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씻은 이씨 VS 현장 도주 배씨’ 서로 범인 지목, 결론은…
서울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으로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8일 0시 59분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한 주택에서 김 아무개 씨(59) 등 4명이 함께 술을 마시다 김 씨가 가슴 부분을 칼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검결과 칼이 김 씨의 횡경막을 뚫고 심장에 닿아 400㎖ 이상의 혈액이 빠져나가는 등 과다출혈이 주요 사망 원인이었다. 방어흔이나 격투 흔적이 없고 칼에 1회 찔린 점으로 볼 때, 우발적 범행인 것으로 조사됐다.
안산단원경찰서에 따르면, 당시 술자리에는 숨진 김 씨의 지인 이 아무개 씨(44)와 배 아무개 씨(54), 김 씨의 조카 장 아무개 씨(45), 3명이 함께 있었다. 이 씨와 장 씨는 중학교 동창이었으며 배 씨는 일정한 주거지가 없어 김 씨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 숨진 김 씨의 집이나 인근 노상에서 술을 나눠 마시는 등 가까운 사이였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 씨의 집에 모여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빈 병이 늘어갈수록 점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순간 이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고 곧 김 씨가 부엌칼에 찔려 거실에 쓰러졌다.
119와 경찰 신고는 이 씨가 했다. 신고 직후 이 씨는 싱크대에서 칼과 손을 물로 씻었다. 그리고 칼꽂이에 칼을 꽂아뒀다. 배 씨는 사건 발생 10분 뒤,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장 씨는 김 씨가 쓰러진 이후 누군가 깨울 때까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유력한 용의자는 이 씨와 배 씨 두 명으로 좁혀졌다. 그런데 이 씨가 같은 날 오전 6시께부터 시작된 경찰 조사에서 “내가 (범행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김 씨는 평소에도 술에 취해 욕설과 폭력을 일삼았다. 사건이 일어난 당일에도 김 씨는 만취해 이 씨의 머리를 툭툭 치며 욕설을 했다. 이 씨는 경찰에 “김 씨의 손을 팔로 막고 함께 욕을 하며 항의했고, 화가 많이 났다”고 진술했다.
배 씨는 사건 직후 현장을 빠져나와 인근 지인의 집에서 잠을 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에 이어 시작된 경찰 조사에서 배 씨는 사건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경찰이 사건 현장 모습과 정황 등을 제시하며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어도 다르게 답변하는 등 횡설수설했다. 다만 “이 씨와 김 씨가 다퉜고 이 씨가 칼을 들고 난리를 치는 것을 봤다. 이후 화장실에 다녀오니 김 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탄원서에서 “그동안 우울증으로 주사와 약물 치료를 받아 왔으며, 8년 전에는 척추를 다쳐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거동이 불편해 사람을 해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사건 당시 배 씨와 피해자 김 씨가 칼을 들고 다퉜다. 그 과정에서 김 씨가 들고 있던 칼을 배 씨가 빼앗는 것을 목격했다”고 최초 경찰 진술을 번복, 배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여기에 지난 5월 27일에는 “배 씨가 ‘사람을 찔렀다’고 고백했다”는 신고가 안산 단원구 와동파출소에 접수됐다. 배 씨가 평소 이 씨 등과 가깝게 지내던 또 다른 지인인 양 아무개 씨(여·58)와 한 아무개 씨(여·58) 등과 술을 마시며 털어놨다는 것. 양 씨 등은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배 씨가 ‘나는 세상에 태어나 사람을 찔러 죽인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자수하겠다고 스스로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은 이 사건의 진실은 재판에서 가려지게 됐다. 핵심 쟁점은 이 씨의 범행 부인 및 새로운 범인 지목, 배 씨의 살해 고백 등이었다. 재판은 이 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서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수원지법 본원으로 옮겨졌다. 일반인 배심원 10명이 참여하는 이 재판은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열렸다.
지난 10일 열린 첫 번째 공판에서 이 씨의 변호인은 “수사과정에서 이 씨가 겁을 먹고 당황해 허위자백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현장에 있다 달아난 배 씨는 수사과정에서 횡설수설하고 진술이 수시로 바뀌는 등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증인으로 참석하기로 한 배 씨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의구심은 더해갔다.
이튿날 오전 열린 두 번째 공판에서야 핵심 증인이 모두 출석했다. 배 씨가 경찰과 함께 법정에 나타난 것. 그는 “날짜를 잊었다”며 불참 사유를 짧게 설명했다. 이어진 증인 신문에서 배 씨는 검·경 조사와 마찬가지로 진술을 번복하거나 기억을 하지 못했다. 검찰 측이 “이 씨가 숨진 김 씨를 흉기로 찌르는 모습을 봤느냐”고 묻자 배 씨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현장을 벗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 있으면 다 잡혀갈 것 같았고, 겁이 나서 그랬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이 씨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봤다”고 강조했다.
