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밀 인사·검열… 1인 통제의 ‘과학’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은 한평생 ‘초당적 통치기구’ 조직지도부를 통해 1인 독재체제를 이어갔다. 지난 4월 16일 김정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103회 생일에 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모습.
조직지도부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산하 20여 개 전문부서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실권과 상징성을 놓고 본다면 초당적 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란 체제가 당적 지도를 우선시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넘어선 것이 바로 조직지도부의 절대적 위치다. 때문에 20여 개의 비서국 산하 전문부서 중 ‘지도’라는 명칭을 오직 조직지도부만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지도부의 탄생은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이어지는 2세 세습과 역사적으로 연관성이 깊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낙점된 때는 1970년을 전후한 시기다. 그가 공식적으로 당적 직함을 가진 것이 1964년 북한 노동당 조직부 책임지도원(현재 책임부원)이다. 당시 그는 조직지도부의 전신인 조직부의 일정한 직위에서 경험을 쌓는 한편, 1967년부터 선전선동부 영화연극예술담당 과장에서 1971년까지 조직부 부부장 겸 선전선동부장에 오른다. 전자가 실권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예술과 사상 선전에 능통한 그의 특기를 잘 반영하여 김일성의 후계자로 의도적으로 키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조직부 부부장에 오를 당시, 조직부장은 김일성의 동생이자 김정은의 숙부인 김영주였다. 김영주는 당 조직부가 본격적으로 자기의 기능을 가지기 시작했던 1960년부터 1973년까지 약 13년간 조직부장을 지냈다. 당시에도 조직부는 조선로동당의 당적 지도를 선도하는 권력기관이었다. 이는 이웃 공산국가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기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당적 지도의 노선을 결정하는 핵심 기관이었지, 현재처럼 모든 권력의 중심은 결코 아니었다.
1973년은 북한 현대사와 김씨 일가의 가족사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해이다. 이때 후계자로서 위치를 확고히 한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후견을 입고 숙부 김영주를 몰아내고 조직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당시 당적 경험이 많았던 김영주는 김일성을 빼닮은 김평일(김정일의 이복동생)과 함께 김정일을 위협한 세습 후보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한때 막강한 권력자 중 한 명이었던 김영주는 이 경쟁에서 탈락한 후 1975년부터 2004년까지 공식석상에서 사라진다.
김정일은 1973년 전면적인 당 구조 개편에 들어간다. 물론 개편의 배경은 당을 완전히 장악하여 김씨 일가 세습의 영원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 이를 통해 자신의 후계세습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있었다. 그 과정의 핵심 과제는 자신이 장악한 기존의 노동당 조직부를 현재의 조직지도부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었다. 다른 전문부서에는 결코 지도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었으며, 오직 조직부에만 붙였던 시기가 바로 당시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후 김정일은 자신이 죽은 2011년 12월까지 초대 조직지도부장 직함을 계속 유지했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난 1994년 그가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일은 한평생 이 조직지도부라는 초당적 통치기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확고하고, 강력한 1인 독재체제를 이어갔다. 그가 조직지도부였고, 조직지도부가 곧 그였다. 조직지도부에서 작동되는 독자적인 통치와 검열의 메커니즘은 당시까지 나왔던 사회정치과학의 수준을 넘어, 신기에 가깝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일성 주석. 연합뉴스
조직지도부가 관할하는 당 인사권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적으로 유급당 비서부터 조직지도부의 인사 대상에 해당한다. 유급당 비서란 당원 100명을 둔 중간급 간부를 지칭한다. 경제 분야로 따지면 북한의 2급 기업소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지도 당원의 규모와 상관없이 정무원(현재 내각)의 각급 위원회 및 부서 등 중앙기관 주요 간부의 경우 여기에 반드시 포함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반 당 조직은 물론 북한의 또 다른 권력기관인 군부 역시 조직지도부에 의해 인사권이 통제된다는 사실이다. 군부 내에서 당적 지도를 직접 담당하는, 최고 권력자로 보이는 총정치국장 역시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부서의 지도 밑에 한 개 하부단위일 뿐이다. 조직지도부의 군 관련 부서의 통제를 놓고 보면, 이것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잘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조직지도부의 인사권은 연대급부터 발동한다. 북한의 연대급 부대는 병력 1000~3000명 규모에 해당한다. 연대를 지휘하는 연대장, 연대정치위원, 연대참모장 세 간부의 합동 사인이 있다면, 1000~3000명 규모의 병력을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즉 이 정도 규모면 김정은 체제에 항거하는 쿠데타 발동이 가능하단 계산이 나온다.
일반 부대가 아닌, 저격 및 경보병 부대와 같은 특수전 담당부대의 경우 대대급 간부들도 조직지도부의 인사 대상이 된다. 300명 이하 규모의 병력이지만, 병력의 질만 놓고 본다면 일반 연대급 전투력과 맞먹는다. 특히 쿠데타와 같은 특수 작전에서 충분히 위력적인 게릴라 전술을 펼칠 수 있는 경우 그 위력이 배가되는 대상인 이유이다.
