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불모지에 한 알 밀알이 되다
김성룡 9단이 세종시 양지초등학교에서 바둑 수업을 하고 있다(위, 아래 왼쪽). 바둑 공부 중인 세종시 국제고 바둑 특별활동부.
세종특별자치시는 대한민국 한복판이다. 2015년 8월말 현재 인구 19만 5000명, 면적 465㎢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작다. 빠른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교통도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바둑 활동하던 건 어떻게 하려고?”
“사실은 바둑 활동을 하려고 가는 거예요. 아직 프로기사도 없고, 불모지예요. 불모지라는 건 인프라가 없다는 것이지만, 대신 무주공산이라는 뜻이니까, 새로운 각오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미래를 개척한다?”
“그건 좀 거창하구요…^^ 아닌 게 아니라 서울에서는 제 활동 영역이 갈수록 좁아질 겁니다. 기전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TV 해설도 후배들이 빨리 올라오고 있어요. 방송사도 기왕이면 젊고 실력 있는 프로기사를 쓰려고 하지 않겠어요?”
7월 중순에 김 9단을 바둑TV에서 만났다. 녹화를 끝내고 관계자들과 뒤풀이하는 시간이었다. 밤 9시쯤 되자 김 9단이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나… 여기서 자고 가야 하나, 지금 가야 하나…”
“아니, 초저녁인데, 뭘. 집이 어딘데? 왕십리 근처 아닌가?”
“세종시 내려간 지가 언젠데요…ㅎㅎ”
김 9단은 5월에 서울을 떠나 세종시로 내려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불과 넉 달이 지났는데, 세종시로부터 연달아 바둑 소식이 날아오고 있다. 초등학교, 고등학교에 바둑부가 생기고, 엊그제는 세종시 바둑협회가 창립되었다. 이게 다 김 9단의 4개월 작품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김 9단다운 속전속결의 발 빠른 행마가 아닐 수 없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 바둑이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치러진 올해, 세종시는 한 명의 선수도 내보내지 못했다. 이 탓에 5월말 제주에서 열린 제44회 소년체전은 17개 시·도가 아닌 16개 시·도가 경쟁했다. 그러나 당장 내년부터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우선 세종시 양지초등학교에 바둑부가 생겼다. 김 9단이 8월31일부터 33명을 앉혀 놓고 수업을 시작했다. 매주 월~수요일, 오후 1시~4시 20분 바둑부 훈련을 한다. 대부분이 이제 걸음마 단계이니 단수부터 배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까지 바둑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있으면서 정상급 프로기사로 생활했던 김 9단이 졸지에 바둑돌 잡는 법부터 가르치고 있다. 김 9단은 “초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웃으면서 “당연히 실력들은 아직 약하다. 가장 잘 두는 아이가 프로기사와 9점 치수다. 그러나 관심과 지지만 있다면 실력 향상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특목고는 전국의 영재·수재들이 모인다는 곳. 여기도 바둑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세종시의 국제고등학교와 과학예술영재학교에서 특별활동의 하나로 ‘바둑’이 신설됐다. 김 9단은 두 학교에 모두 출강하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밤 10시, 11시까지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과연 바둑에 한눈 팔 시간이 있을까. 김 9단은 “그래서 오히려 일반 고등학교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귀가하지 않아도 되므로 유동적으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역발상이 일을 만들어내는 것.
실제로 국제고는 주말 오후1시께 바둑 수업을 하며, 과학예술영재고는 점심시간을 활용한다. 영재고의 점심시간은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오후 12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시간이 넉넉하다. 점심을 좀 빨리 먹고, 남는 시간에, 평소 배우고 싶은 게 있었다면 이 시간을 이용해 배우라는 학교 측의 배려인 것.
국제고 김남훈 교장은 “바둑은 논리적 사고를 키워주는 게임이어서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과학예술영재고 박두희 교장은 바둑의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과학이나 예술이나 관건은 독창성이다. 바둑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창의력의 날개를 달게 됐다”고 바둑을 반겼다.
“학교에 바둑부를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여러 학교를 돌아다녔지만, 명함이나 놓고 가라면서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는 데도 많았고, 교장선생님들은 프로 9단이 뭐하는 사람이냐며 만나주지를 않더군요.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열심히 다니다보니 이렇게 바둑을 알아주는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네요. 수업해 본 소감요? 이렇게 집중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처음 봅니다. 내 설명을 그야말로 섬광처럼 이해하는 겁니다. 그 왜 프로기사가 될 기재들에게서 나타나는 그런 것 있잖습니까.” 김 9단의 얘기다. 김 9단과 세종시의 미래가 밝다.
고등학교 바둑특별활동에 필요한 용구와 강사료는 한국기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한다. 한국기원은 세종국제고등학교,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와 학교바둑 보급에 관한 MOU를 맺고 지속적 협력을 약속했다.
9월17일 세종바둑협회 창립총회가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있는 세종 과학예술영재학교에서 열렸다. 창립총회에는 이춘희 세종시장을 비롯해 강영진 대한바둑협회 전무와 세종바둑협회 임원 등 50여 명이 참석해 세종바둑협회 창립을 축하했다. 세종바둑협회 회장은 황은연 포스코 경영인프라 본부장이, 협회 전무이사는 김성룡 9단이 맡았다. 세종시는 내년부터 전국체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한-일 프로기사들 필드에서 격돌 한일 프로 기사들이 골프로 친선을 다졌다. 18일 친선 골프대회 출전 선수 ▲한국팀 : 조훈현(주장) 서봉수, 권갑용, 양재호, 유창혁, 김영환, 김영삼, 김승준, 김효정 ▲일본팀 : 다케미야 마사키(주장), 조선진, 류시훈, 고마쓰 히데키, 고마쓰 히데코, 하네 나오키, 다케미아 요코, 이마무라 도시야, 오가키 유사쿠 한 조에 각국 2명씩 총 4팀이 라운딩해 각국에서 점수가 높은 사람을 비교하는 방식이었는데, 접전 끝에 일본 팀이 3 대 2로 역전 우승했다. 골프대회에 앞서 17일에는 한국을 찾은 중국 우한(武漢)의 바둑팬들과 프로기사간의 프로-암 바둑대회가 펼쳐졌다. 지도대국을 받은 우한의 손님들은 상대 대국자의 사인이 담긴 바둑판을 선물 받았다. 루안쉬궈 씨(50·중국 우한시)는 “수년간 꿈에 그리던 우상 조훈현 사범, 다케미야 사범을 비롯해 한-일 유명 프로기사들을 직접 뵙게 된 것은 평생의 영광이었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