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중독 끝의 허탈 ‘이런 건가요’
‘투혼의 상징’ 권혁이 흔들리고 있다. 그는 시즌 내내 혹사논란에 시달리면서도 한결같이 “던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불사조’ 권혁도 사람이다 : 이병훈 SPOTV·아프리카TV 해설위원
한화 팬들은 나를 무척 싫어한다. 내가 지난 6월 중순부터 한화의 성적이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걸 방송을 통해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한화 팬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됐다. ‘이병훈이 미쳤다’라고 하면서.
현재 한화는 김성근 감독의 선수단 운영이 코칭스태프와 숱한 토론과 대화 끝에 이뤄지는 민주주의적인 방식이 아닌, 다분히 김 감독의 고집대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김 감독이 쌍방울, LG, SK 때와는 다른 마운드 운영을 보이며 선수들을 몰아가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하위권을 맴돌았던 한화 선수들은 지난 겨울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지옥 같은 훈련을 소화했다. 훈련을 하면서도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과연 이런 훈련들이 시즌 중에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지 잘 몰랐고, 설령 성적이 난다고 해도 그게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한화가 이전과 달리 매서운 팀으로 변화를 이뤘고, 지고 있는 경기를 뒤집을 줄 아는 맷집도 선보였다. 선수들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몇 년 만에 이런 경기를 해보나 싶었을 것이다.
성적을 낼수록 김성근 감독은 더욱 독하게 선수들을 이끌었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경기 전후로 특타를 반복했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는 철인이 아닌 사람이다. 무엇보다 타자보다 투수는 그런 방식의 훈련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올 시즌 ‘한화의 불사조’로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권혁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그는 시즌 내내 혹사 논란(또는 의혹)에 시달리면서도 한결같이 ‘괜찮다’, ‘내가 던지고 싶어서 던지는 것이다’, ‘마음껏 던질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면서 김성근 감독의 지도법을 지지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감독 밑에서 야구하는 선수가 감독의 훈련이 잘못됐다고 말할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권혁의 ‘약발’이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것과 매번 박빙의 상황에서 등판하는 것과 피로도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무리 투수는 특히 그렇다. 그 영향이 공의 위력 저하로 나타난다. 그것도 눈에 띌 정도로 말이다.
오른손 투수는 자신의 스피드가 시속 3~4㎞ 떨어지면 구종을 달리하며 조절 가능하다. 그러나 왼손 투수는 그 정도로 스피드가 떨어지면 던질 수 있는 공이 바깥쪽 공밖에 없다. 몸쪽 공은 타자 몸에 맞거나 타자가 치고 나갈까봐 불안해서 던지기 어렵다. 또한 몸쪽 공을 던진다고 해도 볼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다보면 투구수가 늘어나고, 나중엔 스피드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힘이 있을 때는 상대 타자들이 알고도 못 치는 게 권혁의 공이다. 최근 병원에서 링거를 맞을 정도로 힘이 빠진 권혁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한화 마운드는 돌아가면서 탈이 난다. 아니, 선수단 전체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부상과 복귀를 릴레이처럼 이어가고 있다. 김성근 감독 입장에선 속이 타겠지만, 그동안 선수들이 부상을 감수하면서도 감독이 시키는 대로 훈련량을 늘렸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정근우, 김경언, 김태균이 타선에서 불을 지핀다고 해도 일찌감치 마운드가 무너지면 답이 없다. 아슬아슬하게, 근근이 버티던 마운드가 잔뜩 더위를 먹고 헤매는 꼴이다.
