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는 침묵 통일부는 조심 ‘아직은 걱정 없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
일단 롯데관광의 대북사업 참여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것이 정·재계의 중론이다. 최근 롯데관광이 개성 관광을 사실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이봉조 통일부 차관도 현대와 북측이 2000년 합의한 7대 사업 독점권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밝혀 롯데관광의 대북사업 참여설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초 북측이나 통일부측이 롯데관광의 대북사업 참여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라 밝힌다. 롯데관광의 개성관광에 대해 북측이 여행객 1명당 2백달러를 요구한 것은 애초부터 현실성이 떨어지는 조건으로 평가받았다. 현대는 현재 금강산 관광객 1명당 15달러를 북측에 지불하고 있다. 북측이 롯데관광에 2백달러를 요구하며 개성관광 사업을 타진한 배경으로 ‘김윤규 사태’로 말미암아 북측에 더 이상 비굴한 자세를 보이지 않겠다는 현정은 회장 길들이기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동영 장관을 필두로 한 통일부도 대북관광사업 중개자 이상의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윤규 전 부회장을 내쳐버린 현대에 대한 압박카드로 롯데관광 건을 활용했을 것이란 관전평도 나온다. 그러나 롯데관광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 북측의 ‘1명당 2백달러’ 제안을 전격 수용할 경우엔 상황이 급변할 수도 있다.
‘대북사업=현대’라는 등식을 깰 수 있는 카드로 통일교그룹도 거론되고 있다. 통일교그룹의 평화여행사는 지난 2003년 8월 평양 여행길을 열어 현재까지 평양관광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일각에선 북측이 김윤규 전 부회장 문제를 들어 현대측을 압박하고 나설 때 통일교그룹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배경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통일교그룹에겐 지난 98년 현대와 금강산 관광사업 경쟁을 벌이다 탈락한 아픈 기억이 있다. 통일교그룹의 대북사업은 지난 91년 문선명 총재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하면서 그 싹이 텄다. 당시 문 총재는 김 주석으로부터 금강관 관광개발에 대한 언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문 총재는 금강산국제그룹을 만들어 대북사업 의지를 분명히했다.
그러나 문 총재의 북한 방문보다 2년 전인 89년에 김 주석은 이미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금강산 관광개발을 의뢰했으며 결국 이 사업은 현대 몫이 됐다. 최근 북측이 현대와는 별도로 롯데관광과 개성관광 논의를 한 것이 알려지면서 통일교그룹측은 예전에 자신들이 겪은 북한의 ‘이중플레이’를 떠올렸을 법하다.
이런 점에서 보듯 통일교그룹 등 잠재적 경쟁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분간 대북사업은 현대 중심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이중플레이를 펼쳤던 북측이 결국 현대의 손을 들어줬던 전례, 그리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현대측에 갖고 있을 법한 ‘부채의식’을 바탕으로 한 시각이다. 대북지원 과정에 대한 모든 비밀 공개를 자신의 죽음과 맞바꾼 고 정몽헌 회장에 대한 의리 차원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정몽헌 회장에겐 금강산을 줬으니 현 회장에겐 백두산을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통일부의 ‘입장’도 주목을 받고 있다. 통일부는 김 전 부회장 인사과정과 현 회장의 대북사업 ‘방침’에 대해 다소 거부감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재계에선 통일부가 현대 외의 다른 업체에 쉽사리 대북사업 참여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있다. 여러 업체가 대북사업에 참여하게 될 경우 대북사업 비용이 천정부지로 솟아 결국 ‘북한에 돈다발을 퍼준다’는 비난여론이 다시 들끓게 될 수 있다. DJ정권 때부터 공들여 쌓아온 대북사업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틀이 흔들리는 것을 현 정부가 절대로 간과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현 회장은 이미 ‘비합리적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못박은 바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관행화돼온 북측에 대한 ‘무작정 퍼주기’식 사업을 지양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북측이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길 만한 대목이다. 이번 국감과정에서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김윤규 전 부회장이 유용한 것으로 의심받은 남북경협기금 50만달러가 대북사업 북측 라인을 위해 쓰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북측은 김 전 부회장이 없는 현 회장 체제에서 ‘가욋돈’ 챙기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 정치권 인사는 “통일부가 주 사업권은 현대 채널을 통하게 하되 몇몇 경쟁업체에게 소규모 사업참여의 길을 열어줘 북측의 요구사항을 채워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