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와 ‘사전교감’ 있었나
▲ 한나라당을 겨냥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발언으로 정계가 시끄럽다. 사진은 지난 3월24일 박근혜 대표와 노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 ||
노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은 이미 지난 6월 말 처음 연정 발언을 했을 당시부터 계획됐던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정·청 주요 인사 모임인 ‘12인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를 통해 확인됐다. ‘사실상의 정권교체’라고 불리는 ‘연정 구상’, 그 논란의 끝을 따라갔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은 실질적으로는 정권 교체 제안”이라고 언급했다. 또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갖는 연정”이라고 설명하면서 나아가 “중요한 국가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양당이 합동 의총 등을 통해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말도 쏟아냈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통령 노무현, 총리 박근혜’ 중심의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연정’ 의사가 있음을 밝힌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한 조건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연정’ 제안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이라며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 꼭 선거제도는 고치고 싶다”고 밝혔다. 또 한나라당이 ‘연정 제안’을 공식 거부한 뒤에도 “정권을 받기 싫다면 선거제도라도 바꿔달라. 대선거구제든 중선거구제든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지역주의 해소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노 대통령이 ‘연정’ 구상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지난 6월24일 소위 ‘11인회의’(현 12인회의)에서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정부와 여당이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다. 민주노동당 민주당과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연정’ 구상을 공식 언급해 논란을 불러왔었다.
한나라당을 ‘콕’ 찍은 이번 제안은 지난달 22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12인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식화됐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중심의 연정을 수용할 의사가 있으며 실현될 경우 제1 야당인 한나라당에 총리지명권을 주겠다”며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대통령 자신이 직접 작성한 16페이지에 달하는 ‘당원동지들에게 드리는 글’을 오는 26일(화)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일요신문> 689호 참조).
그러나 확인 결과 노 대통령의 이번 ‘한나라당과의 연정’ 구상은 처음 연정 구상이 제기된 6월 말 이미 구체화됐던 것이었다. ‘12인회의’에 참석하는 당 핵심인사는 이와 관련해 “이미 지난 6월24일 ‘11인회의’에서 처음 ‘연정제안’이 나왔을 당시 한나라당과의 연정 가능성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왔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민주당·민노당 등과의 공조문제가 동시에 거론됐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설마 한나라당과…’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큰 정치를 위해서는 한나라당과의 연정도 못할 일이 아니다’라는 정도로 대통령의 생각을 이해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12인회의’에서 자신의 구상을 언급하면서 “한나라당이 정권과 여당의 개혁방향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정부를 탓하고 있는데 정권을 줘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게 해 볼 생각이다. 그러면 한나라당의 정치력이 드러나지 않겠느냐”는 언급도 했다고 전해진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정당은 정권을 목표로 존재하는 조직이므로 정권은 국정운영의 기회이고 책임이다. 지금 참여정부의 나라 살리기에 대해 한나라당이 위기감을 갖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 당연히 국정을 운영할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환영해야 한다. 그걸 그냥 일거에 차버리는 것을 보면 국정운영에 별 관심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한나라당을 은근히 압박하기도 했다.
한편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또 다른 의미심장한 말도 남긴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예상된다. 당시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연정 구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나라당과도 이러한 생각을 나눈 바 있다’는 의미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당들이 일제히 “연정에 관심이 없다”는 것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셈. 노 대통령이 그동안 연정을 구상하면서 야당, 특히 한나라당 일각과 일정한 교감을 나눠왔을 가능성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특히 그동안 한나라당 내, 특히 영남지역 의원들 사이에서 내각제 등을 통한 정치개혁과 관련,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노 대통령의 제안이 어쩌면 ‘혼잣말’이 아닐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