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김근태 컴백론 박근혜 위기론 분수령
▲ 지난 5일 방일, 최근 총선에서 압승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만난 문희상(왼쪽) 열린우리당 의장 | ||
4곳(경기도 광주·부천 원미 갑·대구 동 을·울산 북)에서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 이번 선거는 규모면에선 ‘미니 총선’이라 불렸던 4·30 재·보선엔 미치지 못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2006년 지방선거-2007년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향후 정치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선거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데다 일부 지역구에선 거물급 공천 탈락자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선 이번 재·보선에 임하는 열린우리당의 남다른 각오는 노무현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인 이상수 전 의원과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출사표를 던진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울산 북구에 당초 민주노동당을 배려하기 위해 후보를 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깨고 박재택 전 울산시 행정부시장을 영입해 공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희상 의장 등 지도부로선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보건복지 장관 등 내각에 ‘차출’된 대권주자들의 당 복귀설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치러지는 이번 재·보선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만 할 처지다. 당 안팎의 ‘지도력 부재’ 비판에 시달려온 문 의장은 일본 방문기간(10월5~7일) 중 “임기를 채우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지만 재·보선 결과가 시원찮을 경우엔 다시금 중도하차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 386 의원은 “4·30 재·보선 때는 현 지도부가 4·2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 얼마 안돼 책임론에서 벗어났지만 10·26 재·보선에선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엔 사정이 다를 것”이라며 “문 의장의 리더십에 대해 당내에서 ‘당이 치고 나가지 못한다’, ‘관리형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등 평가도 나오고 있는 만큼 문 의장으로선 이번 재·보선이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간접적으로 ‘조기 당 복귀’ 의사를 피력한 바 있는 이 총리와 정 통일·김 복지 장관도 재·보선 결과에 따라 운신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미 복귀 시점을 놓고 문 의장과 갈등을 빚은 바 있는 정 장관측은 재·보선 이후 ‘당의 실세화’를 내세워 컴백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 측근은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호전된 이후 정 장관 주변에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류의 얘기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정 장관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당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참모들에게 여러 번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무회의 석상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다는 김 장관 역시 최근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혼란 등을 거론하는 등 당 복귀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김 장관측은 얼마 전 한 신문이 실시한 차기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김 장관이 이 총리에게까지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충격 속에 컴백을 위한 구체적인 복귀 수순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사정은 보다 복잡하다. 공천 작업이 완료됐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는 데다 당내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주류를 중심으로 “4·30 재·보선을 통해 박 대표가 날개를 달았다면 10·26 재·보선은 내리막길을 걷는 출발점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 지난 5일 방일 같은 날 독도를 방문, 경비대원들과 악수를 나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의 재보선 승부 결과가 궁금해진다. 국회사진기자단 | ||
한 당직자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정진섭 후보가 낮은 지명도에 원적 논란을 겪고 있는 마당에 홍 전 총무까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현지 사정이 굉장히 어렵다”며 “자칫 잘못하다간 가장 쉬운 선거가 되리라던 광주가 ‘블랙 홀’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대구 동 을에 유승민 대표 비서실장을 공천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15명이나 공천을 신청했지만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에 모두 뒤진다는 이유로 유 실장을 ‘전략공천’한 것을 두고 내부 갈등이 표출되면서다. 비주류에선 “현역 비례대표 의원인 유 실장을 의원직까지 사퇴시키면서 대구 동 을에 출마시키는 것은 지도부의 ‘영남 집착’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고, 이 문제로 박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의 알력설까지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 원내대표가 “대구 동 을 재선거가 중앙당 차원의 각축전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아예 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지만, 박 대표는 정반대로 자신의 최측근을 내세워 선거구도를 노 대통령과 자신 간의 대리전으로 몰아가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강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박 대표가 단기적인 승부에 매몰돼 ‘영남당’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 측근은 “박 대표가 광주에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홍 전 총무를 낙천시키고, 대구 동 을에서는 여론조사에서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후보를 앞선다는 이유로 신청도 안한 유 실장에게 공천을 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 박 대표의 입맛에 따라 중요 사안이 결정되는 ‘사당화’(私黨化)의 조짐이 갈수록 짙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 당내에서는 비주류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10·26 재·보선 결과가 나쁠 경우 공천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켜 박 대표를 정점으로 한 주류측에 일격을 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중진은 “당내에서 광주와 대구 동 을뿐 아니라 울산 북에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윤두환 전 의원을 공천한 것을 두고 ‘또다시 패자부활전이냐’는 비판론이 거세다”며 “선거 결과에 따라 박 대표의 리더십에 상당한 흠집이 갈 수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조기 전당대회 개최’ 주장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