즉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병력 수준을 유지하는 군 간부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뿐만 아니라 호위총국(기존 호위사령부)이나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같은, 군복을 입은 모든 당 조직들은 철저하게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부서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조직지도부의 막강한 권한은 인사권에만 있지 않다. 하부단위인 당 세포까지 촘촘히 짜여있는 검열 시스템이야 말로 조직지도부를 통한 1인 통제 메커니즘의 진수라 할 수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기본적으로 이를 전적으로 담당한 중앙당 조직지도부 내 본부당위원회는 중앙당 핵심간부 3000명을 모두 장악하고 그들의 당 조직 및 사상 생활을 검열하는 주요 조직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앙당 내 핵심 간부들의 사생활까지 검열의 대상이 돼, 사실상 그들의 가족까지 포함해 1만여 명이 매일 매 시각 즉각 통제되는 셈이다.
김일성 주석의 친동생 김영주.
여기서 말하는 검열은 그저 단순한 모니터링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삼중사중의 세부 통제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작동된다. 한 예로 내각 농업성을 들어보자. 농업성 내부에는 당위원회가 설치된다. 최고 책임자인 농업부장이라 할지라도 이 당위원회에서는 그저 조직비서다. 한마디로 일개 구성원일 뿐. 놀라운 사실은 그 당위원회의 위원장은 농업부장이 아닌 그 밑 농업부 제1부부장급 인사들 중, 그것도 막내가 맡게 된다는 것이다.
군 총정치국도 마찬가지다. 내부의 당위원회에서 총정치국장 역시 일개 비서에 불과하다. 총정치국 내부 당위원회 위원장 역시 부국장급 중 막내가 맡게 된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의 습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위급 간부라 할지라도 누구나 조직 내부에 설치돼 있는 당위원회 총화에는 의무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알려졌다시피 ‘총화’는 상호비판이 중심이다.
당 위원회 위원장에 막내급 간부를 둠으로써 해당 부서 최고위 간부를 교묘히 견제하고 감시하고 통제하게끔 하는 것이다. 윗자리에 올라야 하는 막내급 간부들은 자연스레 이 시스템 하에 윗사람을 감시하게 된다. 각 조직의 당위원장이 곧 조직지도부 본부당 직속라인이 된다. 이러한 통제 및 감시 정보들은 곧바로 조직지도부에 보고되는 시스템이다.
조직지도부 청사도 유심히 지켜볼 대상이다. 청사는 총 3층으로 이뤄져 있다. 3층에 조직지도부 핵심 부서들이 위치해 있다. 이곳 ‘303호’가 현재 김정은의 집무실이다. 1층에는 김정은을 지키는 호위부서 관계자들과 당 서기실 관계자들이 항시 자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2층이다. 2층에는 당 소속 전문부서 중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군수공업부, 국제부, 재정경리부, 군사부 등 6~8개 주요 부서의 책임(수석)부부장 집무실이 위치해 있다.
이는 업무에 있어서 철저한 신속성 및 효율성 때문이다. 조직지도부를 제외하고 앞서의 6~8개 부서는 20여 개 전문부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3층에서 집무를 보고 있는 김정은은 일이 있거나 지시사항이 있을 때마다 곧바로 2층에 위치한 핵심 부서 관계자들을 불러낸다. 김정은의 지시사항이 실시간으로 핵심 부서에 전달 혹은 자문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조직지도부는 이러한 통치와 검열 및 인사(간부)의 구조를 통해 당과 군을 그리고 북한이라는 독재체제를 김정은 1인이 완벽하게 장악하게 하는 핵심 중의 핵심 부서인 것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보면 더 복잡하면서도 오직 김정은 1인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바로 김정일은 1973년부터 이 거대한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고 단 한 순간도 이 시스템의 권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11년 12월 급사하면서 이 자리를 비워뒀다.
김정일 이전 중앙당 조직부 시절에도 이 자리는 곁가지지만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의 자리였다. 김씨 일가만이 이 자리를 지켜왔다. 김정일 사후 북한 통치의 핵심인 차기 조직지도부장의 자리는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함에도 한국 사회와 군을 비롯한 정부기관에선 이 부분을 놓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오로지 누가 최고지도자인가, 단순히 어떤 누가 최고 실권자가 될 것인지 표면적인 부분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후 이 자리는 누구의 몫이 됐던 것일까. 김일성의 주석 직무,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직무처럼 김정일 사후 지금까지 이 자리 역시 영원한 공석으로 남겨놓은 것일까. 아니면, 부친의 뜻을 받들어 김정은이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물려받은 것으로 이해할까. 참고로 이전 ‘장성택 숙청의 진실 ②(1217호)’에서 필자는 김정일이 생전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에 앞서 아들 정은을 이 자리(조직지도부장 겸 당 조직비서)에 앉히려고 시도했지만, 장성택과 김경희의 견제로 실패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자리는 김정은에게 가지 않았다. 단언컨대, 김정일 사후 이 자리를 처음 물려받은 이는 김경희였다. 김정일의 유언에 따른 조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김씨 일가 내부에 아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