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코미디 같으니 코미디언이 정치가로…
과테말라에서 코미디언 출신 지미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월 22일 모랄레스가 과테말라시티에서 대선 유세를 하는 모습. 로이터/뉴시스
“저는 지난 20년 동안 사람들을 웃겨왔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적어도 국민을 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선 운동 당시 모랄레스가 과테말라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었다. 또한 모랄레스는 “저는 막강한 권력도 없고, 또 마법을 부릴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가슴은 국가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함께 나라를 위해 싸웁시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16년 동안 TV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모랄레스는 주로 멍청한 술꾼, 스파이, 악당, 흑인 역할을 맡아왔으며, 풍자 혹은 외설적인 내용의 코미디극을 해왔었다. 15년 동안 장수한 코미디 프로그램인 <모랄스>에서는 동생 새미와 함께 멍청하고 덜 떨어진 캐릭터를 맡아 시청자들에게 웃음보따리를 선사했었다.
사정이 이러니 올해 초 코미디언 출신으로 대선 운동에 뛰어들었던 그에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사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코미디 영화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었다. 실제 모랄레스는 지난 2007년 코미디 영화 <솜브레로를 쓴 대통령>에서 어쩌다 대통령이 된 후 좌충우돌하는 우스꽝스런 카우보이 역할을 맡은 바 있었다. 영화 속에서 황당무계한 공약을 남발하는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만 해도 훗날 자신이 진짜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에 벌어졌다니 놀랄 일.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정치판에서 그는 무명과 다를 바 없었다. 지난 4월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0.5%의 미미한 지지율이 나타내듯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그때만 해도 승승장구하고 있던 여당 후보의 압승만 예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여당 후보가 부패 의혹에 시달리면서 사태가 급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관 뇌물 비리 의혹이 터지자 곧 기성 정치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올랐고, 도처에서 반부패 시위가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졌다. 오토 페레스 몰리나 대통령의 퇴임을 요구하는 시위까지 벌어지면서 과테말라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날이 갈수록 깊어갔다.
급기야 1차 선거를 앞둔 지난 8월 말, 부통령마저 부패 혐의로 체포되면서 과테말라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곧 몰리나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의 정점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 이로써 사퇴 압박에 시달린 몰리나 대통령은 내년 1월까지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즉각 사임했다.
몰리나가 사임하면서 변화를 갈망하는 과테말라 국민들의 염원은 하늘을 찔렀다. 정치는 천운이라고 했던가. 결국 부패 스캔들에 분노한 국민들은 새로운 얼굴을 원했고, 이런 갈망은 모랄레스와 같은 비정치인 출신을 향한 절대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가령 한 대학생은 “우리에겐 변화가 필요하다. 모랄레스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인물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민심은 투표 결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1차 선거에서 모랄레스는 경쟁 상대였던 알바로 콜롬 전 대통령의 전 부인이자 좌파 성향의 국민희망연대(UNE) 소속 후보였던 산드라 토레스(59)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5일 열린 2차 선거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67%의 높은 득표율을 얻은 모랄레스가 압승을 거둔 것이었다.
놀라운 결과에 정치 전문가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부통령, 중앙은행 총재, 여러 정당 대표 등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되자 이에 대한 실망감이 모랄레스의 몰표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도 모랄레스가 선거 운동을 하면서 오로지 ‘부패 척결’ 하나만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단순하지만 핵심을 찔렀다는 것이었다. 선거 구호 역시 단순했다.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도둑도 아닙니다’가 전부였다.
그런가 하면 모랄레스가 SNS를 통해 반부패 시위를 적극 지지하면서 국민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역시 민심을 얻는 데 주효했다. 또한 유세 도중에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거나 뛰어난 말솜씨를 뽐낸 것 역시 그에게는 기존의 정치인들에게 염증이 났던 유권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공약 역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한몫했다. 가령 ‘가난한 아이들에게 모두 스마트폰을 지급하겠다’ ‘교사들에게 GPS 장치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겠다’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는 날씨 상황, 시위, 휴가, 교통 문제 등을 핑계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교사들이 많아 수업일수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많은 전문가들은 모랄레스가 취임 후 빠른 시일 안에 이렇다 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다시 성난 시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사회운동가인 니네스 몬테네그로는 “과테말라 국민들은 참을성이 많은 편이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그가 속한 국민통합전선(FCN)당의 의석수가 11석에 불과하다는 점도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만큼 정치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다른 당과의 연정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만프레도 마로킨은 “모랄레스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다. 하지만 옆에서 도와줄 인물들을 모아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또한 당선 전에는 정치 경험이 없다는 점이 유리했지만 당선 후에는 오히려 이 점 때문에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의 도널드 플랜티 전 남미 대사는 “모랄레스에게는 확실한 정책이 없다. 또한 후원자들 역시 대부분 무명들이다. 그의 공약은 근본적으로 이슈가 없다”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직력과 체계적인 정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모랄레스는 선배격인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들의 선례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모랄레스 외에도 이미 코미디언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정치에 입문해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둔 경우는 여럿 있었다. 우선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부패한 기성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새로운 인물을 원할 때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이에 대해 영국의 풍자가인 존 오패럴은 코미디언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현상에 대해 “유권자들은 위선과 속임수에 지쳐 있다. 반면 코미디는 소통과 정직함을 대변한다. 때문에 싫증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풍자가들은 환영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오성운동당 베페 그릴로.
