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여권은 ‘병풍’을 밀어붙여 이회창 후보를 흔들어야 만 살 수 있다는 각오다. 사진은 지난 18일 선대위를 인선한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 | ||
“너희가 지저분하지 김대업이 어쨌단 말이야. 야! 하순봉. 국민이 다 알고 있어. 이회창이 대통령 될 거라고 자만하지마. 이회창이 대통령 되면 난 이민 갈 거야.”
9월1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있었던 한나라당의 하순봉, 민주당 천용택, 두 의원의 격돌은 대통령 선거전의 한 단면이다. 국방부를 감사하는 자리에서 여•야당의 중진 두 사람이 병풍공방으로 맞서 삿대질하고 이민까지 입에 올리는 사태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이런 비정상이 선거경쟁이다.
2002년 대선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선거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우선 후보가 불확실하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당의 3분의 1을 간신히 이끌고 오리걸음을 걷고 있어 언제 낙마할지 모를 형편이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당을 하나로 통합, 일사불란한 선거체제를 다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아들의 병역면제에 비리가 있다면 정계를 은퇴한다고 약속했고,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흔들림이 있는 후보다. 선거까지 3개월, 그런데 이제 정당을 만들어 후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건 정당정치 반세기를 비웃는 사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런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후보를 지명하고도 후보 자리가 흔들리는 정당, 노풍→정풍으로 흔들리는 갈대 민심이 선거정국을 어지럽게 요동치게 하는 원인이고 배경이다. 결국 유권자도 선거전의 이상기류에 한몫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방위원회에서 일어났던 격돌의 불씨 병풍은 선거를 이상기류로 몰아간 중심 사단(事端)이다. 격돌의 주역 천용택 의원. 그는 국방장관 안기부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국방부를 국정감사하는 자리에서 이민을 공언했다. 물론 이민보다는 ‘이회창은 대통령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거부, 이회창은 싫다는 생각이야 간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회창이 당선되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 사람들이 민주당에 많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되게 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의 정치는 양당제로 흘러왔고 지금도 양당제다. 김대중 정권의 중간평가라고 할 선거에서 민주당은 연전연패했다. 6월의 시•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은 호남말고는 단 한 곳 제주만을 건졌을 뿐이다. 두 달 뒤인 8월 재•보선에선 호남 두 곳 말고는 모두 진 11 대 2의 완패였다. 민심이 민주당을 떠났다는 걸 말해준다.
양당제의 나라에서 민심이 민주당을 떠났다면 다음 정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가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최근의 두 차례 선거에서 국민은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만은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를 아직은 저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 기대의 끈이 바로 병풍이다. 민주당 안에선 이회창 후보 집안의 병역비리가 드러날 것이라는 각종 정보가 넘친다.“11월이면 검찰이 한인옥씨를 소환해야 할 증언이 나온다”는 말도 그런 정보 중의 하나.
이런 소문들에 근거해 민주당에선 병풍이 이회창 후보를 잡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민주당은 지금 세 갈래로 갈려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깨지지 않고 보다 강한 후보 찾기라는 한 길을 함께 모색하는 건 정권 재창출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호남이라는 표밭, 그리고 병풍은 민주당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
||
| ▲ 김대업 | ||
한나라당도 지난 8월 한때 후보교체라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내밀한 움직임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불을 꺼준 건 “병역비리 수사를 할 수 있게 국회에서 먼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발언이다. 병풍의 정치성을 드러내고 만 이 발언은 한나라당 내부를 평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내면의 걱정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걱정은 병풍의 영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민주당이 사분오열 상태이긴 해도 대선에선 확고한 기본표를 갖고 있는 강자, 그래서 대선의 향배는 예측이 어렵다. 그 원인은 지역투표 탓이다. 민정당이 ‘4자필승론’에 기초해 직선제에 승부를 걸어 성공한 1987년의 선거이래 정당의 대통령 선거전략은 지역투표에 기초해 있다. 92년, 97년 선거에 이어 2002년 대선도 큰 흐름은 지역대결이다.
지금 호남은 이회창 후보를 꺾을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는 게 대세다. 현재 민주당이 믿을 수 있는 곳은 호남의 표 쏠림뿐. 그러니 지난 대선보다 더 상대진영 표밭의 표 쏠림을 낮추고 막아야 한다. 병풍•영남후보•새 인물•새 정치가 만들어내는 바람은 상대진영 흔들기라는 민주당의 득표전술이다.
병풍(兵風)은 한나라당에겐 ‘병풍(病風)’이다. 당내에선 병풍의 약발은 이제 끝났다는 낙관론도 있다. 한때 50%에 육박했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병역비리 의혹이 커지던 8월, 병풍에 흔들려 30%대로 떨어졌다가 9월 들어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게 이 낙관론의 근거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는 게 병풍이다. 검찰 수사는 병역비리 의혹이 있었다는 쪽으로 가고 있다. 검찰 발표가 그런 쪽으로 나오면 민주당은 다시 한번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나라당의 한 간부는 “저들이 4년을 준비한 병풍인데 한나라당은 그 대응책을 세우는 데 단 4일이라도 몽땅 바친 흔적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함정에 빠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 병풍은 한나라당을 흔들어대는 ‘바람의 눈’ 구실을 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 후보의 아들이 군대에 안간 건 사실이어서 병풍에선 언제나 해명하는 수세의 자리다. 선거쟁점에서 수세란 밀리는 자리다. 병역비리 공방이 파당 싸움질로 비쳐 정치불신의 원인이 된다는 것도 한나라당에겐 고통이다. 정치불신은 기성정당과 정치지도자의 신뢰를 손상시킨다. 민주당이 내세우려는 새 인물보다 기성정당, 정치지도자에 속하는 이회창 후보 쪽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바람은 왜 부는가. 병풍이 몰고 온 반이회창 정서-정치불신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 변화에 대한 욕구를 일깨웠다. 새로운 정치, 변화, 그게 바람이다. 그 대상이 노무현으로 다시 정몽준으로 옮아갔다. 바람을 넘어서는 길은 여기 그 답이 있다. 바람은 어느 날 갑자기 올 수도 있고 한순간 빠질 수도 있으니까.
홍민 언론인