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2년 12월22일,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당선자가 부친 김홍조옹을 찾아 ‘당선통지서’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93보도사진연감] | ||
법대로라면 당선자로서의 역할만 수행할 뿐 어떤 권한도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는 부여되지 않는다. 이른바 ‘무관의 실세’로 지내는 셈이다. 다만 대통령 경호실법에 의해 대통령에 준해 경호를 받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된 당선자의 유일한 예우다. 당선자의 의전과 경호에 대한 모든 것을 미리 들여다봤다.
[경호문제]
당선자가 확정되면서부터 가장 먼저 변하게 되는 것은 신변 경호문제다. ‘대통령 당선자와 가족에 대한 호위’를 규정한 대통령 경호실법 제3조 2항에 따라 20일 오전부터 당선자와 배우자 부모 자녀 등 직계 존속을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수준으로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를 받게 된다.
그런데 어떤 시점부터 경호를 할 것인가는 경호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지난 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노태우 당선자의 경우 당시 안현태 청와대 경호실장이 노 당선자의 기자회견이 끝난 아침 11시30분쯤부터 공식적으로 경호를 시작했다.
이때 안 실장은 노태우 당선자에게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이 시간부터 법에 따라 저희 경호팀에서 경호를 담당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청와대 경호팀과 기존 경찰 경호팀과의 인수인계를 지휘했다.
사실 안 실장은 청와대 경호가 언제부터 시작돼야 하는가를 놓고 법률가들의 자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선례도 없고 명문화된 법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법률가들은 ‘아직 개표하지 않은 표가 모두 2위에게 가도 당락이 뒤바뀌지 않는 시점’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시간으로 해석했다. 안 실장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TV를 통해 개표상황을 보고 있다가 당선확정 시간에 맞춰 민정당사로 찾아와 경호개시 신고를 한 것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은 보통 3개 팀 약 30여 명의 경호요원을 당선자에게 파견한다. 그리고 경호실 소유 방탄차량이 당선자에게 지급된다. 87년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공여받은 방탄차를 노태우 당선자가 단 한 번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보통사람’임을 강조했던 노 당선자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방탄차를 고사하고 평소 쓰던 그랜저 승용차를 이용했다.
▲ 지난 97년 12월29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전방부대를 방문, 전망대에서 북측지역을 관측하고 있다. | ||
97년 김대중 당선자도 자신이 쓰던 다이너스티 승용차 대신에 벤츠600 방탄차량을 이용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방탄차에 TV 모니터와 카폰이 설치되지 않아 한동안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밖에 당선자는 대통령 전용기와 전용헬리콥터 등을 임시로 이용할 수도 있다.
반면 당선자에 대한 접근은 엄격히 차단된다. 우선 당선자 집무실에 금속탐지기가 설치되며 집무실로 향하는 출입구에도 경호실 요원 10여 명이 배치돼 24시간 경호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당직자와 출입기자들도 예외없이 신분증을 패용해야 집무실 출입을 허가받을 수 있다.
숙소는 당선자의 의중에 달려 있다. 경호상 필요에 따라 외부의 안가 또는 호텔을 이용할 수 있으나 모든 결정은 당선자의 뜻에 따른다. 노태우 당선자는 삼청동 안가로 옮겨 생활했지만 김영삼 당선자는 상도동 자택에서 그대로 머물렀다. 김대중 당선자는 일산 자택에 머물다 청와대 인접 부속관사로 거처를 옮긴 적이 있다.
당선자 자택에 대한 경호도 엄중해진다. 경찰 1개 중대 병력이 당선자 집 주변에서 경비를 강화하고 현관에도 금속탐지기가 설치된다.
[예우문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과 같은 당선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경호를 제외하고 당선자에 대한 의전상의 특전은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차기정권 담당자로서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걸맞은 예우를 받는 게 관례다.
하지만 87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측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전권을 행사하는 ‘확실한’ 대통령이기를 원해 노태우 당선자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전 대통령은 총무처로 하여금 대통령 당선자라 하더라도 취임 전에는 3부 요인 다음 순이라고 규정하게 해 노 당선자를 불쾌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 당선자는 아예 껄끄러운 행사는 피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고 한다.
당선자는 각 부처 장관들로부터 ‘언제든지’ 업무와 관련한 보고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정부 각 부처별로 고급 간부가 파견돼 당선자의 정책 등에 관해서 자문을 해준다. 이중에서 국정원 등의 정보기관에서는 매주 수차례 고급정보를 브리핑하기도 한다. 때로는 현직 대통령에 가는 보고보다 질이나 양에서 앞서기 때문에 당선자의 위상을 실감하기도 한다.
당선자는 당선 직후 정부와 협의를 거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해 차기대통령으로서의 준비작업을 시작한다. 당선자의 요청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표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설치령’에 따라 한시기구로 설치 운영된다. 정부는 인수위에 대해 사무실과 집기는 물론 필요한 정부인력을 제공하고 참가자에 대해 일정 수준의 급여도 지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