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번지’ 탈환 친박 낙하산 ‘빼꼼’
박진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왼쪽 작은 사진 위,아래)이 정계 복귀 발판으로 종로를 선택하고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 지역에 친박 낙하산설이 돌고 있어 김무성 대표의 스탠스가 주목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2012년 대선과 같은 해 치러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전북에서만 4선을 내리 한 정세균 의원을 ‘히든카드’로 출격시킨 것이다. 정 의원은 ‘선거의 여왕’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 지원 사격을 받은 친박계 중진 홍사덕 새누리당 전 의원을 물리치고 종로에 당당히 입성했다. 친박이 종로에서의 패배를 더욱 뼈아파하는 까닭이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으며 과반 확보에 성공했지만 종로를 내준 탓에 개운치 않은 승리라는 평을 들어야만 했다.
20대 총선에서 정 의원은 일찌감치 출마 의지를 밝히고 표 다지기에 들어간 상태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에서 누가 나오더라도 정 의원을 꺾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임기 후반부에 실시되는 총선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더욱 불리할 수 있다. 이는 새누리당이 정 의원 못지않은 중량감 있는 인사를 내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면서 “종로는 김문수와 김부겸이 맞붙는 대구 수성갑과 더불어 가장 치열한 격전지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종로에서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재탈환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은 “상대(정세균 의원)가 너무 강하다. 그러나 역대 선거를 보면 종로는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후보만 잘 고르면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새누리당에선 박진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종로 출마 뜻을 굳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권의 내로라하는 원외 정치인들이 정계 복귀의 발판으로 종로를 선택하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종로에서만 내리 3선을 한 박 전 의원은 ‘종로 토박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며 잠시 여의도를 떠나 있지만 종로에서의 인지도만큼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들린다. 2011년 ‘무상급식 투표’ 이후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오 전 시장은 일찌감치 종로 도전을 선언하고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주자로도 분류되고 있는 오 전 시장이기에 20대 총선은 그의 정치 인생을 좌우할 전망이다.
박 전 의원과 오 전 시장 맞대결은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예선 통과가 본선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새누리당 주변에선 지도부가 ‘교통정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 비박계 중진 의원은 “오 전 시장과 박 전 의원 둘 다 총선에서 필요한 ‘스타급’ 후보들이다. 한 명을 다른 접전 지역으로 돌리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후보 간에도 이러한 논의가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 전 시장은 박 전 의원에게 강남 출마를 권한 반면, 박 전 의원은 오 전 시장에게 노원구병의 안철수 의원과 맞붙을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둘 다 종로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친 셈이다. 오 전 시장과 가까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 전 의원과 오 전 시장 사이가 나쁘지 않다. 둘 사이에 ‘딜’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종로구 친박 후보군으로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안대희 전 대법관(왼쪽)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또 다른 변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오 전 시장과 박 전 의원 ‘2파전’ 양상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는 여권 핵심부가 종로에 ‘낙하산’ 후보를 투척할 것이란 소문과 맞닿아 있다. 앞서의 비박계 중진 의원은 “여권 내에선 청와대가 당 지도부에 내년 총선의 일정 지분을 요구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미 대구·경북(TK) 지역은 청와대발 ‘물갈이론’으로 흉흉하지 않느냐”면서 “종로 역시 청와대가 생각하고 있는 전략 공천 지역 중 한 곳에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본다. 이는 지금 유력한 두 후보인 박 전 의원과 오 전 시장이 모두 비박계에 가깝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 종로 출마를 타진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기류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비박계 견제 차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안 전 대법관과 함께 조윤선 전 정무수석 역시 친박 후보군으로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조 전 수석의 경우 19대 총선 당시 종로 출마를 준비했다가 홍사덕 전 의원 전략공천으로 접은 바 있다. 이번엔 조 전 수석 차례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정세균 의원에게 패한 홍 전 의원 역시 ‘복수’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계의 한 전략가는 “아직 누가 나설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오 전 시장이나 박 전 의원 모두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기 때문에 전략공천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종로에 친박 성향 후보를 내야한다는 데엔 별다른 이견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가 종로에 친박 후보를 출마시키기 위해선 전제가 있다. 바로 공천 룰을 놓고 비박계와 벌이고 있는 싸움에서 이겨야한다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전략공천을 배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추진 중이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실시될 경우 친박계의 총선 낙하산 투척은 불가능하게 된다. 박 대통령 친위 부대를 꾸리려는 친박계 전략도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 정치 전문가들이 친박 비박 간 힘 겨루기가 내년 총선에서 종로의 판세를 좌우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결국은 공천 룰을 둘러싼 디테일 싸움이다. 이는 총선을 넘어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계파 입장에선 양보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종로 역시 유력 후보들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결국은 공천 룰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