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속전속결’ 홍 ‘질질끌기’ 누가 유리할까
‘성완종 리스트’ 관련 재판에 임하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왼쪽)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전략 및 행보가 극명하게 비교돼 주목을 끈다. 일요신문DB
이전 총리는 최대한 빨리 재판을 진행하는 반면 홍 지사는 재판을 끌 수 있을 만큼 끌고 가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듯 보인다. 어느 쪽 전략이 먹힐지는 법원의 판단이 나와 봐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난 7월 검찰이 이들을 불구속기소한 후 3개월간 진행된 재판 과정을 보면 홍 지사 측이 이 전 총리 측보다 조금 더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후 거짓말 파문으로 결국 검찰 수사를 받은 이완구 전 총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변호인의 조력 때문이었다. 성 전 회장과 친분이 없다고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얘기했지만 결국 1년에 200여 통씩 전화통화를 한 사실과 이 전 총리 출판기념회에 성 전 회장이 참석한 사진 등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말을 하면 할수록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을 변호인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 전 총리 측 한 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변호인이 사건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인지 검찰 수사 과정에선 별다른 잡음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온 후부터 이 전 총리 사건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1차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기까지 두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만만회’ 의혹 제기 사건의 경우 공판준비기일만 1년이 넘도록 진행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또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입조심을 했던 이 전 총리는 법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 피력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공판에선 성 전 회장 비서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돈이 들어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쇼핑백을 이 전 총리를 만나러 가는 날 성 전 회장 승용차 뒷좌석에 실었다는 등의 진술을 한 바 있다. 그러자 이 전 총리는 “당시 후보자의 자격으로 표심을 얻기 위해 간 것을 얘기하는가”, “충남도지사로 재직할 당시 충남도청과 경남기업은 안면도 개발 건으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성 전 회장이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대답했는지 답변해 달라”는 등의 질문을 직접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자신이 2013년 4월 4일 성 전 회장을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 3000만 원을 받지도 않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성 전 회장을 만났던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만난 적이 없다는 자신의 발언을 얼마나 입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본격적으로 심리가 시작된 후 재판 진행 상황은 이 전 총리에게 다소 불리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다. 1차 공판에서 성 전 회장 비서들이 2013년 4월 4일 당시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법정에서 공개하면서다. 메시지 내용은 성 전 회장 비서진이 카카오톡을 통해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 선거사무실을 그날 방문할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 전 총리 측은 2차 공판에서 “그 시간대엔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이 선거사무실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 측 비서진들이 당시 증인으로 출석해 3000만 원이 이 전 총리 측에 전달됐다는 검찰 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검찰 관계자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이 전 총리 측에서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것 같다”며 “2차 공판에서 이 전 총리가 직접 증인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마음이 급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완구 전 총리와는 달리 홍준표 지사는 지난 7월 23일 1차 공판준비기일이 시작된 후 아직까지 4차 공판준비기일밖에 안 됐다. 그만큼 그동안 진전된 게 별로 없다. 검찰에 수사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신경전을 벌이거나, 홍 지사에게 금품을 줬다는 그의 측근의 말이 담긴 녹취파일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으면서 본격적인 심리를 최대한 늦추고 있다.
심지어 지난 10월 28일 공판에서는 증인을 16명이나 신청해 검찰 측이 신청한 증인 3명까지 합쳐 앞으로 불러야 할 증인이 19명에 달한다. 집요하게 사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계산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홍 지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치열한 여론전을 펼쳤다. 4월 10일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후 거의 매일 출퇴근 시 관련 발언을 쏟아냈고, 어느 날은 하루에 서너 번씩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당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 전 총리와 대비되기도 했다.
당시 홍 지사의 그 같은 여론전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이해할 수 없다. 왜 저렇게 끊임없이 입을 열어서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홍 지사 측 한 인사는 “홍 지사가 당시 언론이나 SNS에 그 많은 말이나 글을 쏟아낸 것은 새누리당 내 친박 핵심 인사 중 한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며 “그래서 이 재판도 쉽게 끝내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홍 지사 측은 사건을 최대한 질질 끌고 가자는 전략인 것 같다”며 “그래서 이 전 총리가 왜 저렇게 사건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건은 천천히, 그냥 시간에 묻혀 가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재판 준비 과정인 만큼 홍 지사가 뜻하는 대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정식 재판이 시작되면 홍 지사 사건은 늘어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홍 지사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이 홍 지사의 혐의 입증을 위해 어떤 히든카드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데다, 홍 지사가 공판에 출석해서 다시 입을 여는 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