었다. 실용 지도부의 상징이랄 수 있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강경파들에 끌려 다니면서 결국 당을 분열구도로 만들었으며 따라서 현재의 당 위기는 문 의장의 리더십 부재와 지도력 위기에 의해 증폭됐다는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동영 장관과의 회동에서 염 의원은 “이렇게 무능한 지도부는 처음이다. 하나도 제대로 해내는 게 없다. 개혁그룹과 개혁당 출신들에게 판판이 당하고만 있다”며 목소리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염 의원은 지난 8일 상임중앙위원 사퇴 이후 백의종군하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공개적으로 여권 지도부를 비판하고 다니고 있다.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염 의원은 당직 사퇴의 진짜 이유를 “문희상 의장의 리더십 부재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 의장이 당내 각 계파간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강경 개혁그룹들에 끌려 다니면서 결국 리더십 부재를 불러왔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 지난해 4월 17대총선에 당선된 염동연 당선자(왼쪽)가 정동영 당시 당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
염 의원은 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현 정부가 호남을 홀대하면서 호남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정·청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해찬 총리의 호남고속철 불가 발언이라든가 현재 청와대 내 주요 비서관 50명 가운데 광주, 전남 출신 인사들이 손가락으로 꼽히는 정도라는 점 등을 들이대면서 호남 홀대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꼬집고 있다.
염 의원으로부터 일격을 맞은 문 의장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문 의장은 겉으로는 염 의원 사퇴 파문을 진정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염 의원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는 적잖게 타격을 받을 게 확실하다.
최근 전북 무주에서 열린 국회의원 및 중앙위원 워크숍에서 ‘당 지도력 부재’에 대한 집중적인 공세가 있었고, 이와 맞물려 ‘지도부 총사퇴론’ 및 ‘대권주자 당 복귀론’이 조금씩 득세하는 추세여서 그가 받은 충격은 일시에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 의장은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도부 총사퇴론을 일축하면서 염 의원의 갑작스런 돌출행동에 섭섭함을 표하고 있다. 문 의장은 9일 당 소속 의원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합시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지금 당장이라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지만 어려운 지경에 처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평판을 고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당 의장직을 수행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염 의원이 당직 사퇴의 고강도 처방을 바탕으로 당 지도력 부재를 끊임없이 제기해 나갈 경우 지도부 동반책임론은 겉잡을 수 없이 파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대권주자 당 복귀론은 주장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분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정동영-염동연 비밀회동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문 의장측은 이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당내 개혁그룹에 속해 있는 한 의원은 “지난 4·30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23 대 0의 참패를 당한 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맞설 수 있는 스타가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의 당 복귀설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번 염동연 의원의 당직 사퇴는 이런 맥락에서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개혁그룹의 또 다른 의원은 “염 의원의 당직 사퇴 기자회견 하루 전에 정동영 장관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이미 공개됐고, 염 의원의 당직 사퇴 다음날 염 의원과 정동영 통일, 정동채 문광부 장관, 김한길 의원 등 여권 실용그룹의 거두들이 모두 모였다는 점을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당내에서는 이미 ‘염 의원의 당직 사퇴→여권 지도부 불신 및 총사퇴→조기전당대회→정동영 장관 당 복귀’ 수순으로 짜여진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직 개연성이긴 하지만, 결국 염 의원의 당직 사퇴는 정동영 장관의 복귀를 유인해내기 위한 한 도구였다는 것이다.
진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