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쌍가르마야? 내 딸과 헤어지게”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한 장면. 탤런트 박원숙이 며느리를 구박하는 것도 모자라 폭행하고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막장 시어머니로 등장한다.
“궁합보러 열 군데 넘게 돌아다녔습니다.”
2년 전 결혼한 김 아무개 씨(32)는 쉽지 않았던 부모님 승낙 과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2년 가까이 만나온 여자친구를 궁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김 씨의 부모님께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간 날부터 어머니와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여자친구의 인사조차 받지 않았고, 식사 시간 내내 투명인간 취급했다. 집에 돌아와 자초지종을 물으니 황당하게도 궁합 얘기를 꺼냈다.
매몰찬 예비 시어머니 앞에서 여자친구는 결국 이별까지 결심했다. 하지만 김 씨는 좋은 궁합이 나올 때까지 사주를 보러 다녔고, 달라진 결과를 어머니에게 보여줬다. ‘결혼하면 아들이 승승장구한다’는 결과 앞에서 어머니의 태도는 백팔십도 달라졌다. 당장 결혼승낙은 물론, 여자친구를 불러 바로 백화점으로 가 반지부터 맞춰줬다. 김 씨는 “그 일로 어머니께 많은 실망을 했지만 어쨌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탑5 안에 드는 대학교의 약대를 나와 약사로 일하고 있는 남성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는 여성 커플이 있었다. 선남선녀 커플로 주변에서 부러움을 많이 샀는데 결국 남자 쪽 부모님의 반대를 못 이기고 헤어지더라. 결국 몇 년 뒤 남자는 같은 약국에 근무하는 여성과 결혼했다. 축하는 해줬지만 참 씁쓸했다.”
‘적반하장’식 반대를 하는 부모도 있다. 굳이 ‘급’으로 따지자면 두 사람이 비슷한데도 더 나은 조건의 사람을 찾는 것. 김 아무개 씨(여·28)는 “전문대 나왔다는 이유로 여자친구 부모님이 교제를 반대한다며 친구가 속상해하기에 ‘여자친구는 무슨 대학교 나왔느냐’고 묻자 똑같이 전문대라고 하더라”며 황당해했다. 박 아무개 씨(여·29)의 지인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해야 했다.
“여자친구 부모님이 반대하는 이유가 ‘남자 아버지가 용달차 끌고 다녀서’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인은 인사드리러 찾아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집안이 별 볼일 없어서 딸 줄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더라. 하지만 여자 쪽 집안도 지극히 평범했다. 말은 못했지만 그냥 헤어지라고 조언해주고 싶었다.”
지역과 문화 차이로 교제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감정을 타파해야 한다고 겉으로는 외치지만, 자녀의 결혼 문제로 부딪칠 때는 편견이 되살아나는 것. 경북 출신의 한 여성은 “호남 남자는 절대 안 된다고 얘기하는 부모님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서울 출신 친구들에게 말하면 깜짝 놀라더라”고 말했다.
제주도 역시 독특한 문화 때문에 ‘육지남자’를 거부하는 집안도 있다. 집과 혼수를 모두 남자 쪽에서 해오는 게 제주도만의 문화다. 때문에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더 중요하게 보기도 한다. 제주도 출신의 한 직장 여성이 털어놓은 얘기다.
“육지 사람이라고 하면 무조건 색안경 끼고 보는 부모님 때문에 교제 사실을 말씀드리기까지 한참 걸렸다.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 부모님은 항상 ‘제주도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제주 출신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것도 모르고 하시는 얘기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얘기했을 때도 처음 돌아온 말이 ‘집, 예단 해올 능력은 있느냐’였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외모 문제 역시 자녀의 혼인을 막는 중대한 사유가 되기도 한다. 키, 외모, 치열, 가르마 모양까지…. 사위, 며느리를 뽑는 기준이 미인대회 저리가라다. 이 아무개 씨(31)는 “친한 동생이 남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온다고 한 다음 날부터 폭식을 하더라. 이유를 물으니 ‘너무 말라서 네가 나중에 병수발 할 것 같다’라며 예비 시부모가 남자친구에게 헤어지라고 했다더라”며 어이없어 했다.
더한 집안도 있다. 박 아무개 씨(29)는 “친구는 ‘쌍가르마’라는 이유로 결혼 승낙을 받지 못했다고 우울해했다. 가르마 두 개면 장가 두 번 간다는 속설을 굳게 믿는 집안이었다”며 “너무 황당해서 그냥 결혼시키기 싫어서 아무 이유나 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의도치 않게(?) 복수를 한 이들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 아무개 씨(여·29)는 “회사에 잘나가는 여자 대리가 하나 있었다. 사내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려던 중 남자 쪽 부모님이 여자 쪽 집안이 시원찮다며 반대했다”면서 “결국 헤어졌고, 방황하던 남자는 술을 많이 마시고 계약직 여직원과 ‘원나잇’을 했는데 여직원이 임신해서 바로 식을 올렸다. 남자 부모님이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후문이 들렸다”고 주변 에피소드를 전했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부모가 교제를 반대할 때는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반대한다고 같이 강경한 태도로 나갈 때는 예비 배우자와 부모님의 관계가 틀어져 결혼을 한 후에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무작정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기보다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예비 배우자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부모님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