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차고 날아올라 ‘대박’ 용틀임
▲ 복원 완료를 앞둔 청계천 전경과 지난 9월20일 밤 박근혜 대표와 청계천을 둘러보는 이명박 시장. 국회사진기자단 | ||
당내에서는 계파를 불문하고 청계천 개통이 서울시의 이벤트 차원을 넘어 전국적인 관심사로 언론에 대대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대권주자로서 MB의 입지가 넓어졌다는 데 이견이 없다.
MB는 이미 개통을 앞두고 박 대표(9월20일)와 이회창 전 총재(9월25일)를 각각 초청해 청계천 일대를 안내하는 등 본격적인 ‘청계천 세일즈’에 나선 상태다. 개통식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청계천 복원이 국가 차원의 ‘경사’(慶事)로 부각된 것도 MB측을 고무시킨 대목이다.
‘청계천 프리미엄’의 위력은 여론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언론이 집중적인 관심을 보인 탓인지 개통식에 앞서 실시된 조사에서 MB의 상승세가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TNS에 의뢰해 9월29일 발표한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MB는 20.3%의 지지율을 기록해 박 대표(15.9%)에 5%포인트 가까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상의 ‘절대 강자’인 고건 전 총리(27.9%)에 비해서는 뒤지지만 격차가 크게 좁아졌다. 두 달 전인 7월 같은 기관이 실시한 조사와 비교하면 고 전 총리는 7.2%포인트 하락한 반면 MB는 5.2%포인트 상승해 양자의 차이는 20%포인트에서 7.6%포인트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조사에서 박 대표의 확고한 ‘안방’으로 여겨졌던 대구-경북(TK)에서도 MB가 31.4%의 지지율을 얻어 박 대표(22.4%)를 따돌렸다는 점. 당내 기반으론 박 대표가 MB를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지만 대중적 인기는 MB 쪽으로 쏠리고 있음이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이 된 것이다. 수도권에서 박 대표에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MB로서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의 한계를 넘어 전국적인 판도에서 유력 대권주자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 당내외의 일반적인 평가다.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 MB의 인기도가 높게 나타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고 전 총리(30.2%)와 정동영 통일부 장관(25.8%)에는 뒤지지만 MB가 11.8%의 지지율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6.0%),이해찬 총리(2.7%)를 제친 것은 정파를 불문하고 ‘CEO(최고경영자) 대통령’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전략이 청계천 개통을 계기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MB의 상승세가 뚜렷해지면서 당내의 역학구도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당 혁신안을 둘러싼 논란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현 지도부의 임기를 보장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서 박 대표의 입지가 굳어지는 듯했지만 MB의 약진이 도드라지면서 새로운 기류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동안 박 대표의 대중적 인기에 영향을 받아 ‘박근혜 대세론’에 굳이 이의를 달지 않았던 중도성향의 의원들이 하나둘 MB에 다가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부산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들어 지역구 내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MB와 손을 잡으라’는 요구를 심심찮게 받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 대표의 인기가 MB를 압도했지만, 최근엔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인지 ‘MB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는 확실히 살리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지역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청계천 복원도 언론이 대서특필해서인지는 몰라도 ‘해결사 MB’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그동안 ‘친박’(親朴) 일색이었던 TK 의원들도 MB의 급부상에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때 ‘흑기사’로 불릴 정도로 박 대표의 측근을 자처했던 한 의원을 최근 만났더니 ‘주변에서 너무 박 대표쪽에 쏠리지 말고 MB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느니, 대통령감으론 박 대표보다는 MB가 낫지 않느냐는 등의 얘기가 많아 고민’이라고 토로하더라. 수도권에서도 박 대표와 MB 사이에서 고민하던 의원들 상당수가 MB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정설이다”라고 덧붙였다.
당내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그동안 MB의 상승세를 ‘일시적 현상’으로 평가절하해온 박 대표측은 아연 긴장하는 분위기다. 논란 끝에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 임기 단축 요구를 ‘제압’한 후 “적어도 연말까지는 박 대표의 ‘아성’에 도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표명해온 박 대표측은 핵심 지지기반인 영남권까지 MB측에 잠식당할 조짐을 보이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박 대표측의 한 핵심 당직자는 “9월 들어 청계천 개통이 다가와 언론이 MB를 주요 기사 소재로 다루면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율이 높아가고, 이에 영향 받아 의원들까지 흔들리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8월 말 연찬회 직후만 해도 당내에서 국가발전전략연구회 멤버 등 MB와 직접적으로 이해를 같이하는 경우를 빼고는 대부분의 의원들이 박 대표쪽으로 기울어 적어도 원내에서는 ‘박근혜 대세론’이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것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 조성돼 고민이다”고 말했다.
다른 측근도 “MB가 최근 상승세를 타는 원인을 단순히 청계천 개통이라는 이벤트 때문이라고 봐서는 곤란하다”며 보다 근본적인 MB에 대한 대책 마련 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이 측근은 “박 대표는 여야 관계의 틀에서는 MB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 본의 아니게 ‘양비론’에 휩쓸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기 쉽다. 예를 들어 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청와대 단독회담(9월7일) 등을 통해 ‘강한 야당 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하며 주가를 올렸지만 회담결과가 ‘정쟁의 연장선’으로 읽히면서 궁극적으론 손해를 본 측면도 있다. 반면 MB는 광역단체장으로 운신에 제약이 있는 것이 지금 국면에선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데다 청계천 복원이 예상외로 큰 호응을 얻으면서 ‘경제를 살릴 지도자’란 평판을 얻게 됐다”며 “그동안 17대 총선 등 각종 선거를 거치면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박 대표가 이젠 ‘구원 투수’, ‘선거로 먹고 사는 지도자’란 이미지를 벗고 실질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할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반론도 없진 않다. 영남권 한 재선 의원은 “‘청계천 프리미엄’은 길어야 한 달이면 끝난다. 조금 있으면 10·26 재보선이 있는데 4·30 재보선에 이어 다시 ‘압승’한다면 그동안 느슨해진 감이 있는 박 대표의 당 장악력이 다시 배가될 것이다. MB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하지만 박 대표가 당권을 유지한 채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관장할 텐데 누가 섣불리 박 대표를 멀리하고 MB쪽에 붙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표측에 비상이 걸린 반면 MB는 청계천 개통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으로 당내외 기반 확충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9월 하순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 경남 창원을 방문해 창원대 특강을 가지며 행동반경을 넓히기 시작한 MB측은 이미 초청을 받아 둔 각 지역 대학을 순차적으로 찾아 이른바 ‘특강 정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한 측근은 “뉴타운사업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서울숲 조성에 이어 청계천까지 개통됨에 따라 MB가 직접 챙겨야 할 시정 현안들은 거의 다 마무리됐다”며 “이미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만큼 이제는 전국을 무대로 활동을 펼쳐야 할 때가 됐다. 그런 맥락에서 청계천 개통은 MB에겐 본격적인 대선 행보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MB가 당분간 ‘청계천 프리미엄’을 업고 대중적 인기를 토대로 당내 기반을 강화하려 나설 경우 박 대표와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중도성향의 수도권 한 중진은 “MB의 대중적 인기가 당내 세 확장으로 이어질 경우 그동안 당을 확실히 장악해 온 박 대표와의 일전은 불가피해질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당 운영위원회가 박 대표의 임기를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보장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주류측이 세를 규합해 조기 전당대회 개최 요구를 다시 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