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원수처럼’ 뒤에선 ‘형님동생’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유승민)
“우리 수준이 비슷하지요. 징계 먹은 수준이, 하하”(정)
그러면서 정 의원이 유 의원의 손을 꼭 잡아준다.
“그래도 정 최고(위원)는 쫓겨나지는 않았잖아요?”(유)
“저도 쫓겨났지요. 쫓겨났죠. 하하. 같이 쫓겨난 입장 하하.”(정)
정청래 의원은 얼마 전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지도 않을 거면서 물러나겠다는 식으로 ‘공갈’을 치지 마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막말 논란’이 일자 당이 ‘당직자격정지 6개월’을 결정했다. 그런 정 의원이 유 의원에게 손을 내밀며 딱한 처지를 위로한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3일 국회 본회의장은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분양사업자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박기춘 무소속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위한 원포인트 국회가 열린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단상에 올라 신상발언을 하던 박 의원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말하다 결국 울컥했고 눈물을 흘렸다.
신상발언을 마치고 나온 박 의원이 앉은 자리는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옆자리. 그런데 정 의원이 박 의원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 박 의원의 뺨에 손을 대고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이 포착됐다. 정 의원은 박 의원을 위로하는 듯 자꾸 말을 걸었다.
사실 정 의원은 19대 국회 초반 19대 국회 초반인 2012년 7월 11일,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는데 본회의에서 부결된 장본인이었다. 정가에선 체포안이 부결된 선배가 체포안 가결 직전의 후배를 위로하고 있는 희귀한 모습이라 입을 모았다.
최근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전라도 광주로 가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와 함께 자전거 국토순례단에 합류한 것을 두고서도 정가에선 동서화합이라 평가한 바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과 달리 국회에서 여야 의원끼리 형, 동생 하는 경우도 많다. 같은 학교 출신이지만 이념적 지향점이 달라 여야로 갈린 의원들끼린 사석에서 자주 만나기도 한다. 한 정가 인사는 “정계는 적자생존의 밀림이지만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는 자들끼리만 치열할 뿐 그 밑으로는 훈훈함이 차고 넘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훈훈함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