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워 죽였다”…살벌한 연인들
외도를 의심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장롱 속에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 강 아무개 씨(사진 가운데). 왼쪽은 시화호 갈대밭 암매장 사건 현장.
“범죄자들은 일단 의심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처단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건국대 이웅혁 교수(범죄심리학)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송파 장롱 알몸 시신’ 사건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그가 주목한 키워드는 ‘외도’였다. 즉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타인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연인이 악마로 돌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 이 교수는 “선물도 많이 사주고 돈도 빌려주며 다 도와줬는데 다른 남자랑 만난다고 생각하면, 열 받을 수 있다. 범죄자 자신도 어느 정도 관계에 있어 정당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송파 장롱 알몸 시신 사건의 용의자 강 아무개 씨(46)는 여자친구 홍 아무개 씨(여·46)의 외도를 의심했다. 6일 강 씨는 원목 절굿공이와 플라스틱 끈을 미리 준비해 홍 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갔다. 홍 씨가 들어오자 강 씨는 절굿공이로 그녀를 내리쳐 살해, 플라스틱 끈으로 두 손을 묶어 시신을 장롱 속에 유기했다. 11일 경찰은 강 씨를 구속했다.
강 씨와 같은 이들 대부분은 연애 초기부터 위험인자를 지닌 ‘시한폭탄’이다. 이웅혁 교수는 “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은 보통사람에 비해 폭력성이 더 강하다”며 “같은 자극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해소되고 제어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는 폭력 전과가 있었으며 의처증 증세 때문에 두 번의 이혼 전력도 있었다.
시한폭탄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지난 10일 밤 장 아무개 씨(31)는 강남구 논현동의 한 주택에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장 씨 역시 평소 여자친구 김 아무개 씨(28)의 외도를 의심하며 자주 때렸다. 그 날 자리엔 김 씨도 동석했다. 이 술자리에서 “김 씨가 다른 남자를 만나 야한 행위를 한다”는 음담패설이 오가자 장 씨는 격분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떠난 뒤 장 씨는 결국 손바닥으로 김 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목을 조르고 손과 발을 빨랫줄로 묶고 의자에 결박해 2시간 동안 감금하고 옷을 전부 가위로 찢었다. 김 씨는 장 씨가 잠든 사이 가까스로 탈출했다.
여기서 장 씨가 여자친구의 옷을 벗긴 것은 ‘망신주기’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의 집,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옷을 벗기거나 성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연인에 대해 모욕감을 준다. 14일 홍 아무개 씨(61) 역시 석촌동 자신의 집에서 여자친구 김 아무개 씨(59)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주먹을 휘두르다가 칼로 김 씨의 오른쪽 팔을 찔렀다. 홍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자친구의 외도가 의심됐다”고 진술했다.
한국성폭력삼담소 관계자는 “외도가 전적인 이유가 될 수 없지만 연인관계, 부부관계 등 친밀한 관계가 종결된 것에 대한 분노 표출, 즉 관계적 배신이 이런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전했다. 이웅혁 교수는 “옷을 벗겨버리면 더 모멸감이 생기고 수치심이 일어난다. 완전히 모멸감을 주는 거다. 물론 혈흔이 낭자한 시신을 숨기거나 시신에 대해 모멸감을 줘서 강력한 응징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망신주기 식 응징은 또 다른 형태로 진화 중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여자친구의 시신을 은밀히 암매장한 연인도 있었다. 지난 4일 시신이 발견된 ‘시화호 갈대밭 암매장’ 사건의 김 아무개 씨(35)가 그 장본인. 김 씨와 이 아무개 씨(여·31)는 3년간 교제한 사이였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이 씨의 원룸에서 1년 넘게 동거를 했다고 한다. 이 씨는 동거하고 싶지 않았지만 협박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잘 숨겼는데 어떻게 찾았어요? 나름대로 꽁꽁 묻어놨는데….”
10일 화성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용의자가 조사 받았을 때 이렇게 말해 기가 찼다”며 “아마 조금만 늦었으면 시신 손이 물러져서 지문을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밝혔다. 8월 1일 이 씨는 남자친구 김 씨와 대화 도중 “내가 다 벌어 먹여 살리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 씨는 직업도 없었고 생활비도 이 씨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격분, 이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말았다.
그는 나흘이 지난 뒤 시신의 옷을 전부 벗기고 김장용 비닐로 네 겹으로 둘러싼 뒤 사방이 갈대로 둘러싸인 시화호 갈대밭에서 지름 30㎝의 구덩이를 파고 여자친구의 시신을 파묻었다가 체포됐다.
연인 사이 강력 범죄가 최근 급증한 배경에 대해 이웅혁 교수는 “분노사회다. 개인 성향도 상당 부분 있지만 사회 수준도 문제”라며 “고용은 불안하고 적정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지고 짜증나는 일만 생긴다. 조금만 자극이 생겨도 확 저질러 버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가해자가 폭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사적 공간에서 범죄가 이뤄진다는 게 문제”라며 “무조건 빠져나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굉장히 많고 위험하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yo.co.kr
사랑 끝난 뒤…이런 인질극도 새 남친 집에 가 “네 여친 데려와” 지난 2일 새벽 5시 20분 경기도 화성의 한 단독주택에서 장 아무개 씨(31)가 “전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라”며 일가족을 협박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주택은 장 씨의 전 여자친구 A 씨(25)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그녀의 현 남자친구 B 씨(25)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주택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헤어진 여자친구의 새 남자친구의 집을 느닷없이 찾아가 인질극을 벌인 것. 당시 B 씨는 집에 없었다. A 씨는 “전 남자친구가 지금 B 씨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현관에서 장 씨와 대치하며 그를 설득하는 한편, 2층으로 몰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인질 3명을 구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인질 중 2명은 방 안에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있어 구조가 수월했다고 한다. 경찰의 끈질긴 설득에도 장 씨는 흉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약 1시간 뒤 1층과 2층으로 이어진 현관문 앞에서 장 씨를 테이저건으로 쏘아 체포했다. 경찰은 “이미 인질을 다 구해 부담이 없어 칼을 뺏기 위해 얼른 쐈다”며 “장 씨를 이미 검찰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한 쪽이 취약한 파트너일 경우 그 가족에 대한 위협도 불사한다. 가장 편하게 협박하는 내용들이 가족에 대한 협박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