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유리 바벨탑의 저주를 조심해!
지난 8일부터 본격 분양에 들어간 ‘해운대 엘시티더샵’ 예상 조감도. 엘시티더샵은 또 하나의 랜드마크급 프리미엄 아파트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빛을 흡수하는 통유리 구조로 설계돼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사진제공=엘시티
자영업자인 A 씨는 많은 부산시민들이 선망하고 있는 마린시티에 거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해당 지구 대표적인 아파트의 중간층에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별로 유쾌하지가 않다. 조금 무리해서 옮긴 집이 만족감을 주기는커녕 속을 끓게 했기 때문이다.
통유리로 이뤄진 주상복합 아파트의 불편함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최근 여름을 지나면서 그 불편함이 도를 넘었다고 한다. A 씨는 “여름 몇 달간은 관리비 폭탄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노모가 계신 까닭에 낮에도 냉방을 할 수밖에 없어 월 관리비가 100만 원을 훌쩍 넘겼다”고 말했다.
A 씨의 불만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담배를 베란다에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필 수 있었고, 여름철 실내 복장도 주위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는 이 모든 것에 제약이 따른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특히 아직 10대인 딸과 함께 맞은편에 거주하는 세대에서 벌어지는 낯뜨거운 애정행각을 볼 때는 입주한 것을 몹시 후회하곤 했다”고 말했다.
결국 A 씨는 현재 자신의 살고 있는 집을 재차 전세로 내놓은 상태다. 혹시 기회가 되면 다시 이와 같은 아파트에 들어올 의향은 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명 아파트라는 허황된 이름과 조망권에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하긴 싫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었다.
‘관리비 폭탄’에 대해선 또 다른 얘기도 있다. A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와 관계된 한 익명의 제보자는 “관리비 100만~200만 원은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라며 “모 기업에서 회사공용으로 쓰고 있는 한 세대의 경우 관리비가 한때 500만 원을 초과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관리비 폭탄을 커튼 월 구조의 건물, 다시 말해 통유리로 외벽이 이뤄진 건물의 구조적인 결함에서 이유를 찾는다. 건물 구조적으로 태양광과 반사광을 최대한 흡수할 수밖에 없어 여름철에 웬만큼 냉방을 해서는 시원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해운대 마린시티 등 바닷가에 인접한 아파트의 경우 태양광에다가 바다에서 반사된 빛이 더해지고, 여기에다 바로 인접한 아파트의 반사광까지 보태져 이중삼중으로 실내 기온을 높이게 된다.
통유리 아파트 회의론자는 A 씨뿐만이 아니다. 취재 도중 우연히 동아대학교 체육학과 정희준 교수를 알게 됐다. 정 교수는 2년여 전에 모 언론사 기고를 통해 통유리 아파트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정 교수는 “당시 기고를 통해서도 얘기했지만 이들 아파트의 문제점은 엄청난 관리비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실내 공기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환기가 되지 않는다는 게 또 하나의 커다란 약점”이라며 “찌개 하나, 생선 하나도 마음대로 끓이고 굽지도 못하는 아파트에다가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과연 적합한지 정말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통유리로 이뤄진 초고층 아파트의 향후 재산권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향후 프리미엄 주거 공간에 대한 선호도가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서 타운하우스나 개인주택 쪽으로 빠르게 옮겨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따라서 투자 목적으로서의 이러한 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이제 접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통유리 아파트 거주를 마치 특권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동부산발전연구원 김동기 사무국장은 “통유리로 이뤄진 보기 좋은 아파트가 투자 목적으로도, 또한 실제 살기에도 좋지 않은 이른바 ‘속 빈 강정’이란 것은 이제 공공연하게 인정된 사실”이라며 “결국 이러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자신을 허세나 쫓는 거품 가득한 인물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엘시티더샵’이 분양에 들어갔다. 이 아파트 역시 측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면과 후면이 모두 통유리로 이뤄져 있다. 더군다나 882개에 이르는 세대 전체가 바닷가를 조망할 수 있는 남향으로 설계됐다. 태양광과 바다의 반사광을 하루 종일 최대치로 흡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해당 아파트 시행사 관계자는 “오픈 베란다를 적용해 외부와 연결된 창문을 3분의 1가량은 열 수 있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환기 또한 일반 아파트에 비해 그다지 원활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엘시티더샵’은 포스코건설이 시공사로 정해진 이후 사업에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현재 많은 이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중 일부가 실구매자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이 향후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할지 여부는 의문부호로 남는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