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 김원홍 정보권력 접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월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를 주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계관 내각 외무성 제1부상, 김영일 당 국제비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현영철 군 참모총장, 홍승무 당 부부장, 박도춘 노동당 군수담당비서. 연합뉴스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는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방첩 및 공작기관이다. 보위부는 북한 공산정권 초창기 보안국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후 내무부와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부이며 한국의 경찰에 해당) 산하 정치보위국으로 편제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3년 2월, 당시 정치보위국은 ‘국가정치보위부’라는 이름으로 격상돼 현재의 조직지도부 내 (사실상의) 직속기관으로 거듭난다. 김정일의 후계세습 작업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겹치는 셈이다.
이 시기부터 보위부는 당시 한국의 중앙정보부의 역할처럼 북한 주요 고위 간부와 일꾼들에 대한 사찰 및 즉결 처분까지 행사하며 김정일 후계세습을 지탱했다. 1982년 당시 김병화 보위부장의 안하무인격 비리행위로 기관의 격이 한 단계 격하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이때 국가정치보위부에서 국가안전보위부로 격하), 1992년 4월부터 사실상 김정일이 직접 부장 직무를 수행하며 현재의 보위부 체제가 완성된다.
다만 1990년대 보위부의 위상은 인민보안부나 보위사령부 등 다른 정보기관과 비교해 그다지 권력이 집중된 기관은 아니었다. 특히 1998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김영룡 제1부부장의 사건이 발생한 후 보위부는 사실상의 암흑기를 보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때부터 밉보이기 시작한 보위부에 김정일은 김정은이 등장하기 전인 2009년 이전까지 10년도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던 보위부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때는 김정은의 3대 후계세습 시기와 맞물린다. 아버지 김정일의 2대 후계세습 시기 역할을 했던 선례와 비슷하게, 다시금 음지에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역할이 필요하게 된 셈이었다.
지난 연재를 통해 밝혔지만, 김정일은 무엇보다 삼남 정은으로의 후계세습 과정에서 군과 함께 정보 및 안보 권력을 중시했다. 이에 2009년 4월, 김정일은 정은을 전격 보위부장으로 발탁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보위부의 위상은 과거 김정일의 국가정치보위부 시절과 견줄 정도로 급상승하게 된다.
김정은은 보위부장에 오르면서 북한 조직 곳곳에 프락치 형성 작업을 대폭 강화하고 이른바 정보 및 안보 권력을 차츰차츰 접수하게 된다. 이는 후계세습 과정의 중요한 단계였다. 북한의 각 공식조직에 있어서 김정은의 세력화 초석 작업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 시기 보위부의 위상이 다시 급상승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현상이 목격되기도 했다. 필자가 이 과정에서 입수한 현상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시기를 전후로 범법행위를 했거나 직무상 하자가 발생한 보위요원들은 혐의가 포착되어도 한 차례 정도는 재신임 받는 사례가 꽤 있었다고 한다. 즉, 실수가 있더라도 보위요원들은 타 당직자들과 다르게 한 번의 기회는 더 부여됐다는 것이다.
둘째, 보위요원들의 가족에게 많은 혜택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이는 가족들에게 있어서 우리의 취업 청탁에 해당하는 좋은 자리로의 인사 배치, 경제적 혜택 등을 의미한다. 사실상 무임승차 수준의 혜택을 받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보위부 요원들의 가족들까지 철도와 버스 등 공공운임도 우선권의 자격으로 무임승차하도록 특혜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의 보위부 간부들에 대한 선물정치가 이전과 비교해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보위부장에 오른 직후, 보위부 각급 간부들에게 러시아 산 라다(LADA) 자동차 300대를 각 도(시)·군 보위부장들에게 일률적으로 내려 보내는 등 이전에는 없었던 ‘통 큰’ 특별선물을 하사했다. 이 당시 보위부 제1부부장으로 있었던 우동측을 비롯한 6명의 본부 부부장들 역시 아우디 세단 급 최신 승용차를 선물로 하달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김정은 시대 들어 보위부의 활동반경은 매우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그루빠(그룹)들을 구성해 전국의 각 조직들에 대한 각종 단속들이 잇따라 이뤄졌다. 무엇보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보위부의 통제를 조직지도부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적으로 보위부의 상급기관은 국방위원회로 되어 있지만, 필자가 직접 내부 소식통과 접촉해 확인한 결과 보위부는 조직지도부 16과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현재의 보위부는 김정은과 (현재 조직지도부장 겸 조직비서로 활동하고 있는) 누이 김설송이 직접 통제하며, 정권의 충실한 견마(犬馬) 혹은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 시대 보위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꼭 살펴봐야 할 인물이 있다.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이후 공식적으로 권력을 잡게 되면서 보위부장에서 물러난 후, 2012년 4월 그 자리를 직접 물려받은 김원홍은 꼭 짚어봐야 한다. 이전 김정은 밑에서 보위부 제1부부장으로 있었던 우동측은 김원홍의 등장과 함께 권좌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일각의 설에 따르면, 우동측은 북한 내부 반김정은·반체제 행위에 가담했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하여튼 우동측은 김영룡 제1부부장처럼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여러 인사들이 실세로 지목되고 있다. 그 기준과 권력의 해석들은 정말이지 제각각이다. 하지만 친밀도와 스킨십의 기준으로 한다면 김원홍은 사실상 김정은의 ‘오른팔’ 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권좌의 최상위 포지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보위부장에 오르기 이전부터 김정은 후계자를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으로 가장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종의 멘토로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필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과적으로 2015년 현재 김원홍은 국가안전보위부장 외에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국방위원회 위원 등 요직을 죄다 겸직하고 있으며 이미 지난 2009년 4월 14일 최고사령관 명령 0029호에 의해 유독 혼자서 대장 진급(흥미있는 사실은 이때 중장에서 상장으로 승진한 인사는 고수일과 우동측임)을 한 것으로 보아 김정은 정권의 안전담당 주요인물로 전해진다. 참고로 김정은은 2010년 9월 대장칭호를 받으며 공식 등장했다.