먼저 이탈리아의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인 베페 그릴로(66)의 경우를 보자. 과거 TV 정치풍자 쇼를 진행했던 그릴로는 마리오 몬티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할 것 없이 모든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등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었다. 이런 까닭에 ‘이탈리아 정치판의 어릿광대 왕자’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80년대 TV 쇼 <판타스티코>에서 당시 사회당 총리였던 베티노 크락시에 대한 풍자로 TV 출연을 금지 당하면서 방송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 후 전국을 돌면서 풍자 토크쇼를 벌였던 그릴로는 SNS를 통해 반부패 운동을 벌이거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탈리아 국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런 지지는 선거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2009년 그릴로가 창당한 ‘오성운동’ 당은 2012년 기초지방선거에서 네 곳의 지역구에서 당선됐으며, 2013년 총선에서는 하원에서 25.5%, 그리고 상원에서 23.8%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이탈리아 제3당으로 성장했다.
당시 그릴로가 내세운 공약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가령 전 국민 인터넷 사용 무료화, 모든 초등학생에게 태블릿 PC 제공, 근로시간 주 20시간 실행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에 그가 허풍쟁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다 할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부패한 이탈리아 정치판을 뒤엎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최고당 욘 그나르.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인 아이슬란드의 욘 그나르(47)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 시장을 지냈다. 2010년 ‘최고당’을 창당했던 것이 처음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당을 창당한 것부터가 사실은 장난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TV 쇼에서 장난삼아 창당을 선언했던 그는 “우리 당은 정치적인 정당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자조 집단이다”라고 선포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최고당’은 정직함, 성실함, 공감, 비폭력, 소통, 그리고 재미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아무런 정치 기반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최고당’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상승했고, 급기야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당수였던 그나르를 레이캬비크 시장에 취임시키는 기염을 토해냈다. 당시 ‘최고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위기로 인해 아이슬란드의 국가 경제가 위험에 처하자 무능한 정부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도인 레이캬비크는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의 뒤를 밟고 있는 듯했으며, 시민들은 높은 실업률과 가계 부채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지만 코미디언이 창당한 당이라고 해서 꼭 장난스럽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나르는 “우리 당은 코미디처럼 시작했지만 엄격한 규칙은 있다. 금연, 금주, 그리고 책임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나르는 재임 기간 동안 무엇보다도 ‘책임감’을 강조했었다. 그는 “내가 웃긴 사람이라고 해서 진지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라면서 적어도 4년 동안은 진지하게 시장직을 수행했었다. 그 덕분일까. 그나르가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레이캬비크의 경제는 기적적으로 되살아나 위기를 모면했다.
선거 유세 당시 그가 내세운 공약은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그나르는 가령 공공 수영장에서 타월을 공짜로 배포해주겠다던가, 동물원에 북극곰을 들여오겠다던가, 공항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던가 하는 기발한 약속을 했다. 또한 시민들에게 “어릿광대가 돼라”면서 “만일 저에게 풍부한 유머감각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저는 정신병원에 있었을 겁니다. 사람에게 유머감각이 없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유머감각은 꼭 필요한 감정인데도 종종 간과되곤 합니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유머감각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는가 하면, “더 이상 어떤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무의미해지고, 가치가 없어지며, 욕이 나옵니다. 바로 정치가 그랬습니다. 우리는 성공에만 집착한 나머지 즐기는 법을 잊고 살았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공약은 불행히도 대부분 이행되지 못했다. 이상과 현실은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공공 수영장에서 무료로 타월을 나눠주는 대신 공공요금을 인상해야 했으며, 공공근로자들을 해고해야 했다. 이에 그에게 표를 던졌던 시민들의 반응은 점차 싸늘하게 식어갔다. 배신당했다고 느낀 시민들은 ‘그나르가 당선되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나르는 시장이 된 후에도 때때로 기행을 이어 가기도 했었다. 가령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난다거나 다스베이더 마스크나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동영상을 찍거나 혹은 여장을 하고 게이 퍼레이드에 참가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미국 앨 프랭큰 연방상원의원.
현 미네소타주 연방상원의원인 미국의 앨 프랭큰(64)은 70~80년대에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의 작가 겸 코미디언이었다. 에미상을 세 차례 수상했으며, <SNL>을 그만둔 후에는 영화 및 TV 쇼프로그램의 작가 겸 배우로 활동했었다. 정치 문제에 대해서 늘 관심이 많았던 프랭큰은 2004~2007년에는 라디오 정치 쇼프로그램인 <앨 프랭큰 쇼>를 진행하면서 날카로운 정치 풍자를 했으며, 여섯 권의 정치 풍자 책을 출간하기도 했었다.
시사평론가이자 열성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던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008년 미네소타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던 그는 2014년 재선에 성공해 현재까지 상원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히데오 히가시코쿠바루.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