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출현? 결국엔 헤쳐모여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당 창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은 곧 신당 창당은 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안팎으로는 신당 창당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당 밖에서는 호남민심을 등에 업은 천정배 의원이 세 불리기에 나섰고, 당 내에서는 분당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둘러싼 신당 창당 기류를 따라가 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수도권·호남 지역 의원 등 10여 명이 지난 8일 광주 서구 치평동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했다. 이날 자전거 국토순례 참여차 광주를 방문한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도 만찬 시작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왼쪽부터 이종걸, 김영록, 박주선, 조원진, 박지원 의원.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당 안팎에서는 이합집산의 움직임이 빈번하게 포착되고 있다. 그때마다 드러나는 인물도 다르고 계파도 다를 정도로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8일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광주의 한 식당에서 이종걸 원내대표, 문병호 의원, 최원식 의원 등 수도권 비주류 성향 의원과 김동철 의원, 박주선 의원, 주승용 의원, 황주홍 의원 등 광주·전남 지역 의원 등과 함께 만찬을 가졌다. 평소 박 전 원내대표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필두로 한 당내 친노 진영을 견제하면서도 전체적인 통합을 지지해왔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박 전 원내대표의 이번 회동은 비주류 의원들을 동원한 일종의 ‘세 과시’로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내에서 영남 지역 최다선인 3선의 조경태 의원도 신당 창당 혹은 분당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의원은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만나 합리적 보수와 진보 세력이 뭉칠 수 있는 신당 창당을 제안했다. 조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안 전 공동대표에게 신당 창당을 제안했으나 일단 혁신위의 혁신안을 본 뒤 결정하자는 답변을 들었다”며 “아직 (신당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고 적절한 시기가 왔을 때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신당에서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설정한 그룹은 많았던 반면 영남 기반의 신당 논의는 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PK 출신의 안 전 공동대표와 부산 지역구 3선의 조 의원이 힘을 합친다면 영남 지역 기반의 신당 출현도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활발한 움직임과 달리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엑소더스’ 급 대거 탈당은 보기 힘들어졌다는 의견이 많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신당과 별개로 (총선 전) 분당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명분과 인물의 문제인데, 문재인 대표에 대한 반감 내지 실망감이 팽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1야당’ 울타리를 벗어나 생존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공천 이후 이탈자들이 있겠지만 그건 분당이 아니라 탈당이다”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도 “요즘 새정치연합의 무기력함을 보면 당을 깨는 것도 못하는 수준으로 보일 정도”라며 “한심한 수준의 당 상황을 봤을 때 분당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김민석 전 의원, 박준영 전 지사.
당 외부에서 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세력 중 대표적 인물은 지난 4·29 재보궐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한 천정배 의원이다. 천 의원은 호남 정신의 부활, 젊은 DJ 발굴 등을 외치며 호남 신당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월로 예정돼 있는 천 의원의 신당 창당 작업이 끝나면 최소한 호남 지역 내년 4월 총선에서는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경쟁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윤 실장도 천 의원을 가장 가능성 있는 신당 세력으로 꼽았다. 윤 실장은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와 별개로 신당 자체는 기정사실인 것으로 보인다”며 “그 중 실체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은 천 의원 그룹이다. 염동연, 이철, 유원일 등 전직 의원들도 합류해있고 스태프조직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정배 의원은 젊은 DJ 발굴 등을 외치며 호남 신당을 준비하고 있다.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개표 과정 당선이 확실시되자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민석 전 의원이 이끈다고 알려진 원외정당 민주당(대표 강신성)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에서 일고 있는 당명 개정 움직임과 야당의 가장 정통성 있는 이름인 ‘민주당’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는 8월 피선거권을 회복하는 김 전 의원이 배후에 있다고 알려지면서 몸값이 상승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전 의원이 지난 4일 타계한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의 빈소를 이틀째 지키며 다양한 정치권 인사들과 교류를 나누는 것을 두고 본격적인 정치권 복귀에 시동을 건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김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원외 인사는 김 전 의원의 속내는 ‘선수’가 아닌 ‘감독’ 역할에 방점이 찍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인사는 “정치에 확실한 것은 없지만 김 전 의원이 총선에는 출마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며 “김 전 의원이 총선 전체에 판을 짜고 야권 재편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총선 직전 탈당하는 새정치연합 인사들의 둥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8년 공천에 불만을 품은 한나라당 내 친박인사들이 집단으로 탈당하고 총선에 출마하기로 했지만 창당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대선 이후 방치돼 있던 미래한국당에 입당해 활용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문 대표의 공천권 행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집단 탈당해 창당이 아닌 정통성 있는 ‘민주당’ 깃발로 합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수많은 신당 그룹들이 창당 논의를 하고 있지만 현재는 주도권 싸움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당 그룹 간의 지난한 합종연횡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등장한 신당 그룹 전부가 총선에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각 그룹에서 부족한 부분을 다른 그룹과의 제휴를 통해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각 그룹 간의 합병은 꼭 필요한 일로 평가된다.
천 의원의 신당은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 받고는 있지만 광주·전남 밖으로의 확장성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최근 천 의원 측에서 정동영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비록 정 위원장이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한계를 드러냈지만 전북에서의 영향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천 의원 측에서는 강진으로 낙향한 손학규 전 대표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최근 천 의원 측에서 손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천 의원의 신당이 전국 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도권 출신의 중도개혁적 이미지의 손 전 대표얼굴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합종연횡의 움직임은 천 의원 측뿐만 아니라 모든 그룹에서 나타나고 있다. 강신성 민주당 대표도 기자에게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고 있는 중이다”라면서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여러 그룹과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신당 창당 움직임을 두고 국가나 제1야당에 대한 근본적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배지’ 때문에 벌어진 일로 폄하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친노계로 분류되는 한 전직 의원은 “지금의 복잡한 신당 창당 움직임은 국가 비전이나 철학의 차이가 아니라 ‘누가 날 당선시켜줄 수 있을까’에서 모두 나온 것이다. 일례로 최근의 탈당 이야기는 혁신위 안으로 중진 사퇴 이야기 나오자 비주류 중진 의원들이 공천 배제 당하지 않으려고 탈당할 것처럼 액션 취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며 “새정치연합이 지지율이 안 나오는 이유도 탈당 이야기하는 의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지지율 20% 나오는 정당인데 여론 신경 쓸 것 없이 문 대표가 탈당, 분당 이야기 하는 의원은 해당 행위로 간주해 다 쫓아내버리면 아무도 탈당 이야기 못 한다”라고 주장했다.
안팎에서 무르익고 있는 창당의 분위기 속에서 신당의 자생력은 새정치연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야당이 건강하다면 신당이 생존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의 눈이 오는 9월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정치연합의 혁신안에 쏠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노계 중진 의원은 “일단 혁신안이 나오는 것을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의원들이 많다. 잘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이번 혁신안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