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VS 반김수현’ 구도가 판 갈랐다
▲ 김옥영 이사장. | ||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김수현 작가가 지원한 김운경 작가가 다소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선거 결과는 모든 예상을 뒤엎었다. 535표를 얻은 김옥영 작가가 김운경 작가(244표)를 두 배 이상의 표 차이로 따돌리는 압승을 거둬낸 것. 이를 통해 한국방송작가협회 역시 정권 교체기를 맞이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예능프로그램보다 오히려 흥미진진했던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선거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새로운 이사장을 선출하는 한국방송작가협회(작가협회) 2008년도 정기총회가 열린 63빌딩 국제회의장은 겉으로는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어느 때보다 쟁쟁한 후보들이 출마해 최근 방송가에선 ‘작가 둘만 모여도 이사장 선거 관련 얘기가 오가고 셋만 모이면 지지후보를 두고 말다툼이 생긴다’는 말이 오갈 정도로 치열한 선거전이 치러진 데 반해 총회장 분위기는 예상과 달리 평온했다. 4년 전에 치러진 이사장 선거 당시 다소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했던 터라 이번만큼은 축제 분위기의 선거를 만들자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거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사실상의 선거전은 1월부터 시작됐다. 입후보할 것으로 알려진 작가를 지지하는 작가들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 이에 작가협회가 홈페이지 게시판에 ‘공식적인 선거운동은 최종 입후보자가 확정되는 2월 4일 16시 이후부터 할 수 있다’는 글을 올렸을 정도다.
이처럼 선거전이 초반부터 뜨겁게 달궈진 데에는 지난 2004년에 치러진 제 26대 작가협회 이사장 선거 당시 치른 홍역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선거에선 김수현 작가가 지원하는 박정란 작가가 이사장으로 선출됐는데 각 후보 지지 세력의 대결 구도가 다소 지나칠 정도로 격렬했고 이로 인해 정기총회 당일 상당한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이번 선거 역시 가장 큰 틀은 김수현 작가 중심의 드라마 작가 세력과 그 반대 세력의 대결 구도였다. 이번에 치러진 제 27대 작가협회 이사장 선거에는 모두 네 후보가 출마했는데 ‘여권 후보’에 해당되는 인물은 기호 3번 김운경 작가였다. <서울의 달> <옥이 이모> <황금사과> 등의 드라마를 집필한 김운경 작가는 김수현 작가를 중심으로 한 작가협회 여권이 지지하는 후보다. 홍보 선전 이메일에 담긴 추천사를 통해 김수현 작가는 그를 ‘정직하고 따뜻하고 부끄럽지 않은 작가’라는 말을 남겼고 본인 명의로 회원 작가들에게 발송한 문자 메시지에선 ‘공정하고 투명하게 협회를 책임질 사람으로 저는 김운경을 추천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모든 드라마 작가들이 김수현 작가 측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탓에 또 다른 드라마 작가가 후보로 출마했는데 기호 1번 이환경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용의 눈물> <야인시대> 등의 드라마를 집필한 대표적인 남성 드라마 작가인 이환경 작가의 주요 지지 세력은 40~50대 남성 드라마 작가들과 원로 작가들이었다.
▲ 인기 드라마 작가로 방송작가협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김수현 작가. 오른쪽 사진은 김 작가가 발송한 김운경 작가 추천 문자 메시지. | ||
마지막 기호 4번은 라디오 작가들의 지지를 받은 구자형 작가다. 구자형 작가는 이문세 이수만 김기덕 길은정 오미희 등 굵직한 중견 DJ들과 일하며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네 명의 후보는 저마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온 작가들인 터라 선거전은 더욱 뜨겁게 달궈졌다. 그렇지만 역시 김운경 작가가 우위에 서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작가협회에서 드라마 작가 회원들이 갖는 영향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비록 이환경 작가 측과 양분되긴 했지만 대세는 김수현 작가 중심 세력이었고 실제 이환경 작가는 선거에서도 63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런 분위기는 정권교체 열망이 드높았던 교양 예능 구성작가들을 더욱 단합하게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 투표에 참여하려는 열기가 대단했다. 정기총회에서 만난 한 예능 구성작가는 “오랜 기간 드라마가 방송을 주도해온 데 반해 최근 몇 년 새 예능프로그램의 영향력이 드라마를 넘어서기 시작한 만큼 구성작가 출신 이사장의 등장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구성작가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이사장의 등장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김옥영 작가의 이사장 선출은 예능 프로그램의 강세라는 달라진 방송 환경을 대변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선거 결과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 것은 김옥영 작가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있다. 535표 대 244표로 과반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 2위와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벌리며 당선의 영예를 누린 것이다.
이런 결과를 두고 김수현 작가를 필두로 한 작가협회 중심세력에 대한 반발표가 김옥영 후보에게 집중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더욱 결정적인 이유는 김옥영 작가가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회원 작가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작가로서의 역량은 물론이고 후학 양성에 힘써온 부분, 그리고 장르 별로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는 작가협회를 아우를 수 있는 성품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표를 던진 이들이 많았다는 게 김옥영 작가 지지 세력의 설명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내홍을 겪어온 작가협회는 새로운 이사장과 임원진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전히 작가협회 내 최대 세력인 김수현 작가 중심의 드라마 작가들을 어떻게 아우를지 또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온 구성 작가들의 권익을 어떻게 대변해야 할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o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