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 밀어내고 어딘 봐주고…같은 중구인데 왜이래
명동 거리에 즐비한 노점들. 중구청은 명동 노점들의 합법화를 추진 중이다. 작은 사진(사진제공=민주노점상전국연합)은 중구청이 황학동 불법 노점을 강제 철거하기 위해 200여 명의 용역 직원을 배치한 모습.
서울시 중구청은 ‘도심 노점 질서 확립과 자활기반 활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노점실명제를 도입해 명동, 남대문시장, 동대문패션타운 일대의 노점을 합법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서울 도심의 대표 쇼핑 문화 거리인 이들 지역 일대에 관광 야시장을 조성함으로써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구청 가로환경과는 남대문시장의 실태조사를 마무리 지었으며, 올 12월부터 도로점용을 허용할 계획이다. 현재 남대문시장에서 불법 영업 중인 260개소 가운데 201개소를 합법 노점으로 선정했으며 11월에 선정자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외국인 관광객 쇼핑 문화 1번지인 명동은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실태조사가 실시될 예정이다. 중구청은 명동 일대에서 영업 중인 불법노점 272개소 가운데 197개소 이하만 합법 노점으로 선정한 뒤 1일 150개소 3부제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동대문패션타운의 실태조사는 명동 합법 노점 선정 이후 이뤄질 전망이다.
중구청은 합법 노점에 신규 매대(90×180cm) 사용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기존 매대(120×200cm)보다 가로 30cm, 세로 20cm 축소함으로써 소방·응급차의 도로 진입 용이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또 길거리음식을 판매하는 노점의 위생가운과 위생모자 착용을 권장함으로써 이미지 개선도 꾀할 계획이다.
중구청 가로환경과 가로환경개선2팀 박상우 팀장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입이 많은 곳이라 노점의 위생 불량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며 “합법 노점의 이미지 개선으로 노점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노점실명제 도입으로 합법 노점의 선정 기준이 강화된다.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노점 임대 및 매매는 금지되며 1인 1노점만 인정한다. 또 실태조사를 통해 노점상 영업 여부와 영업장소 및 시간 등을 검토하고, 재산 조회(부부 합산 3억 원 이하)와 중구 거주 여부 등도 파악한다. 합법 노점에는 점주 사진, 판매 품목, 매대 크기, 인적 사항 등이 표기된 스티커 부착도 의무화된다.
하지만 일부 노점 상인들은 합법 노점의 선정 기준인 재산 조회와 중구 거주 여부를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중구의 부동산 가치가 서울시 타 자치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노점 상인이 반드시 저소득층일 이유는 없다는 이유다.
중구청의 명동 불법노점 실태조사를 앞둔 가운데 기업형 노점에 대한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 기업형 노점이란 한 노점상주가 3~4대의 노점을 운영하는 방식을 이르는 말이다. 명동 노점 상주 A 씨는 “명동의 기업형 노점은 은밀히 이뤄지고 있어 실체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일부 노점상주가 기업형 노점 운영으로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노점실명제가 시행되면 친인척의 이름으로 등록해 기업형 노점 운영을 계속해 나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젊은 사람이 일하는 노점은 대다수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기업형 노점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구청의 합법 노점 선정 기준을 살펴보면 직계 중복 선정은 금지하고 있으나, 부부 내지 친인척의 동반 선정은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남대문시장의 합법 노점 선정자 명단에 부부가 일부 포함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중구청 관계자는 “부부가 중복 선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명동 실태조사에서는 부부가 중복 선정되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하루 50만 명의 유동인구가 몰리는 명동의 경우 서울 도심권에서 노점 매출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하루 매출이 200만~500만 원에 달한다. 미리 노점을 확보한 뒤 이를 제3자에게 임대해준 노점의 경우 한 매대 당 보증금 5000만~1억 5000만 원, 월세 200만~500만 원 수준의 임대료가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명동 노점상주와 구청 직원 간 뒷돈이 거래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노점상주 B 씨는 “일부 노점상주가 매달 300만~400만 원을 구청 직원 C 씨에게 건넨다는 등 뒷돈 관련 얘기들도 있다”며 “노점 합법화 계획을 추진하기에 앞서 소문의 진상을 먼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구청 가로환경과 가로환경개선2팀 조영욱 계장은 “C 씨가 중구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타 부서로 인사 이동한 지 오래다”며 “뒷돈 거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이뤄졌더라도 오래전의 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구청은 황학동과 신당동 일대의 불법노점 59여 개소의 정비를 10월 13일에 완료했다. 이 중 노점실명제 대상으로 선정된 노점은 23개소로 나머지 36개소는 영구 철거됐다. 이들 23개소 노점은 합법화 대상이지만 노점 설치 지역이 변경됐다. 특히 지난 8월 12일 성동공업고등학교 정문 앞에 배치된 불법노점 12개소의 강제 철거에 200여 명의 용역직원을 배치하고 2대의 쓰레기집게차를 투입해 1억 800만여 원의 재산 피해를 입힌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고령의 노점상주 한 명은 용역직원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과 전국노점상총연합 측은 합법화 대상지(명동, 남대문시장, 동대문패션타운 일대)와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나섰다.
노점상연합의 한 관계자는 “노점상주들이 새벽 영업을 마치고 잠든 오전 시간대에 집게차로 노점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렸다”며 “하루 전날 최창식 중구청장이 건설관리과 직원들에게 ‘황학동 노점을 빨리 정리하라’고 명령했으며, 계고장 발부 없이 진행했기 때문에 엄연히 불법행위”라고 항의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명동 노점은 감싸주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황학동과 신당동 노점은 밀어내고 있으니 뒷돈거래가 없다면 이럴 수 있겠느냐”고 강하게 반박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황학동은 행정대집행을 통해 수차례 철거를 요구했음에도 이행하지 않았기에 불가피하게 질서 유지를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