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횡포? 을의 배짱? 팽팽한 평행선
가수 싸이가 한남동 건물 세입자와 건물을 비워주는 문제로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세입자의 휴무 안내 쪽지.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싸이와 세입자 간 분쟁이 다시 이목을 끈 것은 싸이 측이 지난 21일 재차 강제집행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입자 측과 연대하는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는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건물주 싸이가 한남동 건물에 강제집행을 진행했다”고 알리면서 “이는 법원에서 지난 금요일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절차적인 완료(강제집행정지 신청은 법원이 정한 공탁금을 납부해야 효력이 발생한다)가 되기 직전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적극 반발했다.
앞서 싸이는 법원 조정 결정과 별도로 카페 세입자들을 상대로 건물인도청구 및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서울서부지방법원은 8월 13일“피고(세입자)는 원고(싸이와 그의 부인)에게 건물을 인도하고, 이들에게 65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세입자들이 무리하게 버티는 것으로 비친다. 소송 과정에서 세입자 측이 10억 원을 요구했다는 폭로까지 나오면서 ‘알박기’라는 의혹도 더해졌다.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사건을 세입자들의 ‘시선’으로 옮겨보자. 싸이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세 번째 건물주다. 2010년 해당 건물에 입주한 카페는 첫 번째 건물주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맺기로 했다. 임차인이 원하면 매년 연장 계약이 가능하다는 특약 조항에도 합의했다. 건물주가 일본인이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건물주가 바뀌었고, 새 건물주는 재건축을 이유로 카페를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명도소송이 벌어졌다.
최근 싸이 측의 강제집행으로 경찰과 세입자가 충돌하기도 했다. 사진은 맘상모 페이스북 캡처.
세입자 측은 싸이와의 소송이 ‘원고 일부 승소’였다는 점도 강조한다. 카페 운영자 3명 가운데 최 아무개 씨 등 2명에 대한 명도소송은 기각했으며 1명에 대한 명도 권리만을 인정한 판결이라는 것이다. 현재 카페 측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와 함께 카페 측은 싸이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가 오는 11월 말까지 예정된 전시 계획을 지켜 주기로 했다고 주장한다. 양 대표는 지난 4월 첫 번째 강제집행 당시 ‘연예인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직접 중재에 나섰다. 카페 측은 일정 금액의 보상금을 받고 건물을 비우는 것에 합의했다. 카페 측이 2년여 넘게 공방을 지속한 것은 인테리어 비용을 비롯한 권리금을 건질 수 없게 된 상황과도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합의는 깨졌다. 세입자 측은 싸이 측 변호사가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수정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카페 측이 싸이 측에 제기한 폭행에 관한 형사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카페 및 카페와 관련된 디자이너 등에게 제기한 민·형사 소송 모두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알려왔다는 것이다. 세입자 측은 강제집행 당시의 폭행은 ‘별건’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강제집행에 관해 싸이의 법률대리인은 한 매체에 “강제집행은 국가 기관의 집행이고 정당한 법원의 판결에 따른 움직임”이라며 “(이번 강제집행은) 3명의 임차인 가운데 1명에 관한 집행이며, 2명은 전 소유자와 지난 2013년 12월까지로 합의를 마쳤음에도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후 강제집행에 나설 것도 예고했다. 이번 강제집행을 두고 또 다른 언론은 “표면적으로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는 양상, 또 세입자는 나가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세입자를 동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십분 활용했었던 거 같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맘상모 측은 “싸이 건물에서 일어난 일은 단지 건물주가 유명인일 뿐, 대한민국의 모든 임차상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 맘상모 한 관계자는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임차상인의 권리금을 비롯한 영업 가치는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비롯한 많은 임차상인들은 법 개정 이전의 문제로 보호받지 못하고, 또한 여러 가지 예외 조항들로 인해 배제되고 있다. 싸이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겪고 있는 피해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세입자 입장서 본 사태 “법 바뀌어도 허점 많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사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로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임차인들이 상권을 활성화시키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 기존 임차인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홍대 앞 문화예술인들이 급증하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는 현상을 비롯해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 서·북촌, 경리단길 등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태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하 아무개 씨(여·31)는 “적게 잡아도 500만이 넘는 자영업자들이 열심히 장사해 보겠다며 전 재산을 들여 카페나 음식점을 열지만 나쁜 경기와 건물주의 횡포에 5년도 버티지 못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파산선고를 한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상인을 ‘알박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쉬운 일”이라면서 “싸이 측은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으니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법과 정치가 누구의 권리를 우선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이번에 법이 바뀌었지만 재건축 지역은 보호를 받지 못하는 등 허점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