현재 김원홍 부장의 위상이라면 현 김정은 시대 최소한 다섯 손가락 내 권력가라 할 수 있다. 앞서 멘토라고 표현했지만 김정은과는 거의 매일같이 독대를 하며 소통을 하고 있는 인사다. 일설에 의하면 김원홍은 최근에 김정일이 체제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심지어 평양시 수자원문제까지 토의하는 정도로 주요 사안과 관련하여 상의하는 김정은의 ‘사람’으로 보인다.
김원홍은 정통 정치군인으로서 김일성정치군사대학 출신이다. 이전 군 보위사령부에서 오랫동안 재직했던 뼛속 깊은 정보통이기도 했다. 이전 이력을 잠시 살펴보자. 그는 2003년 보위사령관직을 지냈으며 보위부장으로 되기 직전까지 군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은 상급자인 총정치국장을 당적으로 감시하는 실권자이자 보위사령관의 직계상관이다. 이미 그는 오래전부터 군에서 정보를 다뤘고, 특히 검열 및 내사 사업 경험을 농익을 정도로 해왔다. 이러한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김정은 시대 보위부장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타일로 보자면 김원홍은 정치군인 출신답게 상당히 전략적 사고를 꾀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으로도 상당히 듬직한 맛이 있는 진중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인간적인 매력도 김정은 시대 성공가도에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김원홍은 김정은으로부터 대남 및 해외 공작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직접 대남 공작원들을 선발하여 스파이로 남한지역에도 침투시키며 다른 공작기관의 대남 작전권과 방첩권도 상당 부분 관리통제하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축소된 인민군 보위사령부(현재 보위국으로 격하)의 해외작전권도 관할(기존에는 보위사령부가 해외작전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였음)하는 등 최근 북한 내에서 정보 및 사찰기관의 최고수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보위부 간부 및 요원들의 가족들 역시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김원홍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미 그 이전부터 김원홍의 자제들은 북한 엘리트 사회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후에 더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김원홍의 아들 김철은 봉화조의 핵심멤버다. 봉화조는 중국의 태자당과 비교되는 북한 김정은 시대 선친의 권좌를 물려받은 실권세력이자 호위세력이다. 현재 김철은 당 39호실에서 김정은 시대 해외 자금선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활약을 다하고 있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김원홍의 여식은 (물론 현재는 죽은 권력이나 다름없지만) 김경희의 비서로 재직 중이었다는 소문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그의 딸은 이미 김원홍이 보위부장에 오르기 전, 능력과 배경을 인정받아 김경희의 눈에 들었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온다.
현실적으로 북한 군부 핵심요직인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작전국장 등 주요 4인은 김정은 정권 4년차에 거의 수차례 바뀌었지만 안보 및 정보 관련 핵심들인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과 정찰총국장 김영철은 아직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원홍 최대 고민은 장성택 세력 색출 골머리 천하의 김원홍이라 할지라도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김원홍의 현재 최대 고민은 보위부 내 잔존하는 기존 장성택 세력과의 관계다. 물론 지난 연재를 통해 언급했듯, 장성택 숙청 당시 각 조직에 퍼져있던 그의 추종세력들 역시 정권의 칼부림에 대거 모가지가 날아가지 않으면 한직으로 물러났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은 장성택 잔존세력들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2013년 12월 12일 특별군사재판에서 국가전복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한 장성택. YTN 화면 캡처 하지만 그 모든 세력과 인사들을 100%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정권이 작동하기 위해선 일선 실무자들이 필요하다. 장성택 추종세력들 중 일선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당직자들은 아직 일부 생존하며 업무를 유지하고 있다. 보위부 역시 마찬가지다. 장성택 숙청 당시 보위부 내에서도 국장급 인사들 상당수가 칼부림에 모가지가 날아갔지만, 나머지 장성택 휘하의 하급 실무자들은 무사했다. 필자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김원홍은 보위부 업무 진행 과정에서 이러한 장성택 잔존세력들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원홍의 또 다른 고민은 3대 세습 혼란 시기에 북한 전역 곳곳에서 발생하는 반체제 행위다. 후에 인민보안부를 다룰 편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김정은 시대들어 이전에는 없었던 반체제 집회 및 시위(물론 한국의 경우처럼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게릴라식으로 반체제 전보를 붙이거나 지하에서 조직 활동을 꾀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보위부는 이를 진압하는 별도의 기동타격부대를 산하에 만들어 활동하고 있지만, 통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걸] |
최룡해, 김원홍을 두려워하는 까닭 그도 고양이 앞에 쥐? 김원홍은 김정은과 당 조직지도부의 명령과 기획에 따라 리영호 전 군 총참모장, 장성택 전 행정부장,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의 숙청 및 처형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는 이미 지난 연재를 통해 필자가 자세히 언급했다. 현존하는 권력자인 최룡해 역시 김원홍의 사찰대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최룡해와 김원홍은 ‘고양이와 쥐’의 관계로 표현될 정도로 어색하고 서로를 의식하는 관계라고 한다. 아직 표면적으로 갈등이 노출된 것은 아니지만, 최룡해 입장에서 김원홍은 상당히 불편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 [걸] |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