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을 위험한 게임에 밀어넣어라?
▲ 김근태 장관의 재야파가 정동영 장관의 10월 재보선 출마를 압박하고 나서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
지난 4·30 재보선에서 여당 참패 직후 정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당 조기 복귀론’이 불거졌다. 참패 요인 가운데 스타급 정치인 부재가 거론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동안 ‘조기 복귀론’은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정 장관의 10월 재보선 출마를 요구하는 주장이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 그런데 이 같은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론’은 차기 대선 라이벌인 김근태 장관 계열에서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정동영 10월 재보선 출마론’에 불을 지핀 것은 재야 출신으로 김 장관 계열인 장영달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다. 장 위원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오는 10월 재보선에 후보로 직접 출마해 현역 국회의원으로 다시 활동한다면 정 장관 개인뿐만 아니라 여당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고 피력한 바 있다.
김 장관 중심의 ‘국민정치연구회’ 소속 한 재야 출신 중진 의원도 “정 장관이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되면 ‘일거삼득’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중진 의원이 언급한 ‘일거삼득’은 우선 정 장관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야 당으로 복귀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추락하고 있는 여당 지지도를 그만의 스타성으로 만회할 수도 있다는 것. 여기에 정 장관이 재보선에서 당선될 경우에는 여당의 ‘대선·총선 승리, 재보선 패배’라는 징크스를 깰 수 있다는 논리다. 한마디로 “정 장관이 손해 볼 게 없는 게임”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여권의 차기 대권 라이벌인 김근태 계열에서 정 장관에게 이렇게 ‘훈수’를 두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고 해서 김 장관이 자신의 ‘대망’을 접고서 ‘정동영 밀어주기’를 작심한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의 핵심 관계자는 “정·김 두 장관은 중도에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2007년 초 예정인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경쟁 후보로 출마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 장관 계열에서 최근 들어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를 독려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재야파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 나란히 앉은 정동영-김근태 장관. | ||
그래서인지 여권 일각에선 ‘정동영 10월 재보선 출마론’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정 장관이 10월 재보선에 출마, 패배할 경우 그동안의 대북 사업성과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공산이 크다는 것. 더욱이 그렇게 될 경우 정 장관의 향후 대권행보도 순탄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음모론에 대해 김 장관과 가까운 한 의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서 “단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주자 선두에 있는 정 장관이 추락하고 있는 당 지지율을 높이고,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기반 구축에 나서길 바라는 차원에서 재보선 출마론이 불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군불 때기’에도 불구하고 정 장관이 오는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한때 8·15 남북공동행사 이후에 당에 복귀, 재보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15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통해 23일 도출된 ‘남북합의 12개 사항’은 정 장관이 향후 추진하거나, 마무리 지어야 할 중대 사안들이다. 더군다나 이번 남북 합의 가운데는 16차 장관급 회담을 오는 9월13일부터 16일까지 백두산에서 개최하기로 한 사항까지 포함돼 있어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는 물론 당 복귀 시기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 장관의 사조직인 ‘나라비전연구소’의 핵심 인사는 ‘재보선 출마론’에 대해 “그런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출마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이 참모는 “당 복귀와 재보선 출마 여부는 장관 임명권자인 대통령 의중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부처(통일부)의 장관인데 정치적 이유 때문에 당에 복귀하라고 하는 것은 국가 운영 원칙에 맞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이 한 사람(정 장관) 때문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도 문제”라고 밝혀, 재야파 일각에서 제기한 재보선 출마론에 대해 못마땅한 심정을 드러냈다.
정작 정 장관도 기자들이나 주변 인사들이 ‘당 복귀’ ‘출마설’ 등을 언급한다 싶으면 곧바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일각에서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를 예상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가설에 불과하다”면서도 “10월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당이 현재와 같이 지리멸렬하거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면 조기 복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면담에 이어 남북 장관급 회담의 ‘주연배우’였던 정 장관이 6월 말 현 시점에선 10월 출마가 요원해 보인다. 더군다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재개와 남북합의사항 실천 등으로 당분간 ‘당 복귀’나 ‘재보선 출마’ 등은 안중에 없을 듯하다. 조기에 당에 복귀하거나 재보선에 출마하지 않아도 ‘통일부 장관, 정동영’에게 쏠린 스포트라이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당장 서둘러 당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계산했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