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9푼 9월엔 4할 타자 “팀도 나도 전투력 샘솟아”
텍사스의 추신수가 지난 4일 LA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7회 3루타를 날리고 있다. 추신수는 추석연휴를 앞둔 21일까지 9월 타율이 0.441로 50타석 기준 메이저리그 전체 타율과 출루율에서 모두 1위에 올라있다. AP/연합뉴스
이유가 궁금했다. 타격에는 분명 사이클이라는 것이 있는 법.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추신수의 타격 사이클은 데뷔 이후 줄곧 9월만 되면 정점을 찍고 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막힌 우연이다. 지난 18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인 글로브 라이프 파크 클럽하우스에서 추신수를 만났다.
질문에 돌아온 첫 마디는 “왜 그럴까”였다. 본인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시즌이 막바지로 갈수록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처음보다 마지막을 기억하지 않나. 그렇다고 시즌 초반에 집중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시즌이 끝자락으로 향할수록 더 집중을 하게 되는 것 같다”며 애써(?) 이유를 설명해냈다.
추신수는 이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조금은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9월에는 항상 잘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한다. 4월에 부진하더라도 원래 슬로 스타터니까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9월에는 좋은 기억이 많아서인지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시즌이 갈수록 공이 더 잘 보이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추신수에게 9월은 특별하다. 하지만 올해 9월이 보다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가을 야구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데뷔해 정규시즌 통산 1112경기를 소화한 추신수는 정작 포스트시즌 경험은 2013년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단판승부 1경기에 불과하다. 자신을 메이저리그로 인도해 준 클리블랜드는 언제나 약체 팀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을 안고 지난해 텍사스로 건너왔지만 본인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줄 부상 속에 팀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언제나 본인의 기록보다 팀 성적을 중요시해 온 추신수이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텍사스는 9월 21일까지 시즌 80승 69패의 성적으로 2위 휴스턴에 1.5경기 앞선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단독 선두에 올라 있다. 지난 15~18일 열린 휴스턴과의 홈 4연전을 싹쓸이하는 등 후반기 들어 아메리칸리그 2위에 해당하는 38승 23패, 승률 0.623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텍사스는 8월의 첫 날 샌프란시스코에 패하며 지구 선두에 8경기까지 뒤진 바 있는데, 8월 이후 8경기의 격차를 뒤집고 지구 선두에 오른 것은 최근 40년간 텍사스가 5번째에 불과하다. 텍사스의 무서운 기세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추신수도 최근 본인의 활약상 못지않게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 성적에 더욱 고무돼 있었다. “요즘 야구장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볍겠다”고 운을 띄우자, “아무래도 그렇다. 야구도 마음먹은 대로 되고 있고, 팀 성적도 좋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드니 더욱 좋다”라며 “팀 성적이 좋으면 내 성적이 좋지 않아도 에너지가 생긴다. 포스트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즐겁다”고 웃어 보였다.
전반기 42승 46패에 그치며 지구 3위에 머물렀던 텍사스는 후반기 대반등을 통해 지구 선두까지 뛰어 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엔 단연 추신수가 있다. 그는 “물론 팀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겠지만, 내가 혼자 모든 걸 책임지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겸손해했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후반기 반등의 계기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추신수는 “사실 지난해부터 구단에 피해를 끼치는 것 같은 생각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해결해야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해야 하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한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했다”고 털어 놓았다. 7년간 1억 3000만 달러의 대박 계약은 그에게 과도한 책임감이라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그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들을 떨쳐내니까 좋아지기 시작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나흘 동안 쉬면서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워지자고 생각했다. 마인드 자체를 바꿨다”면서 “이런 저런 생각 안하고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기록에도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내려놓으니까 조금씩 보이더라.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머리도 가벼워지고 내가 할 것만 하려고 하니까 좋아지기 시작했다”며 반등의 계기가 심리적인 요인에 있었음을 밝혔다.
대화는 자연스레 포스트시즌으로 이어졌다. 추신수는 “포스트시즌은 겨울 동안 몸을 만들고, 스프링캠프를 하고, 6개월간의 정규시즌 동안 노력한 부분에 대해 평가를 받는 곳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팀은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10팀에 지나지 않는다. 추신수의 시선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개인 성적이 좋고,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하게 된다면 정말로 내 야구 인생을 평가 받는다는 기분이 들 것 같다”며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그이지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라는 최고의 열매 앞에선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우승 반지는 내가 원해서, 내가 야구를 잘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잘해도 팀을 잘 만나야 한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 보자면 그저 그런 선수들이 팀을 잘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우승 반지를 두세 개씩 갖고 있는 걸 보면 정말로 질투가 난다. 우승 반지는 질투가 난다. 최고가 되고 싶으니까.”
질투. 추신수는 ‘질투’라는 말을 연달아 내뱉었다. 스스로도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다는 걸 인정한 추신수한테서 나온 말이었기에 그의 단어 선택은 더욱 놀라왔다. 그만큼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이리라. 추신수는 “싸울 때 나온다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있지 않나. 요즘은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것 같다. 전투력이 생긴다”며 가을 야구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21일까지 추신수의 시즌 성적은 타율 0.272 18홈런 69타점이다. 그의 전매특허인 출루율은 어느덧 0.371까지 올라 아메리칸리그 8위에 랭크돼 있으며, 0.821의 OPS 역시 통산 0.835와 큰 차이가 없다. 부상 없이 꾸준히 경기에 나설 수만 있다면 본인이 해오던 기록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약속을 올해도 지켜나가고 있다.
지난 4월 52타수 5안타(0.096)라는, 데뷔 이후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만 해도 지금의 성적을 예상한 이는 결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반등을 일궈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9월의 질주가 그 중심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생애 첫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더 큰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추신수의 2015시즌 가을은 그에게 조금은 더 특별한 계절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 댈러스=김중겸 메이저리그 전문기자
추신수의 기묘한 성적표 2안타보다 3안타 이상이 더 쉬웠어요 타자가 한 경기에서 무안타보다 안타 하나를 기록하는 것이 더 어렵다. 1안타보다 2안타 경기가 어렵고, 3안타 경기는 그보다 더 쉽지 않다. 더 들어 볼 것도 없는 빤한 이치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거스르는 선수가 있다. 바로 추신수다. 21일(한국시간)까지 추신수는 올 시즌 136경기 중 88경기에서 안타를 때려냈다. 이중 1안타 경기가 51경기로 가장 많다. 당연한 흐름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추신수의 올 시즌 2안타 경기는 15차례다. 3안타 경기가 14차례로 뒤를 잇고 있으며, 두 차례의 4안타 경기가 있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2안타 경기가 15차례인 반면, 3안타 이상 경기가 16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올 시즌의 추신수는 2안타 경기보다 3안타 이상 경기가 많은 기묘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올 시즌 텍사스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기록 중인 프린스 필더는 2안타 경기가 43차례인 반면 3안타 이상 경기는 10차례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내고 있는 디 고든(마이애미) 역시 2안타 경기가 31차례, 3안타 이상 경기가 22차례로 2안타 경기가 더 많았다. 2안타 경기보다 3안타 이상 경기를 더 많이 펼친 추신수. 올 시즌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행보만큼이나 흥미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