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이 9829건 출원도…누워서 ‘이름값 따먹기’
노유민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노유민 코페’가 상표권 침해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위는 특허청이 입주한 대전정부청사.
상표권은 최초 상표등록출원 후 심사과정을 거친다. 만약 심사과정에서 상표의 선사용 사례가 발견되거나, 법적으로 미비할 경우 거절된다. 심사과정을 통과한다면 등록을 앞두고 약 2개월 시한의 공고기간을 두는데, 이 기간 동안 출원자가 등록비를 납부하면 해당 상표는 정식으로 등록돼 법적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9월 10일 특허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노유민 코페의 경우, 심사가 강화됨에 따라 이를 의식해 알파벳을 교묘하게 띄워놔(노유민 측 ‘noumincofe’, 김 씨 측 ‘noum incofe’) 상표를 등록한 경우였다. 상표 심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비교적 잘 아는 사람인 듯했다”라며 “이번 사건으로 김 씨의 출원기록을 모니터링하게 됐다. 기존의 출원 혹은 등록한 상표 상당수가 이미 기존에 있었던 (하지만 상표 출원이 되지 않는) 것을 의도적으로 출원한 경우가 많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현재 특허청에서는 상습적인 상표브로커를 요주의 대상자로 특별 관리하고 있다”라며 “이번에 김 씨도 신규 대상자로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김 씨는 ‘파란닷컴(paran.com·KT의 옛 포털명)’, ‘에스파지오’, ‘아띠바시’(커피숍 브랜드) 등 기존 브랜드와 관련해 등록을 시도하다 특허청 심사 과정에 거절된 바 있다. 김 씨가 2007년 상표 출원 후 등록한 ‘바이두(Baidu·중국 최대 포털)’는 2012년 특허심판이 제기됨에 따라 소멸되기도 했다. 김 씨는 한 유명 아동복 브랜드, 한 중소포털 브랜드와 관련한 상표를 선 출원 및 등록해 각각 이들 업체에 돈을 받고 상표권을 넘긴 일도 있었다.
특허청은 현재 특별관리 대상자로 리스트에 올라온 국내 상표브로커가 총 38명이라고 밝혔다. 특허청이 제공한 상표브로커 38명의 세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출원한 상표만 무려 2만 1125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상표브로커 1인당 평균 556건의 상표를 출원했다는 얘기다. 38인 중에서도 상표브로커 A 씨는 무려 9829건의 상표를 출원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등록 상표를 가장 많이 보유한 상표브로커는 B 씨로 그가 보유한 상표만 193개에 이르렀다.
특허청에 따르면 상표권 출원을 통해 이득을 취하거나 이를 시도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기존의 출원되지 않는 상표를 선 출원 및 등록해 선 사용자에게 상표권을 파는 경우, 둘째는 이러한 선 사용자에게 주기적으로 사용료를 지급받는 경우다. 그리고 셋째는 등록한 상표권을 통해 이번 노유민 씨 사건의 경우처럼 법적 공세에 나서는 경우다.
특허청 관계자는 “금전을 노리는 상표브로커는 선 사용자를 상대로 고소를 한다고 해도 끝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중간에 합의금을 받는 게 목적”이라며 “또 아예 등록 이전 출원 상태에서 법적 지식이 미약한 영세업자들이나 중소기업을 상대로 금전을 요구해 이득을 취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출원’이란 말에 속는다. 시중에 많은 상품들이 ‘특허출원’이란 말을 쓰는데, 이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말 그대로 원서를 제출했다는 얘기다. 서울대 합격자와 서울대 지원자는 엄연히 다르지 않나. 심사를 거쳐 등록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효력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앞서 상표브로커 38인의 세부 자료를 살펴보니, 2만여 건 가운데 실제 등록된 상표는 1435건에 불과했다. 중간에 취하·포기·무효화된 상표가 1만 7107건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브로커 때문에 낭비되는 행정력과 비용이 상당하다”라며 “이들에 당하는 영세업자를 비롯한 피해자들만이 피해자가 아니다. 결국 이들 때문에 발생하는 행정력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세금을 내고 있는 우리 국민 모두가 피해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행인 점은 지난 2013년 10월에 있었던 ‘선사용자보호강화를위한상표법개정’에 따라, 영세업자들의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길이 넓어졌다는 것. 개정 이전만 해도 어느 정도 널리 알려진 선 사용 상호에 대해서만 보호하도록 돼 있어 영세업자 보호가 어려웠지만, 개정 이후 상호가 널리 알려진 것과 상관없이 선 사용한 상호라면 모두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의 ‘주지성 요건’이 삭제된 셈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현재 특허청에선 상표심사기준을 강화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는 별도의 상표브로커 피해신고 사이트를 개설해 상담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공익변리사 상담센터와 연계해 피해를 입은 영세업자들의 법적 구제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