배 씨는 또 ‘사람을 찔러 죽였다는 고백’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잠을 자는데 양 씨와 한 씨가 ‘당신이 범행한 것 아니냐’고 계속 추궁해 잠결에 귀찮아서 ‘그래,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공판에는 양 씨와 한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두 증인은 “배 씨로부터 ‘살해했다’는 고백을 들었다”며 “자수하라고 했더니 ‘네, 누나 자수할게요’라고 두 번 말했다”고 증언했다. 한 씨는 “평소 배 씨가 횡설수설하고 거짓말을 많이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검찰 측은 “양 씨는 이 씨를 면회하는 과정에서 이 씨를 향해 ‘자기야’라고 칭하며 ‘사랑해’라고 했고, 조사 중 양 씨의 카카오톡에서 이 씨와 양 씨가 서로 안고 있는 사진을 봤다”며 “이 씨와 양 씨의 내연 관계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 씨는 “이 씨와는 가족 같은 관계라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양 씨는 <일요신문>과 만나서도 “이 씨가 혼자고 몸도 불편해 측은해 돌봐주며 가깝게 지냈다”며 “남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판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에는 피고인 이 씨의 신문이 이어졌다. 이 씨는 “당시 피해자가 쓰러진 모습을 봤을 때, 한 명(장 씨)은 잠을 자고 한 명(배 씨)은 안 보였고, 술을 많이 마신 상태라 ‘내가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범인으로 몰릴까 겁이나 칼과 손을 씻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배 씨가 김 씨와 다투는 과정에서 칼을 빼앗는 모습은 봤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김 씨가 취하면 욕설과 폭행을 일삼았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고 장난으로 생각해 불만을 품거나 해치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거동이 불편해 칼을 휘두를 수 없다”는 취지의 진술 과정에서 “김 씨가 다리를 걸어 어깨가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이후 어깨를 잘 쓰지 못한다”거나 “양 씨와 면회 과정에서 ‘배 씨에게 가서 (살해했는지) 물어보기나 하라’고 했다”는 등 그동안 검·경 조사과정에서 진술하지 않았던 내용들을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배심원 앞에서 최종의견으로 “이 씨는 이전에도 김 씨에게 수회 구타를 당하고 사건 발생 전인 지난 2월 3일 ‘김 씨에게 폭행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며 “이 씨는 사건 당일에도 김 씨가 자신을 때리고 욕설을 했다고 진술했으며 법정에서 김 씨 때문에 어깨가 부러졌다고 말한 것으로 볼 때, 이 씨의 범행 동기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검찰은 이 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죄질이 불량하나 몸이 불편하고 계획적 범행이 아닌 것으로 판단,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이후 시민 배심원단은 유무죄 여부와 형량을 정하기 위한 평의에 들어갔다. 4시간에 걸친 긴 평의 끝에 배심원단은 오후 6시 20분께 재판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진술이 검찰과 경찰, 결백을 주장하는 탄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시간이 갈수록 구체적으로 바뀌어 오히려 이례적으로 보인다”며 “범행 동기가 분명한 점, 범행에 쓰인 흉기를 씻고 피고인 옷에서만 혈흔이 발견된 점으로 볼 때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은 법정에서도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타인에게 범행을 전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다만 피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고,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며 “배심원 의견에 따라 피고인을 징역 13년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각각 징역 8년에서 16년 2명, 징역 13년 4명, 징역 10년 2명, 징역 8년 1명 등의 의견을 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심원은 <일요신문>과 만나 “평의 시간이 길었지만 배심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려서 길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법은 상식이다’라는 생각으로 평결에 임했다”고 전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이태원 살인사건은? 용의자 한국 송환 절차만 수년째 2011년 11월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살인사건’ 용의자 아더 패터슨을 즉각 송환할 것 등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1997년 4월 3일 목요일 오후 10시께. 홍익대를 다니던 당시 22세의 조중필 씨는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던 중이었다. 용산구 이태원동을 지나던 그는 소변이 마려워 마침 근처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조 씨는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주머니칼로 왼쪽 목 네 곳, 오른쪽 목 세 곳, 가슴 두 곳 등 총 아홉 군데를 찔렸다. 이후 119가 출동했지만 출혈이 심했던 조 씨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사건 현장에 있다가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른 패터슨과 에드워드 두 사람은 서로 “조 씨를 죽인 범인은 상대방”이라며 “자신은 구경만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조 씨의 부검 결과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을 것”이란 소견과 주변인 진술 등을 바탕으로 몸집이 더 큰 에드워드를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후 에드워드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패터슨은 흉기소지 혐의로만 1년 6개월 구형을 받은 뒤 출소했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지난 1999년 대법원으로부터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 씨의 가족은 패터슨을 유력 용의자로 보고 살인 혐의로 다시 고소하면서 검찰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스틸컷. 그런데 지난 1999년 8월 검찰이 인사이동 과정에서 패터슨에 대해 사흘간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아 패터슨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눈앞에서 피의자를 놓쳤다고 생각한 조 씨의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냈고, 재수사 요청을 줄곧 제기했지만 “용의자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다 지난 2009년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상영되면서 재조명받게 됐다. 이후 재조사 여론이 들끓자, 검찰은 패터슨이 도주한 지 10년 후인 지난 2009년 미 당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그리고 2년 뒤인 지난 2011년, 행적이 묘연했던 패터슨이 미 수사기관에 검거됐고 한국 송환 재판을 받았다. 이듬해인 지난 2012년 미국 LA 연방법원은 1년여의 심리 끝에 송환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 패터슨이 인신보호청원을 해 송환이 무산됐다. 지난 5월에는 패터슨의 인신보호청원이 미국 법원 항소심서 기각돼 다시 송환이 임박한 듯했지만, 패터슨이 다시 6월 19일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재심 절차를 밟게 됐다. 그러나 재심 기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다. 패터슨이 언제 확정 재심을 받고 송환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