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벗겨지자 헉! 그 착한 남자가 괴물일 줄이야
영화 <무뢰한>의 한 장면.
박 아무개 씨(여·28)는 3년 전 만났던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생각할 때 아직도 식은땀이 흐른다. 결별 선언에 돌변한 남자친구는 이후 몇 차례 찾아와 울며불며 빌었다. 박 씨는 “내 멱살을 잡던 모습이 생각 나 잔정마저 뚝 떨어지더라. 찾아올 때마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고 말했다. 믿었던 남자친구의 돌변은 박 씨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이쯤에서 끝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김 아무개 씨(여·27)가 당한 일은 더 심했다.
“입대한 남자친구에게서 마음이 떠났다. 연락을 잘 받지 않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휴가를 나와 집 앞에서 칼을 들고 있더라. 살기를 띤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헤어진 지 3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닮은 사람만 봐도 깜짝 놀란다.”
이별이라는 단어 앞에서 갑자기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해·자살 협박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 아무개 씨(여·34)는 “20대 때 만났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더니 나를 한강공원으로 부르더라.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나갔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물에 빠져 죽겠다고 했다. 자살 협박 때문에 그 후로 몇 개월을 더 만났다”고 회상했다. 박 아무개 씨(여·28)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별을 고한 남자친구가 자살협박을 한 것. “전화로 ‘지금 옆에 칼을 두고 있다. 네가 진짜 헤어지자고 하면 죽을 거다’고 협박했다. 20대 초반의 치기라고 하기엔 너무 위협적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최근 5년간 연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3만 6363명, 이중 사망한 사람도 290명에 이른다. 연인 간에 일어난다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신고되지 않은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인 간 일어나는 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대구지방경찰청은 이별범죄를 예방하는 ‘레이디퍼스트플랜’을 시행하는 등 경찰에서도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흔히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범죄에서 피해자를 더 괴롭히는 건 비난의 화살이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날아든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인 것을 오랜 기간 사귀며 모를 수 있느냐는 힐난이다. 한국양성평등교육원의 최인숙 교수는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중에는 폭력성이 드러나는 여러 가지 징후를 놓칠 수 있다”며 “안전이별을 위해서는 평소 연인이 갈등관계가 빚어졌을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행동하는지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평소엔 친절하다가 거부나 거절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애컨설턴트 이재목 작가 역시 “연애는 시작보다 이별이 더 중요하다. 이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분노, 배신 등의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그만큼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작가가 꼽은 ‘최악의 이별’은 상대에 대한 비방을 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해 이별 후에도 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다. 이 작가는 “동종업계에서 일하던 사람이 연인과 헤어진 후 회사로 조화를 보낸 일도 있었다. 상대방 커리어의 죽음을 바란다는 의미였다. 이외에도 업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헤어진 애인에 대한 악담을 하고 다녔다”며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안전이별을 하기 위해선 몇 가지 수칙을 지키면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먼저 상대의 폭력이 있었다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폭언, 폭행 후에 눈물을 보이며 용서를 구하면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어떤 종류의 폭력도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를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주변에 알리고 단둘이 만나는 기회를 줄이는 것.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과 함께 공개된 장소에서 만나는 것도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재목 작가 역시 “헤어질 때는 대낮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또 이별이 절대 번복되지 않음을 각인시키고, 상대가 끝까지 매너를 지켰다는 인상을 남기도록 한다”고 안전이별의 팁을 전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이별범죄 황당 사례 “날 버릴 순 없어” 몰래 마약 주사 지난 1일 인천에서 한 남성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지난 8월 헤어진 사이로, 남성은 유서에도 “여자친구에게 배신감이 든다”고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별 후 2개월여 동안 설득과 회유를 반복하던 남성은 결국 죽기로 결심하고 여자친구를 찾아가 목을 졸라 살해하고, 경찰이 출동하자 자신도 오피스텔 15층에서 몸을 던졌다. 지난 8월에는 헤어진 내연녀를 찾아가 흉기로 수차례 찌른 남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5년 동안 내연관계를 이어오던 김 아무개 씨(44)는 내연녀(48)를 찾아가 가슴, 엉덩이 등을 수차례 찌르고 달아났다. 김 씨는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끔찍한 이별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지난 9월 17일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노 아무개 씨(38)는 지난해 12월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창문을 부수고 들어간 뒤 여자친구를 흉기로 20여 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을 막으려던 여자친구의 부모에게도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노 씨는 전화, 문자 등으로 “불을 지르겠다”, “염산을 부어버리겠다”고 지속적으로 위협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