한 번은 다른 경기 중계를 갔다가 그쪽 감독이 한화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다. 한화는 선발이 누가 나오든 간에 투수 로테이션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우리로선 미리 타자들을 준비해 놓기가 편하다고 하더라. 한화는 윤규진이 부상으로 나가기 전엔 윤규진 박정진 권혁이 불펜을 소화했다. 교체 타이밍에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의 투입은 일정하게 반복됐다. 그러다보니 한화에는 투수가 권혁 박정진 윤규진만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한화의 마운드는 정체돼 있고, 젊은 투수는 점차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투수를 올렸다가도 홈런이라도 맞게 되면 바로 내리고 필승조를 투입하는 게 김성근 감독의 야구다. 젊은 선수들은 연습만 시킨다고 성장하는 게 아니다. 1이닝이라도 마운드에 올려야 나중에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
그래도 매번 꼴찌를 도맡았던 한화가 SK, KIA와 5위 싸움을 하고 있는 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5위를 차지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려면 선수들은 내년을 생각하지 말고 올해까지 야구하고 죽겠다는 각오로 덤벼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한두 번 이기는 걸로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 ‘돌려막기’로 가을야구는 어렵다 : 익명을 요청한 A 해설위원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여름이 되면 한화가 힘이 떨어질 거란 사실을.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나름 감동을 전하고, 매력적인 부분도 있지만 길고 긴 페넌트레이스를 끌고 가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김 감독이 SK를 우승시킬 때만 해도 조범현 당시 코치 밑에 젊고 유능한 선수들이 많았고, 그들을 잘 성장시켰다. 반면에 지금의 한화는 선수 연령대가 높고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야구계에선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돌려막기’라고 표현한다. 선발이 무너지면 선발 중 한 명을 불펜으로 돌려 사용하고, 그마저 역부족이면 또 다른 누군가를 불펜으로 내린다. 현재 배영수가 중간계투로 나서고 있는데 과연 그 방법이 선수단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선발에서도 무너진 선수인데 말이다.
김성근 감독도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5강을 간다고 해도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북돋워주는 운영을 하지 않으니 한화의 미래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화가 올 시즌 최고의 흥행 카드인 것은 분명 맞지만, 야구계엔 드러내지 않은 반 김성근 감독 세력이 많은 편이다. 성적 부진과 함께 그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지면 김 감독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을 떠난 유먼이 한 인터뷰에서 그런 얘길 하더라. 감독 얘긴 쏙 빼고 고생한 동료들이 가을야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그도 감독한테 맺힌 게 많았던 것이다.
# 체력의 한계, 문제는 지금이 아니다 : 배지헌 프레시안 칼럼니스트
최근 포항에서 열린 한화 삼성전(16일)을 보며 선발로 올라간 로저스가 완투하지 않으면 삼성을 이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화 불펜이 마운드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저스가 완투나 완봉을 하지 못하면 손쉽게 승리할 수 없는 팀이 한화다. 현재 한화는 총체적인 난국이다. 투타 모두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다. 이길 때는 자신감이 상승하지만, 못할 때는 좋지 않은 영향이 두 배로 나타난다. 그만큼 훈련량이 많았기 때문에 자극을 받으면 쉽게 지친다.
‘김성근 야구’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비난이 한꺼번에 감독을 향해 쏠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은 다른 9개팀 감독들과 1 대 9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감독들이 한화만 만나면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화 분위기는 김성근 감독이 SK에서 보낸 마지막 상황들과 흡사하다. 한화보다 훨씬 젊었던 SK 선수들이 4년 넘게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면서 4년째 체력의 한계를 드러낸 상황이었다. 한화는 그 현상이 빨리 나타났다. 이유는? 당시 SK 선수들은 20대 초중반이었지만 지금 한화의 선수들은 30대 초중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다.
김 감독은 SK 시절, 무명 선수나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성장시켜서 출전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믿는 선수 몇 명 갖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전력에서 제외된 선수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불쌍한 건 선수들이다. 만약 이렇게까지 해서 5위에 오르지 못하고 다시 내리막길을 탄다면 선수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걸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한화가 반등의 계기를 마련해 다시 올라서길 바란다.
정리=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김진욱 해설위원의 ‘한화 긍정론’ “체력문제? 다른 팀도 마찬가지” 두산 베어스 감독 출신인 김진욱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한화의 앞날에 대해 조금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김 위원은 각 팀마다 속사정은 있기 마련이고, 한화가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조인성이 8월 21일 kt전에서 연타석 투런포를 날려 7연패를 끊는 데 한몫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라고 해서 한화의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한화가 7, 8월이 되면 힘들어질 거란 사실을 절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로저스란 외국인 투수를 거액의 돈을 주고 데려왔고, 2군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1군으로 올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팀이나 고비는 있다. 그 고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직 한화에 대해 실망하긴 이르다.” 김진욱 해설위원은 김성근 감독의 혹사 논란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내놨다. “선수단의 내밀한 상황은 기자도, 팬들도 모른다. 드러난 일만 갖고 감독의 선수단 운영 능력이나 방법에 대해 평가하는 건 어려움이 있다. 지금 한화는 선수들이 체력적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체력적으로 힘든 건 다른 팀도 다 마찬가지다.” 김 위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의 5위 싸움은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KIA가 다크호스로 상승세를 타지만 한화가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화와 SK의 싸움이 될 것이고, 그 중에 한 팀을 꼽는다면 한화가 5위에 오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