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대통령’도 버린다?
▲ 연정론을 거듭 꺼내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음 수는 ‘잔여임기 포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
결론부터 말하면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직을 걸고 적절한 시기에 잔여임기를 던지겠다는 선언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전제가 있다.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한 선거제도 개편이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은 특정 시기까지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을 여야 정치권에 요구하면서 임기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권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이때 한나라당 등 다른 야당이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그 뒤의 수순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여러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여권의 한 정보통은 “노 대통령이 임기를 다 안 채우고 사임카드를 던질 것이라는 말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노 대통령은 그 명분으로 `지역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선거법 개정’을 내걸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어떤 선거제로 개편하라는 지침은 내걸 수는 없지만 자신의 생각은 있을 것이라는 게 이 정보통의 말이다.
그럼 노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에 들어서는 이 시점에 왜 이런 강수를 감행하려고 하는 것일까. 관측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 한 몸 던져서라도 개혁과제를 수행하고야 말겠다’는 노 대통령의 진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관점에서 마지막 남은 개혁과제는 지역구도의 정치체제를 뒤흔들고 박살내서 새로운 정치구도와 정치문화를 건설하는 일이다.
노 대통령과 코드를 함께하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지역주의가 아닌 이념과 정책에 의한 정치구도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구도를 혁파하는 선거제도가 만들어지면 지금의 지역당화한 정당구조는 개혁과 보수를 양축으로 하는 정책적 이념적 정치판으로 재편된다.
이 연장에서 개혁과제를 훌륭하게 성취한다면 노 대통령은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노 대통령이 강수를 구상하는 두 번째 이유가 될지 모른다. 진정성에서 파생된 욕심이라고 할까. 권력 핵심부의 소식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 김영삼의 민주화, 김대중의 남북화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노 대통령의 청사에 기록될 업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개혁이다. 특히 지역주의 타파라는 최대의 개혁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단초는 선거구제 개편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언제나 정치구도 또는 정치판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다. 이미 행정과 경제 챙기기는 이해찬 총리에게 맡겼다. 남북관계와 통일안보 문제 등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일임했다. 노 대통령 자신은 정치로 복귀한 지 오래다. 노 대통령은 ‘큰 틀’을 짜고, ‘큰 그림’을 그리고, ‘큰 싸움’을 준비한다. 이 여권 인사는 “노 대통령은 무수한 전투와 전쟁을 거친 사람이다. 그는 전투엔 여러 번 실패했지만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그럼 임기 포기의 시기는 언제가 될까. 일단 올해는 아닐 것이다. 올해는 임기 반환점을 막 지난 데다 남북관계에서 ‘혁명적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어서 대통령직을 걸기엔 불안하다. 예컨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직을 내던져 보수정권이라도 들어서면 남북 평화구상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2007년? 이것도 아니다. 이 시기는 차기 대통령 선거전이 이미 시작돼 레임덕이 상당히 진행된 때이므로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내년, 즉 2006년이 적절한 시기다. 이 경우엔 5월 말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계산에 넣어야 한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대통령직 포기를 선언하면 자신의 사임을 선거에 이용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후에 선언을 하면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 후에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주자들이 단체장을 그만두고 당으로 복귀해 대선을 준비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를 한다거나 권력구조 개편을 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후 잔여임기를 포기하되, 그 선언은 지방선거 두 달쯤 전에 함으로써 선거법 개정 논의를 촉발시키고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부 내에서 ‘필독(서)’으로 전해지는 한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대통령이 직접 야당 대표와의 개별적, 집단적 접촉을 통해 여야 간 정책합의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소야대 국면의 재등장뿐 아니라 그것이 동반하는 지지의 위기와 개혁 헤게모니 약화는 의회전략의 재구성만으로는 정국 돌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정국운영 전략은 당 이니셔티브 아래에서의 (타당과의) 사안별 정책공조, 안정적인 정치연합(聯政)과 지지기반 확충, 당정협력체제의 완성으로서의 열린우리당 정부의 구성, 대통령의 정치복귀가 중층적으로 구사돼야 한다. 이 같은 다층적인 전략 중에서도 이를 관통하는 대통령의 정치복귀가 가장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축소된 정치영역이 확장돼야만 개혁 헤게모니 작동이 가능하다.
대통령의 정치복귀는 대통령의 의회 협력정치의 강화, 당정협력정치의 완성, 사회문제에 대면하고 타협을 주도하는 생활세계를 위한 정치 강화를 내포하며 궁극적으로 대통령정치의 복원과 축소된 정치의 확장을 의미한다. …정국운영 방안은 한마디로 대통령 정치의 강화다. 여야 공히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 있는 정치관계법에 대한 재개정을 주도하고 여야의 당파적 사활이 걸린 선거제도에 대해 당파를 초월한 정치적 중립자로서 대안을 제시한다. 비례대표제 확대와 지역구의 조정, 국회의원 수의 조정 등이 이에 속한다….”
지금 이런 주문들이 마치 거부할 수 없는 강령처럼 착착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