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시 벗기고 녹색 자연 입혀라
▲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린 신개념 루미나리에 ‘Light Up Bristol’(위).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다리 모양의 전시장은 스페인 사라고사에 있다. | ||
“서울을 문화 도시로 만들어 우리의 문화를 (외국인 관광객에게) 비싼 값에 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시를 디자인하라’라는 동대문 재개발을 주제로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만의 전략은 아니다. 중동 국가들은 말 그대로 도시를 팔기 시작했다.
펄 카타르는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건설 중인 인공 섬 도시다. 세계적 휴양지인 지중해 리비에라 해안을 본떠 만들어지며, 초호화 빌라 최고급 호텔 쇼핑센터 보트선착장과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선다. 자칭 전 세계인의 유토피아라는 펄 카타르는 휴양 도시인 두바이의 팜 아일랜드와 달리 거주형 도시다. 여의도의 절반만 한 그곳에 살게 된 외국인들은 99년간 무비자, 무세제 혜택을 받으며 후손에게 재산으로 물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2011년 완공할 계획이지만 벌써 95%가 분양되었다고 한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에서는 ‘행복 섬’ 건설이 한창이다. 현재 무인도인 사디야트(행복이란 뜻)에 아부다비 공연예술센터를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 분관,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등 각종 문화예술 시설이 2013년까지 건립될 예정이다. 오일 머니를 쥐고 있는 아랍의 부호들답게 엄청난 규모다.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두바이가 아니라 스페인의 빌바오가 아닐까.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를 관광 도시로 탈바꿈시킨 ‘전설’은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1900억 원을 투자한 이 건축물 하나가 아무것도 아니던 빌바오를 유명하게 했고,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후 각 도시는 제2의 빌바오가 되려는 야심을 펼치고 있다.
▲ 노르웨이 오슬로의 국립오페라하우스(왼쪽).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린 신개념 루미나리에 ‘Light Up Bristol’. | ||
아시아도 난리다. 두바이와도, 유럽과도 다른 아이덴티티를 담기 위해 싱가포르는 열대 과일 두리안을 닮은 복합문화센터 에스플라네이드, 베이징은 올림픽을 맞이해 대규모의 국립극장을 새로 지었다.
최근 그린 열풍에 맞춘 환경 도시 콘셉트도 인기다. 스페인의 사라고사에서는 지난 6월부터 3개월간 환경 엑스포가 열린다. ‘자연 친화적 도시’를 지향하는 사라고사는 물과 환경을 콘셉트로 한 140여 개의 전시장을 선보였으며 강물로 만든 유럽 최대의 수족관, 빗물과 태양열을 재사용하는 대체 에너지 건물 등 실험적이고 새로운 건축물이 등장했다. 가장 많은 관람객이 다녀간 건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다리 모양의 전시장으로,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이 전시장은 실제로 보행자들을 위한 다리로 쓰인다.
▲ 카타르 수도 도하에 건설 중인 인공 섬 도시 펄 카타르. | ||
존 레넌 공항(비틀스의 고향 리버풀다운 국제 공항의 이름이다)의 리뉴얼 프로젝트는 서울시 관계자들이 좀 봐줬으면 하는 좋은 예다. 300m가 넘는 양면이 유리로 된 출구 통로를 따라 리버풀을 포함한 북서북 지역의 문화유산을 상징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이어져 있고, 기둥, 출발 라운지, 수화물 찾는 곳, 컨베이어 바닥, 터미널 버스에 모두 현대적 그래픽이 입혀졌다.
그런가 하면, 2007년 12월에 열린 ‘브리스톨의 불을 밝혀라(Light Up Bristol)’는 영국 브리스톨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주도한 신개념의 루미나리에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프로젝터를 동원해 5일 동안 도시 건물을 스크린 삼아 애니메이션과 모션 그래픽을 빔으로 쏘아 올렸다.
디자인과 별 상관없는 행사라도 대단한 솜씨를 보여주는 예는 수없이 많다. 마이클 비에루트가 디자인한 뉴욕타임스 빌딩의 새 간판, 드래곤에어의 중국-홍콩 취항 20주년을 기념해 타냐 윌리스가 비행기 본체에 그린 그래픽 등을 보자. 새삼스레 디자인을 주제로 삼은 만큼 서울이 이만 못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컨트리뷰팅 에디터=박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