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에서 딱 마주친 ‘엑스’ “야, 이 XX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3대 돌싱카페’ 회원수는 각각 수만 명에 달한다. 유명한 돌싱카페가 한정적이다 보니 번개 모임에서 전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웬만한 결혼정보회사보다 낫다.”
회원이 8만 명에 달하는 한 돌싱카페의 회원은 모임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회원들의 모임이 자주 있고, 오랜 시간과 만남을 통해 이성끼리 자주 보면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커플매니저가 짜 맞추듯 주선하는 방법보다 ‘성혼율’이 높다는 게 회원들의 평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3대 돌싱카페’의 회원수는 모두 수만 명에 달한다. 2003년에 개설된 ‘이재모’의 회원은 8만 3000여 명에 달하며, 하루 등록 게시글이 300~400건에 이를 만큼 활동이 활발하다. 2004년에 만들어진 ‘해피돌싱’ 카페 역시 8만 2000명에 달하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3대 카페 중에 가장 나중에 생긴 ‘산타피아’는 회원수는 3만 6000명가량으로 다른 카페에 절반 수준이지만, 끈끈한 조직력으로 유명하다.
이들 모임이 다른 온라인 카페와 다른 점은 오프라인 모임이 잦고, 회원이 지켜야 할 규칙이 많고 까다롭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돌싱카페는 회원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혼을 준비 중이거나 이혼한 사람, 미혼모나 미혼부, 사별한 사람, 35세 이상의 올드싱글이 가입 자격이다. 미혼자이거나 결혼한 사람의 가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는 곳도 있다. 오프라인 모임이 잦다보니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들 카페에서는 ‘사조직’을 철저히 금지한다. ‘번개’ 모임을 열더라도 참석자에는 제한을 둬서는 안 되며, 일부 회원들끼리 SNS 단체 채팅방을 만드는 것도 금지한다. 미혼자의 경우 모임을 주최할 수 없도록 규정한 곳도 있다. 또 번개를 할 때는 참석자 명단을 회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렇게 모이는 번개가 일주일에 4~5건은 된다. 전국에서 거의 매일 ‘돌싱 번개’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의 돌싱카페 회원은 “놀 때는 화끈하게 논다. 다만 규정된 카페 규칙은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다. 규정을 어겼다가 활동정지를 당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철저히 규정을 둬도 크고 작은 사고는 때때로 일어난다. 때문에 거의 매주 카페 번개모임 방에는 특정 회원의 활동정지 및 강퇴 소식이 올라온다.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특정 인기 멤버를 두고 벌이는 알력다툼, 특정인을 주기적으로 욕하고 비방하는 사람 등 ‘진상’ 유형은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위험한 건 유부남, 유부녀들의 모임 참여다. 유부남녀는 원칙적으로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거짓말을 한들 확인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한 회원은 “친구들과 만났는데 ‘돌싱카페가 물 좋다더라’는 얘기를 나누더라. 실제로 활동하다가 적발돼 강퇴당한 회원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회원들이 꼽는 돌싱카페의 가장 큰 매력은 서로에 대한 이해, 동병상련이다. 이혼 초반에 겪게 되는 일들,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변화들을 이혼 연차가 높은 선배들이 알아준다. 또 다른 회원은 “이혼 후에는 친구들과 만나도 편하지 않다. 나이가 나이다보니 이혼이 주제로 오를 때가 많은데 친구들이 내 눈치를 보는 일이 많다. 이혼 초반에는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어 농담도 잘 받아넘기지 못했다. 카페 회원들끼리는 그런 일이 없어 좋다”고 설명했다. 한 돌싱카페의 운영자 김 아무개 씨는 “이혼은 3년차까지가 고비다. ‘새내기’ 이혼자들은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일이 잦다. 그럴 땐 대체로 모임에서 품어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혼 남녀는 이제 드라마에도 꼭 등장할 만큼 흔해졌다지만, 세간의 인식은 따라오지 않아 겪게 되는 에피소드도 많다. 오프라인 모임 시 40~50대의 남녀가 각자 아이를 대동하거나, 닉네임으로 부르는 모임은 흔치 않기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한 회원은 “1년에 두 번씩 100명에서 200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주최한다. 예전에는 모임 예약을 할 때조차 골치 아픈 일이 많았다. 카페 이름으로 예약을 하자니 참여자들도 곤란하고, 실명을 쓰지 않아 닉네임으로 예약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가장 곤란한 건 경조사 때다. 화환을 보낼 때 이름으로 보내면 받는 사람이 모르고, 닉네임을 쓰면 남들 볼 때 우습다. 결혼식이면 모를까 조문 갈 때 부의금 봉투에 닉네임을 쓸 수 없지 않느냐”며 웃었다.
