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의 슈퍼갑질 증거? 알고보니 픽션
가수 겸 배우로 1990년대 말 스타덤에 오른 제니퍼 로페즈(왼쪽=연합뉴스)는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엔젤 아이즈> 개봉을 2주 앞두고 영화사 측에 ‘갑질’ 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루머가 돌아 고통을 겪기도 했다. 작은 사진은 <엔젤 아이즈>의 한 장면.
1990년대 초부터 가수와 배우로 활동했던 제니퍼 로페즈는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스타덤에 오른다. 2001년에 나온 루이스 만도키 감독의 <엔젤 아이즈>는 로페즈가 경찰로 나오는 범죄 미스터리 영화. 로페즈가 주연을 맡았으며 당시 <씬 레드 라인>(1998)으로 주목받던 제임스 카비젤이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워너브러더스가 5300만 달러라는 만만치 않은 제작비를 투자했고, 로페즈는 900만 달러의 적지 않은 개런티를 받았는데, 블록버스터는 아니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장르 영화였다. 안타까운 건 박스오피스 성적. 2400만 달러라는 초라한 성적에 머물렀고, 로페즈가 잠시 주춤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은 개봉 직전에 일어났다. 워너 브러더스의 홍보 총책임자인 마사 허드슨과 제니퍼 로페즈의 홍보 담당자인 루시 레수에르 사이에 오간 이메일이 유출되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메일이 오간 건 2001년 5월 4일 오후 2시 8분~5시 42분이었고 총 7개의 메일이 있었다. 개봉일(5월 18일) 2주 전의 상황이었다. 거의 설전을 방불케 하는 두 사람 사이의 ‘메일 전쟁’은, 로페즈 쪽에서 워너 브러더스 스튜디오 홍보실로 보낸 팩스 한 장에서 시작된다. 팩스엔 간단하지만 무시무시한 요구가 담겨 있었다. <엔젤 아이즈>에 관련된 모든 공식적 언급과 포스터나 예고편 등의 홍보물에서 ‘제니퍼 로페즈’가 아니라 그녀의 애칭인 ‘제이로’(J.Lo)로 표기해달라는 것이었다. 개봉을 앞두고 모든 준비를 마친 워너 브러더스로선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이에 스튜디오 홍보 담당자인 마사 허드슨은 로페즈 측의 루시 레수에르에게 먼저 메일을 보낸다.
2001년 5월 4일 금요일 오후 2시 8분에 “<엔젤 아이즈> 변경 건에 대한 답장”(RE: “Angel Eyes” tweaks)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메일 내용은 간단했다. “보내신 팩스는 잘 받았습니다. 앨런(워너 홍보 부서 직원)이 말하던데, 제니퍼가 영화 홍보를 위해 뭔가 하려 한다고 하더군요.” 14분 후인 2시 22분에 루시가 답장을 했다. “물론, 그녀는 ‘뭔가’를 하고 싶어 합니다. 팩스를 받으셨으니까 그 내용은 알고 계시겠죠?” 8분 후인 2시 30분에 마사가 루시에게 꽤 긴 메일을 보냈다. “루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요(전화를 걸고 싶은데, 제가 너무 흥분 상태네요). 모든 홍보물은 물론 영화 자막까지, 제니퍼 로페즈라는 빌어먹을 이름 대신 ‘제이로’로 바꿔 달라는 건가요? 여기에 소요되는 수백만 달러의 경비를 제니퍼 로페즈가 직접 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절대 불가합니다. 우린 지금 2주 후에 개봉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요!! 내일부터 정킷(전 세계 기자들을 초청하는 프로모션)이 시작되고요!! 분명히 ‘제니퍼 로페즈’라는 이름을 계약서에 적었고, <엔젤 아이즈>에 관련된 모든 것엔 그 이름이 나갈 겁니다.”
고민에 빠진 걸까? 루시는 52분 후인 3시 22분에 마사에게 무시무시한 메일을 보낸다. “좋습니다. 당신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죠, 마사. 방금 당신이 보낸 내용을 제이로에게 반복해서 말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 제이로가 맨손으로 당신의 배를 갈라 장기를 모두 들어내는 걸 보고 싶진 않군요. 난 당신네들이 제이로에 대해 이토록 존경심이 없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여성 셀러브리티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고, 단순한 가수가 아니며, 단순한 유명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거대한 움직임(movement)입니다(내가 왜 이런 얘기까지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확고하게 결정했습니다. 지금 그녀에겐 ‘제니퍼 로페즈’보다는 ‘제이로’가 더 어울린다고요.” 하드고어 호러에 가까운 메일 내용에 마사는 바로 받아쳤다. 3시 35분 메일이었다. “인터넷에 어떤 사람들은 제니퍼 로페즈에 대해 ‘제이로의 마술적인 엉덩이’(J.Lo’s Magical Butt)라는 표현을 쓰던데, 그 ‘거대한 움직임’이라는 게 엉덩이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그러면서 추신을 달았다. “PS: 제 장기를 들어내 보고 싶어서라도 그놈의 ‘제이로’를 만나고 싶군요. 의사 말로는 제 간이 자꾸 커지고 있다고 해서요. 확인해 보려고요.”
회의라도 한 모양이다. 1시간 30분 후인 5시 5분에 루시는 마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미스 허드슨 귀하. 제이로가 몸이 아파 내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 호텔에서 있을 정킷에 참석하지 못함을 알려드립니다. 이 일에 대해 제이로는 큰 유감을 표했습니다.” 스튜디오도 잠깐 회의를 한 것 같다. 5시 42분에 마사는 답장을 보낸다. “친애하는 루시에게. 제니퍼 로페즈가 아프다니 유감이군요. 그래도 우린 내일 일정에 드는 예산을 날리진 않을 겁니다. <엔젤 아이즈> 다음에 개봉될 <스워드피쉬> 정킷으로 바꾸었고, 존 트래볼타가 오기로 했거든요.”
꽤 그럴 듯하지만, 이것은 실제 오간 메일이 아니라 어느 네티즌이 위조해 만들어낸 것이다. 로페즈의 에이전시인 ‘로저스&코완’의 이메일 계정은 ‘rogersandcowan.com’이었지만 ‘rogerscowan.com’으로 되어 있었고, 로페즈의 홍보 담당자라는 루시 레수에르는 왕년의 명배우 조앤 크로포드의 본명이었다. 워너 브러더스엔 martha.hudson@warnerbros.com라는 이메일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만 체크하면 거짓인 것이 드러나는 위조였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건 그 리얼리티가 대단했기 때문. 쇼 비즈니스 세계의 속내를 풍자한 내용에 많은 사람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로페즈는 또 하나의 도시 전설에 휩싸였는데, 바로 신체 보험에 대한 것. 처음엔 전신에 100만 달러 보험을 들었다는 얘기가 돌더니, 가슴 한쪽당 1억 달러이며, 다리와 엉덩이에 3억 달러라는 얘기마저 돌았고, 나중에 그 총액은 1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물론 이 모든 건 거짓. 단, 최근에 킴 카다시안이 엉덩이에 2100만 달러짜리 보험을 든 건 사실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