한 가지 주제로 통하는 싱글남녀가 만나는 모임인 만큼 ‘성혼율’도 상당히 높다. 매년 열 커플 이상은 카페에서 탄생한다는 게 회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한 돌싱카페에는 올해만 열두 커플이 결혼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한 회원은 “이곳 카페에서 만나 2년간 교제하고 결혼한다. 인연을 만들어준 카페에 감사한다”며 웨딩사진을 공개했다.
물론 잘 안 되는 경우도 적잖고 이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찮다. 때문에 서로 간에 얼굴 붉힐 일도 있다는 게 회원들의 전언이다. 또 다른 회원은 “깨진 커플도 많다. 보통 한 쪽이 탈퇴를 하거나 활동이 뜸해진다. 닉네임을 바꿔 ‘신분세탁’을 하고 온라인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유명한 카페 수가 한정적이다 보니 모임에서 ‘엑스(전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온라인 게시글을 보고 전 배우자의 닉네임을 알게 되면 차라리 다행이다. 번개에서 마주치면 그날 모임 분위기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앞서의 카페 운영진은 “이럴 땐 활동량이 많은 사람이 이긴다. 조용히 운영진한테 와서 ‘어떤 아이디가 내 엑스인 것 같으니 활동을 막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럴 땐 정말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차별없는가정을위한시민연합(차가연)’의 이병철 대표는 “돌싱도 미혼남녀랑 똑같다. 돌싱모임이라고 해서 색안경 끼고 보는 게 요즘 같은 때는 더 이상한 거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확고한 원칙이 있는 모임이라면 남은 자녀를 위해서든, 본인을 위해서든 두고 보는 게 옳다”고 설명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원칙 철저하다지만…바람 잘날 없는 돌싱모임 ‘사랑과 전쟁’ 찍을라…서류 정리 확인 필수! “카페에 조심스레 가입하고 물어봐요. 저도 이런 데 활동 전혀 안 해요. 경기도 안양 쪽 사는 행정공무원입니다. 대화가 된다면 얘기를 나누고 싶네요.” 돌싱모임은 모두가 ‘알 것 다 아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린 상태에서 만나기에 대화 수위는 한층 뜨겁다. 평소 남성들끼리 나누는 음담패설도 이곳에서는 ‘오케이’다. 간혹 모임에 처음 나온 사람이나 다소 젊은 축의 여성 회원이 끼면 입조심을 한다. 한 회원은 “우리끼린 ‘39금’이라고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성희롱으로 잡혀 갈 만큼 수위가 높다.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끼리의 문화다. 처음엔 얼굴 붉히던 사람도 몇 번 나오면 적응하고 더 ‘센’ 발언을 하기도 한다”고 모임 분위기를 전했다. 최고 수위의 정점은 ‘여벙’에서 찍는다. 여벙이란 ‘여행번개’를 지칭하는 돌싱카페 회원들끼리의 은어다. 아이를 대동하는 여벙이 있는가 하면, 아예 ‘40대 이상, 자녀 동반 없이’를 못 박는 모임도 있다. 이럴 땐 밤 새워 수위 높은 술 게임이 벌어진다. 음담패설이든, 술 게임이든 법적으로 완벽한 미혼상태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임에도 신분을 숨기고 ‘엔조이’를 찾는 남녀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앞서의 회원은 “젊은 미혼 여성들이 일부러 카페에 가입해 재력 있는 남성 회원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미혼이라는 걸 무기로 고가의 선물 등 ‘스폰서’ 역할을 요구한다. 물론 여기에 넘어가는 회원들이 있어 더 문제다”고 설명했다. 더 애매한 이들은 법적으로 완벽하게 정리되기 전의 이혼남녀들이다. 서류상으로는 기혼상태이기에 이 사실을 모르고 만난 이혼남녀들이 자칫하다간 상대의 배우자에게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도 울고 갈 긴박한 상황이 펼쳐질 때도 있다. 익명으로 만나다보니 전 남편(아내)인 줄 모르고 장기간 온라인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사진, 직업 등을 속이고 활동해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 돌싱카페 운영자는 “카페에 올린 글들이 마음에 들어 1년 가까이 온라인상으로 만남을 이어가던 커플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혼한 커플이었다. ‘네 직업이 언제부터 간호사였느냐’부터 시작해 바닥까지 드러내는 싸움을 벌여 난감한 적이 있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